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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th+] 소설을 쓰는 마음

    [with+] 소설을 쓰는 마음 지면기사

    나는 예술대학을 졸업했다. 우리 학과, 문예창작학과는 예술대학 건물 1층이었으나 북쪽을 향해 난 건물이라 늘 복도며 강의실이 어둑신했다. 전공 수업은 대개 작품 합평으로 이루어져서 선배들이며 동기들은 합평 날짜에 맞추어 작품을 쓰느라 늘 꾀죄죄한 꼴이었다. 문예창작학과 옆으로 영화과와 연극과, 그리고 서양화과와 한국화과가 있었다. 똑같은 예술대라지만 그들은 참말 달랐다. 물감 범벅이 된 앞치마를 두르고, 손톱엔 덕지덕지 물감 때가 앉았으나 그들은 언제나 해사하고 낭만적이었다. 고질고질한 문창과 남학생들이 감히 들이대지도 못할 만큼

  • [with+] 스무 살의 일기장

    [with+] 스무 살의 일기장 지면기사

    웅크려서 글 쓰는 버릇, 집중할수록 무너지는 자세, 그렇게 쭉 살아왔으니…. 결국 오십견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통증이 심한 것은 아니나 내 오른팔은 만세를 하지 못하고, 뒷짐을 질 때마다 곡소리가 난다. 도수치료를 받은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아무래도 책상을 바꿔야겠어’. 나는 결혼을 하면서 육인용 탁자 두 개를 사서 하나는 식탁으로, 하나는 책상으로 썼다. 식탁은 종종 가족과 지인들로 채울 때도 있지만 책상은 나만의 영토였다. 프린터기도 올려놓고, 책과 노트북과 독서대를

  • [with+] 혼자만 그럴까?

    [with+] 혼자만 그럴까? 지면기사

    공항이 북새통이라는 명절 즈음에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행을 6일 남겨놓고 일이 벌어졌다. 낮에도 영하권이었던 그날 따라 사무실이 유난히 추웠다. 밤늦게 작업을 끝내고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한기가 확 덮쳤다. 너무 추워 진저리가 쳐졌다. 걸어가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서 막 뛰었다. 혈액순환이 되면 나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섰다가 다시 뛰고를 반복했다. 좀 참을 만한 상태가 되었을 때 집에 도착했다. 그래서 별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몸살이 들어온

  • [with+] 화려한 백발

    [with+] 화려한 백발 지면기사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생기는 게 당연한데, 젊지 않은데 젊어지고 싶은 건 욕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염색이 하고 싶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나온 흰 머리가 지저분해 보여 자꾸 신경이 쓰이던 찰나,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요가 수업에서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았다. 결석하는 날이 없이 평일 5회의 아침 수련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성실하게 참여했다. 요가 선생님과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듣자니 수련을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된 모양이었다. 지시 멘트를 줄줄 외우고 있었고, 강사는 아니지만 초보자를 가르쳐줄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녀의

  • [with+] 동파 걱정

    [with+] 동파 걱정 지면기사

    매해 겨울, 집 수도가 얼고 있다. 벌써 3년째 수도를 얼리고 있으니 무능한 관리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파에 매번 수도를 동결 당하는 것이 억울하지만 당하는 데에도 나름 이유는 있다. 사실 수도가 어는 것을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는 수도관이 지나가는 곳에 보온재를 충분히 넣어 냉기를 차단하는 것이다. 당연히 파이프는 보온재를 싸매어 케이블 타이로 꼼꼼히 묶었고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어 낡은 이불솜과 이제는 입지 않는 헌 패딩, 그리고 잊고 싶은 추억이 매달려 있어서 버리려다가 처박아 둔 후드 티셔츠 등으로

  • [with+] 안녕, 삼촌

    [with+] 안녕, 삼촌 지면기사

    아이 셋을 키우던 엄마는 아무래도 버거워 할머니에게 구조 요청을 보냈다. 한 녀석만 서울로 데려가 한동안 봐 달라고 말이다. 셋 중 누가 할머니를 따라갈지는 사실 말하지 않아도 빤했다. 엄마 입장에서는 폐 끼치지 않을 만큼 얌전한 녀석. 할머니 입장에서도 그다지 손이 많이 가지 않을 얌전한 녀석. 바로 나였다. 다섯 살 나는 열 밤 자고 데리러 가겠다는 엄마의 말에 깜빡 속아 할머니를 따라 쫄래쫄래 서울로 갔다. 엄마는 일 년이 지나서야 나를 도로 데려갔다. 이후로도 몇 번 그랬고, 아무 데서나 둘째가 제법 잘 지낸다는 걸 알아챈

  • [with+] 제주에서 보낸 시간의 단층

    [with+] 제주에서 보낸 시간의 단층 지면기사

    딸과 함께 제주에 다녀왔다. 이틀간 강의를 할 일이 생겼는데, 거기에 하루를 더 붙여 일도 하고 여행도 할 생각으로 일정을 짰다. 전부터 이런 식이었다. 제주에서 일거리가 생겨 돈을 벌면 그것을 경비 삼아 여행을 좀 더 하고 돌아오는 식이다. 모처럼 제주공항에 도착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 보낸 시간의 조각을 모아 놓으면 그것도 내 인생의 지표를 보여주는 그림이 되겠다고. 대학 친구와 이 섬에 처음 온 것은 이십대 후반이었다. 여느 관광객처럼 일주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고 성읍 민속마을에서 오미자차를 마셨다. 돌담,

  • [with+] 돌에 시간을 남긴 사람

    [with+] 돌에 시간을 남긴 사람 지면기사

    포천시 영중면에 위치한 인흥군 이영(1604~1651)의 묘역은 17세기 종친 문화의 한 단면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묘비에 새겨진 글씨와 주변 석물은 그저 상장례 유적이 아니라, 당대 왕실과 선비들이 공유했던 기록과 기념의 방식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이 묘역은 인흥군의 장남이자 17세기 수장가 낭선군 이우(1637~1693)의 문화적 지향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역사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전개되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한 사람의 선택이 오래 남기도 한다. 조선시대 서화애호의 역사에서도 그러한 인물이 있다. 15세기

  • [with+] 대중(大衆)의 힘으로

    [with+] 대중(大衆)의 힘으로 지면기사

    처음 가졌던 직업이 일생을 지배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습관을 보면 그렇다.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뒤에 출판사에 근무하면서도 기자처럼 일했다. 아침에 기사를 써놓고 낮에는 출입처 사람들을 만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취재도 하는 그 느슨한 방식이 몸에 배 있었기에 꼼꼼한 ‘출판 편집자’들은 나를 노는 사람 취급하며 거저 월급을 받아가는 것으로 여겼다. 평소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 ‘기자의 습’을 버리지 못했다고 비난을 해댔다. 뉴스를 분별해내는 게 나의 강점일 수 있는데 그런 지적을 반복적으로

  • [with+] 엄마의 발견

    [with+] 엄마의 발견 지면기사

    아빠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평수가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계획했다. 내가 열두 살 때부터 언니가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 네 식구가 사십 년 간 살아온 학익동 아파트는, 언니의 결혼과 막내딸인 나의 독립, 아빠와의 사별로 이제 쓸데없이 넓기만 한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과 영영 헤어져야 한다는 게 몹시 서운했지만, 추억 때문에 엄마더러 그 넓은 집에서 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흔한살에 혼자가 된 엄마는 씩씩했다. 장례식 때도 눈물을 보이시지 않았고, 아빠의 나무 관에 ‘그동안 수고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