오피니언

  • [노트북] 천냥 빚을 남긴 정치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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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천냥 빚을 남긴 정치인의 말 지면기사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오랜 속담이 있다. 말만 잘하면 빚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의 힘과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듣는 이의 마음을 꿰뚫고 상황에 맞게 쓰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지만, 무신경하게 뱉은 말은 오히려 적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말의 무게감은 정치인에게 더욱 중요하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단순한 발언을 넘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 분위기를 좌우할 만큼 파급력을 지닌다. 무엇보다 정치인은 말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도, 단번에 그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최근 경

  • [노트북] 인천 아이바다패스, 섬 주민 피해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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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인천 아이바다패스, 섬 주민 피해 개선해야 지면기사

    올해 상반기 인천 섬 주민들의 불만 대부분은 인천시의 ‘아이바다패스’에서 기인했다. 아이바다패스는 인천시가 올해부터 시작한 여객선 요금 지원 정책이다. 그동안 섬 주민에 한해 적용됐던 여객선 요금 ‘1천500원’을 인천시민 전체로 확대했고, 타 시·도민에게는 정규 푯값의 70% 할인 혜택을 줬다. 이 정책으로 뱃길로 편도만 4시간에 달하는 백령도까지 버스 요금 수준으로 오갈 수 있게 됐다. 섬 지역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해 인천이 품고 있는 보물 ‘섬’을 알리자는 취지였다. 반응도 뜨거웠다. 올해 1~4월 아이바다패스를 이용해 섬에

  • [노트북] 실상을 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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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실상을 보는 일 지면기사

    2022년 대한변호사협회가 발표한 ‘외국인보호시설 및 인천공항 출국대기실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는 ‘화성외국인보호소’의 조감도가 그려져 있다. 거실과 침실, 화장실이 나란히 붙어있는 구조 속 티브이와 정수기가 비치된 모습이다. 철창을 떼어내는 등 시설을 대폭 개선한 개방형 보호시설의 전경과 고속충전기가 설치된 ‘핸드폰실’, ‘PC실’ 등의 사진도 첨부돼 있다. 보고서 속 그림과 사진들을 보며 ‘생각보다 깔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외국인보호소 방문시민모임 ‘마중’ 활동가를 통해 본 외국인보호소의 실상은 달랐다. 내부에서 직접 촬

  • [노트북] 처음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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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처음 만난 사람 지면기사

    수습 기자 신분을 뗀 직후 처음 만난 취재원은 급식실 노동자였다. 인천 최초로 ‘인천형 급식실 조리 로봇’이 도입된 한 학교 급식실의 조리 실무사들이었다. 무쇠 팔로 솥을 휘젓는 조리 로봇을 뒤로한 채 조리 실무사들에게 말을 걸었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이 훨씬 편해지셨겠다’는 질문에 돌아온 건 한숨 섞인 대답이었다. 조리 로봇은 근골격계 질환 등 조리 실무사의 산재 예방을 위해 도입됐지만 노동자들은 로봇 설치와 세척에 또다시 힘과 시간을 투입해야만 했다. 1대당 수억원에 달하는 로봇 대신 ‘동료 노동자’의 충원을 원한다는

  • [노트북] 국민의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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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국민의 임명 지면기사

    서울시민으로 살다 경기도민이 됐다. ‘시간 효율성’을 따지며 택시 타는 일도 마다 않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 늘 출입처 20분내 거리에서 살았다. 그런 내가 경기북부로 발령이 나면서 말로만 듣던 ‘출퇴근 왕복 3시간’이 일상인 직장인들의 일부가 됐다. 난 경기도로 주거지를 옮기는 선택을 했지만, 두달 간의 경험은 여지껏 관망만 했던 일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됐다. 겪어보지 않아 몰랐다. 아니, 깊게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국회를 출입하며 수도권 교통 문제와 직장인들의 고충을 알고는 있었지만 겨우 ‘그 정도’였다. 힘들

  • [노트북] 21대 대통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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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21대 대통령은 지면기사

    기자에게 가장 어려운 취재원은 누구일까. 기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답은 갈릴 수 있지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대답이 있다. 바로 기자다. 게다가 자신보다 경력이 10년 이상 긴 대선배를 취재하는 일은 어떤 기자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제주지역 신문사에서 오랜 시간 ‘제주 4·3’을 취재하며 진상을 알린 기자였던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을 ‘아임프롬인천’ 쉰한번째 주인공으로 만났다. 1980년대 후반 그가 금기에 가까웠던 4·3의 증언을 주민들로부터 듣고, 신문에 싣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마을을 찾아와

  • [노트북] 공공의 이름으로 언어를 지우려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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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공공의 이름으로 언어를 지우려 할 때 지면기사

    고백건대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엘리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명문대 졸업장도, 특별한 연줄도 없었다. 오직 공정한 시험을 거쳐 기자가 됐고 그 과정을 통해 내 능력을 증명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여성주의’도 자연스레 나의 성취와 맞닿은 언어처럼 여겨졌다. 제도 안에서 증명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여겼다. 그 믿음은 파주시 용주골에서 무너졌다. 지난해 성매매 집결지 현장을 취재하던 나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정답을 들고 교정하러 온 사람이었다. “당신들도 결국 구조돼야 하잖아요.” 순진한 반문은

  • [노트북] 광명 빛가온초 안전관리 신경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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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광명 빛가온초 안전관리 신경써야 지면기사

    광명시에 위치한 빛가온초등학교 학생들이 신안산선 공사 현장 붕괴사고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학생들은 폐허가 된 공사 현장을 앞에 두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운동장 사용도 못 한다. 2차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운동장 대신 학교 옆 일직수변공원을 임시 운동장으로 쓴다. 일직수변공원에는 ‘학생 및 교육활동 촬영 금지’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운동장을 쓰지 못하고 학교 밖 공원에서 체육 수업을 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은 학생들

  • [노트북] 문화가 사라진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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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문화가 사라진 대선 지면기사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화예술’ 관련 의제가 사라졌다. 문화예술계 지원을 10대 공약의 전면에 내세운 후보가 있기는 하지만 소수에 불과했고, 일부 공약은 업계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방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보였다. 대선에서 문화예술 의제가 사실상 자취를 감춘 건 정치 탓일까.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의 이런 취사선택에는 시민들의 삶에서 문화예술이 사라졌다는 점이 상당 부분 기여한 듯하다. 정치는 대중을 반영한다. 정치인들은 대중이 평소 쉽게 접하고 강렬히 바라는 것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대선에서 문화예술 의제가 사라진 건 시민

  • [노트북] 역사가 흐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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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역사가 흐르도록 지면기사

    양평군은 순국선열의 흔적이 곳곳에 살아 숨 쉬는 호국의 고장이다. 일제강점기 항일의 효시가 된 지평의병부터 6·25전쟁 당시 역전의 발판이 된 용문산 전투, 지평리 전투까지 굵직한 역사의 자취가 도처에 가득하다. 이달 초, 양평군이 지평리 군사시설 이전부지 일대에 추진 중인 양평박물관이 문화체육관광부의 타당성 사전평가 문턱을 넘었다. 이에 따라 오는 2029년까지 양평 동부권 지평면 일대에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양평국제평화공원’ 조성사업이 그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해당 장소는 지평리 전투가 일어난 곳이다. 1951년 중국인민지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