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with+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with+] 김장철이 왔다 지면기사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때아닌 김장 얘기를 한번 해야겠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김장할 때는 무덤 속의 시체도 일어나서 돕는단다.” 이번 김장에는 좀 빠질까 해서 이것저것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 일할 때 TV나 보고 수육 먹을 생각이나 하며 뺀질대지 말고 예외 없이 모두 나와서 도우라는 당연하고도 지당한 말씀이다. 대단한 종가집도 아닌 평범한 가정집이었지만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살 때는 일곱식구가 일년을 먹으려면 배추를 50포기에서 70포기는 담갔던 것
-
[with+] 원고를 넘기는 방법 지면기사
소설가 후배가 작품을 좀 읽어달라 청해왔다. 바쁜데…. 거절하고 싶었지만 실은 거절 같은 것 잘 못하는 사람이라 알겠다고 끄덕였다. 후배는 곧 이메일로 파일을 보내왔다. 열어보고선 화들짝 놀랐다. 워드 문서 따위 아닌 PDF 파일이었는데 얌전히, 보기 좋게 조판을 끝낸 편집디자인 완료물이었던 거다. 나는 읽기도 전에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야? 편집까지 할 줄 아는 거였어?” 후배가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읽어봐달라고 부탁드리는데, 아무렇게나 드릴 수도 없고요… 편집이야 금방 배울 수 있는 거니까 배워두면 좋잖아요.” 후배의
-
[with+] 나의 병실 친구, 강명자씨 지면기사
전신마취 할 일이 생겼다.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병원이나 수술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나의 병실친구, 강명자(가명)씨의 이야기다. 느닷없이 큰 수술을 받게 되어 뒤숭숭한 마음으로 나는 4인실 간호병동에 입원했다. 운 좋게 첫날은 아무도 없었기에 창가 쪽 명당자리에 당첨이 되어 짐을 풀었다. 짐이 좀 많았다. 열두 권의 책을 비롯해 독서대와 가습기, 허리쿠션과 작은 스탠드, 안대, 텀블러와 빨대컵, 아무튼 병원에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편의를 도모해줄 온갖 사물들을 챙겨와 제자리를 잡아주니 커튼으로
-
[with+] 무명(無名)을 위하여 지면기사
19세기 파리에서 주로 활동한 르누아르에게는 같은 도시에서 화상(畫商)으로 일하던 볼라르(Ambroise Vollard, 1866~1939)라는 친구가 있었다. 르누아르가 볼라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고전주의 회화에 반기를 들고 빛의 오묘함을 따뜻한 색채로 표현하는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평론가들의 냉대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 인상파 회화를 이해하고 르누아르의 가능성을 믿었던 볼라르는 그의 전기를 펴내고 작품을 사들이는 한편, 전시회를 열어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사람들은
-
[with+] 절에서의 하룻밤 지면기사
무늬만 애국자인 필자도 넉달 동안 거의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뉴스만 추적하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내려진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니 그것도 준비가 필요했다. 전북 고창에 있는 사찰 선운사의 템플스테이(templestay)를 다녀온 것은 4월16·17일이었다. 템플스테이를 끝내면 절에서는 ‘체험 후기’를 써달라고 용지를 내민다. 아래는 그때 제출한 글을 바탕으로 새롭게 쓴 것이다. 미당(未堂)의 시에서처럼 동백꽃을 보러 왔다가 아니 피어 번번이 돌아간 선운사. 문득 지금 계절이면 되겠구나 싶어 템플스테이를 신청했습
-
[with+] 옹기종기 붙어있는 마음들 지면기사
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쪽방촌 고단함보단 따뜻함이 기억에 남아 구분하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살아 따뜻하고 정감있게 자라는 아이들 다정한 온기, 삭막한 시대의 유산 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쪽방촌에 다녀왔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 햇볕 한 조각 들지 않고, 여전히 연탄을 때고, 집 앞에 장독대를 두고 김치를 담가 보관하는. 누군가 장독대 뚜껑을 받쳐둔 벽돌을 자주 훔쳐간 모양인지, 한 번만 더 훔쳐 가면 된통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경고가 적힌 종이쪽지도 보았다. 반쯤 부수어져 나간 집을 그대로 두고 있어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
[with+] 50개월 할부와 노이즈 캔슬링 지면기사
무이자 푸시 알림 보고 산 이어폰 세계 곳곳 전쟁·학살 끊이지 않고 대통령이 쿠데타 일으킨 우리나라 갈등과 혼란속 소통하며 사는 세상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싶었을까 스트레스 받을 때 소소한 소비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결국은 더 스트레스 받을 월말정산을 불러오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사람이 어리석은 일 하나쯤은 데리고 살아야 인간미가 있다는 억지 변명을 주워섬겨보는 것이다. 소비에는 심리 한계선이 작동한다. ‘손발이 닳도록 일을 하며 이만한 돈 못 쓰냐’의 이만한 돈이 내게는 오만원쯤 된다. 바지를 하나 사려다가도
-
[with+] 만화방의 추억 지면기사
딸아이와 함께 찾는 추억의 장소 몰래 드나들며 만화가 꿈 키워와 우아하고 싶어 택한 소설가의 길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같은 일 좋아했던 옛 만화들 다시 찾고파 딸아이는 이제 열한 살이다. 초등학교 4학년. 부릉부릉 사춘기 시동을 거는 중이라 여간 새초롬한 게 아니다. 일 이년 더 지난다면 아마 말 붙이기도 어렵겠지. 제 방문 쾅 닫고 처박히는 일이 일상이 될 것이다. 그나마 아직은 “엄마랑 어디 좀 갈래?” 할 때 주섬주섬 따라 나오니 다행이랄 밖에. 그래서 나는 종종 딸아이와 만화방엘 간다. 서너 시간 놀다 오는데 5·6만원은
-
[with+] 게으른 노트 농사 지면기사
뗄수 없는 나의 수족, 종이와 필기구 감정의 기후 나타낸 보이지 않는 밭 간간히 옮겨 적는 흥미로운 문장들 물컵의 표면 장력처럼 나를 지탱해 전생에 나무늘보가 아니었을까. 더없이 빈둥거리는, 혹은 빈둥거리고 싶어하는 나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은 많지만 금방 싫증내며 다른데 기웃거리기를 좋아했다. 해야 할 일들을 지속적으로 게을리 하다보니 호기심과 그것을 메모로 번역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고 어느덧 소설을 쓰게 되었다. 메모 또한 한 두 해 만에 생긴 버릇은 아니다. 기자를 하던 시기에 취재노트를 쓰다가 백수가 되
-
[with+] 겸재 그림의 여정 지면기사
미술품 애호가로서 심환지의 혜안 정선 필력에 대한 인정과 신뢰 커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인왕제색도’ 2021년 삼성가 품 떠나 국가에 기증 가치 알아보는 안목 가늠할 수 있어 ‘무릇 물건은 항상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므로 내가 진실로 그림을 좋아하여 이 그림을 얻었으나, 나를 이어서 이 그림을 사랑할 자로 후세에 또 어떤 이가 있을까’. 조선 후기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심환지(沈煥之, 1730~1802)는 노년에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화첩을 얻고 자신처럼 미래의 누군가 역시 이 그림을 아껴주기를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