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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th+] 어떤 불행은 행복에 가깝다

    [with+] 어떤 불행은 행복에 가깝다 지면기사

    단골 빵집 사장님이 사고를 당하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맞은 편 사람들을 피하려다 다리 부상을 당하셨다고 했다. 세번이나 수술을 해야 한다고, 1년 정도는 아저씨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저씨네 빵은 가격이 저렴했고, 베이커리 빵들에 비하면 어딘가 촌스러웠다. 브라우니는 쫀득한 대신 촉촉했고, 잡곡빵은 시큼하고 눅눅했다. 그래도 아저씨네 빵집에 꾸준히 들렀다. 빵맛 때문이 아니라, 가격이 싸서도 아니라, 아저씨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었다. 늘 푸근하게 웃어주시고, 안부를 나누어 주시고, 한 마

  • [with+] 수박과 복숭아

    [with+] 수박과 복숭아 지면기사

    시장에 가면 초입부터 눈이 분주하다. 대형마트처럼 품목별로 줄 맞춰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지는 않지만 나름의 질서와 체계를 가지고 늘어 서 있는 상품들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하나쯤은 꼭 살 게 있을 것 같은 그릇 가게도 지나고 꼴뚜기가 망신시킨다는 어물전도 지나고 튀김 어묵 순대 떡볶이가 유혹하는 분식집도 지나면 과일가게가 나온다. 과일 하면 여름 과일이 으뜸이고 여름 과일 하면 수박과 복숭아가 떠오른다. 중학생 때였다. 할아버지 생신이었고 돈 나올 구석이 없는 집구석의 돈 없는 중학생은 용돈을 살뜰히 모아 수박을 샀다. 그때

  • [with+] 마감하는 밤

    [with+] 마감하는 밤 지면기사

    마감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원고가 쓰이지 않는다면, 더 집중하고 더 시간을 쪼개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슬그머니 유튜브 앱을 열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 그만 짜증이 나서였다. 딱히 눈길을 끄는 것도 없었지만 나는 멍한 얼굴로 이것저것 클릭했고, 손이 멈춘 건 우습게도 한 패션 유튜버의 여름 신상 소개 영상이었다. 가을 신상도 아니고 여름 신상이었다. 한 마디로 유효기간이 이미 지났다는 것인데, 그게 나에게 크게 중요할 것이 없어서 나는 가만히 그 영상에 집중했다. 작업실 창밖으로는 이미 가을

  • [with+] 호모 사피엔스의 지혜와 어리석음

    [with+] 호모 사피엔스의 지혜와 어리석음 지면기사

    딸이 태어나면서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시간에 대한 감각이다. 나는 내 생몰연대를 넘어, 딸의 생몰연대에 해당하는 시간까지 나와 상관있는 것으로 상상하게 되었다. 딸이 살아갈 미래를 헤아려보면 기후재난이 빈번해지는 뉴스를 볼 때마다 두렵지 않을 수가 없다.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으려면 단어나 용어를 정확히 써야 한다. ‘네팔 홍수’가 ‘네팔 산사태’로 정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학자는 ‘기후 변화’라는 말은 ‘지구 온난화’를 희석시키는 용어라고 비판한다. 지구의 역사에서 기후가 변하는 이벤트는 늘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의

  • [with+] 지음(知音), 소리의 풍경

    [with+] 지음(知音), 소리의 풍경 지면기사

    폭염이 극성을 부리던 8월 초, 콩국수를 먹자며 연락을 해온 이는 국악인 허영 선생이었고 처음 콩국수를 제안한 이는 음악 애호가 심상용 선생이었다. 땡볕에 긴 줄이 서 있는 서울 순화동의 유명한 집에서 특별한 콩국수를 먹은 다음 그냥 집으로 돌아가나 했더니 이번엔 심 선생의 집에서 음악을 감상해야 한단다. 사실 봄부터 심 선생 댁에 가자는 이야기가 여러번 나왔으나 여차여차 시간을 흘려버리고 있었다. 이태원에 살다 무악재의 한 아파트로 이사한 심 선생은 방 한 칸을 음악 전용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음악실을 꾸밀 때, 돈 걱정을 할 만

  • [with+] 버릴 때마다 잊는 것들

    [with+] 버릴 때마다 잊는 것들 지면기사

    긴 여름 끝, 입맛이 없어져서 소울푸드를 찾는다. 아삭거리는 제철 채소다. 시원한 미역냉국, 아삭하고 푸릇푸릇한 오이고추, 짭짤한 오이지 무침만 있으면 밥 한그릇을 당장 뚝딱 비울 수 있다. 여름식탁을 준비하는 마음은 소박하다. 보도블록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포대에 담아온 제철 먹거리들을 바구니에 꺼내 담아놓은, 천원에서 오천원 사이면 과일이며 채소들을 한 보따리 얻어갈 수 있는 길거리 행상을 자주 찾는다. 파라솔 하나 없이 건물 외벽에 드리운 네모난 그림자에 기대 한여름 땡볕 더위를 견디며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꼬부랑 할머니

  • [with+] 퇴행할 결심

    [with+] 퇴행할 결심 지면기사

    안동에 있는 이육사문학관에서 낭독회 일정이 잡혔다. 인천에서 1호선을 타고 한시간 넘게 걸리는 청량리역으로, 다시 청량리역에서 KTX를 타고 2시간을 달려서 안동역에 도착했다. 이제 안동역에서 급행버스를 타고 한시간 넘게 걸리는 이육사 문학관까지 가면 되는 일이었다. 이육사문학관이 초행임에도 어렵지 않게 교통정보와 경로를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건 인터넷 지도앱을 통해 검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발하는 장소와 도착할 장소를 입력하고 출발하는 날짜와 시간을 입력하면 자세한 경로와 각각 교통수단의 걸리는 시간, 그에 따르는 교통비,

  • [with+] 노란 복숭아의 계절

    [with+] 노란 복숭아의 계절 지면기사

    수돗물을 틀어놓은 채 복숭아를 박박 문질러 씻었다. 말랑한 복숭아 껍질이 물에 씻겨 마구 벗겨졌지만 그래도 박박 문지른다. 포슬포슬했던 껍질의 털들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래야 마음이 놓인다. 습관이다. 수돗물을 머금은 복숭아는 맹맹한 것이 영 맛이 없었다. 아버지는 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었다. 뭐든 할 줄 알고, 뭐든 제일 잘하는 아버지의 기억이란 세상 모든 딸에게 영웅담 같은 기억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네모난 도시락을 매달고 퇴근한 아버지는 ‘하이바’를 벗기도 전 양팔에 매달리는 딸들을 아무렇지도 않

  • [with+] 잠과 책을 끼워 넣은 생각의 여행

    [with+] 잠과 책을 끼워 넣은 생각의 여행 지면기사

    나는 같은 장소에 머물면서, 그곳을 완전히 다른 장소로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손쉬운 마법을 알고 있다. 바로 잠을 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의 낮잠. 도서관은 폭염을 피하기 위해 여름에 특히 인기가 많은 장소다. 용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이 행운을 보답하기 위해 맹렬하게 읽고 쓰려 하지만 어느덧 잠이 쏟아진다. 나는 팔로 턱을 고이고 책을 읽는 척 끄덕끄덕 졸다가, 완전히 잠 속으로 침몰한다.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면 눈앞의 공간은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실제로 주변 사람 일부도 바뀌었다. 새로운 기분으로 읽다 만

  • [with+] 버섯을 찾아서

    [with+] 버섯을 찾아서 지면기사

    엊그제,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숲속에 들어갔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너울거리며 길을 막았고 바닥의 검은 흙과 부엽토는 물기를 가득 머금은 채 반들거리고 있었다. 막 생명을 피워낼 것 같은 기름진 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땅을 비집고 쑥쑥 올라오는 것들은 다름 아닌 각양각색의 버섯이었다. 촉촉한 땅 위로 힘차게 뻗는 버섯들을 보니 내가 버섯에 눈을 뜨게 된 2021년의 특별했던 여름이 떠올랐다. 어느 날 산에 갔는데 길가에 다양한 형태의 버섯들이 바닥을 덮을 만큼 만발해 있었다. 너무 많아서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지나칠 수 없을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