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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th+] 호랑이 할머니는 배가 불러

    [with+] 호랑이 할머니는 배가 불러 지면기사

    강원도 삼척 정라진에서 구멍가게를 했던 할머니는 별명이 호랑이 할머니였다. 일단 외양부터 그러했다. 어찌나 풍채가 좋고 커다란 눈이 부리부리했던지 그 누구도 말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목소리도 우렁찼고 집안 경제에는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던 할아버지 대신 홀로 억세게 돈을 벌어 사남매를 키웠다. 하여간 소문난 여장부였다. '제사 거부' 맏며느리 엄마 양심찔려설 다음날 차례상 다시 봐 조상님께우리가족 잘 부탁한다고 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맏며느리였다. 보통 이런 이야기엔 순하고 희생적인 맏며느리가 등장하기 마련이라지만 우리 엄마는 영 아니었다. 할머니 못지않게 용감무쌍했고 목소리가 컸다. 그러지 않았다면 엄마의 시집살이는 진정 고되었을 것이다. 할머니와 엄마는 도대체 승자가 누구고 패자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울 만큼 서로를 잘도 이겨 먹었다.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이십 년이 지났으니 말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한참 전부터 집안 제사를 도맡았다. 장손 남편을 둔 탓에 제사는 많고도 많았다.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들의 밥그릇을 엄마는 수북이 채워 숟가락을 꽂았다. 딱 한 번 제사를 거른 적이 있었다. 엄마의 칠순 생일이었다. 우리 자매들은 돈을 모아 미국여행을 준비했고 엄마는 제삿날과 겹친다며 단호히 거절했으나 우리도 지지 않았다. "작은 엄마에게 한 번만 부탁해!" 기어이 여행을 포기하겠다고 버티던 엄마는 끝내 작은 엄마에게 몇 번이나 당부를 한 후 여행을 떠났다. "아이고야, 아무래도 느이 할머니가 미국까지 따라와서 나를 제사도 안 지내는 죽일 년이라고 욕할 것 같다" 그렇게 말하고서였다. 이번 설에 할머니는 속초 작은집과우리집 차례상 받아 배부르셨겠다 설을 하루 앞두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례 준비는 잘했어?" 엄마가 코웃음을 쳤다. "야, 나는 이제 제사 지내는 사람 아니야. 느이 작은 엄마한테 다 넘겼어." 화들짝 놀랐다. 나이가 들어 더는 힘들다고, 이제는 아들 있는 작은 엄마에게 제사를 다 넘길 거라 숱하게 말은 했지만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