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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호모 사피엔스의 지혜와 어리석음 지면기사
딸이 태어나면서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시간에 대한 감각이다. 나는 내 생몰연대를 넘어, 딸의 생몰연대에 해당하는 시간까지 나와 상관있는 것으로 상상하게 되었다. 딸이 살아갈 미래를 헤아려보면 기후재난이 빈번해지는 뉴스를 볼 때마다 두렵지 않을 수가 없다.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으려면 단어나 용어를 정확히 써야 한다. ‘네팔 홍수’가 ‘네팔 산사태’로 정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학자는 ‘기후 변화’라는 말은 ‘지구 온난화’를 희석시키는 용어라고 비판한다. 지구의 역사에서 기후가 변하는 이벤트는 늘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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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지음(知音), 소리의 풍경 지면기사
폭염이 극성을 부리던 8월 초, 콩국수를 먹자며 연락을 해온 이는 국악인 허영 선생이었고 처음 콩국수를 제안한 이는 음악 애호가 심상용 선생이었다. 땡볕에 긴 줄이 서 있는 서울 순화동의 유명한 집에서 특별한 콩국수를 먹은 다음 그냥 집으로 돌아가나 했더니 이번엔 심 선생의 집에서 음악을 감상해야 한단다. 사실 봄부터 심 선생 댁에 가자는 이야기가 여러번 나왔으나 여차여차 시간을 흘려버리고 있었다. 이태원에 살다 무악재의 한 아파트로 이사한 심 선생은 방 한 칸을 음악 전용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음악실을 꾸밀 때, 돈 걱정을 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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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버릴 때마다 잊는 것들 지면기사
긴 여름 끝, 입맛이 없어져서 소울푸드를 찾는다. 아삭거리는 제철 채소다. 시원한 미역냉국, 아삭하고 푸릇푸릇한 오이고추, 짭짤한 오이지 무침만 있으면 밥 한그릇을 당장 뚝딱 비울 수 있다. 여름식탁을 준비하는 마음은 소박하다. 보도블록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포대에 담아온 제철 먹거리들을 바구니에 꺼내 담아놓은, 천원에서 오천원 사이면 과일이며 채소들을 한 보따리 얻어갈 수 있는 길거리 행상을 자주 찾는다. 파라솔 하나 없이 건물 외벽에 드리운 네모난 그림자에 기대 한여름 땡볕 더위를 견디며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꼬부랑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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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퇴행할 결심 지면기사
안동에 있는 이육사문학관에서 낭독회 일정이 잡혔다. 인천에서 1호선을 타고 한시간 넘게 걸리는 청량리역으로, 다시 청량리역에서 KTX를 타고 2시간을 달려서 안동역에 도착했다. 이제 안동역에서 급행버스를 타고 한시간 넘게 걸리는 이육사 문학관까지 가면 되는 일이었다. 이육사문학관이 초행임에도 어렵지 않게 교통정보와 경로를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건 인터넷 지도앱을 통해 검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발하는 장소와 도착할 장소를 입력하고 출발하는 날짜와 시간을 입력하면 자세한 경로와 각각 교통수단의 걸리는 시간, 그에 따르는 교통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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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노란 복숭아의 계절 지면기사
수돗물을 틀어놓은 채 복숭아를 박박 문질러 씻었다. 말랑한 복숭아 껍질이 물에 씻겨 마구 벗겨졌지만 그래도 박박 문지른다. 포슬포슬했던 껍질의 털들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래야 마음이 놓인다. 습관이다. 수돗물을 머금은 복숭아는 맹맹한 것이 영 맛이 없었다. 아버지는 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었다. 뭐든 할 줄 알고, 뭐든 제일 잘하는 아버지의 기억이란 세상 모든 딸에게 영웅담 같은 기억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네모난 도시락을 매달고 퇴근한 아버지는 ‘하이바’를 벗기도 전 양팔에 매달리는 딸들을 아무렇지도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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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잠과 책을 끼워 넣은 생각의 여행 지면기사
나는 같은 장소에 머물면서, 그곳을 완전히 다른 장소로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손쉬운 마법을 알고 있다. 바로 잠을 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의 낮잠. 도서관은 폭염을 피하기 위해 여름에 특히 인기가 많은 장소다. 용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이 행운을 보답하기 위해 맹렬하게 읽고 쓰려 하지만 어느덧 잠이 쏟아진다. 나는 팔로 턱을 고이고 책을 읽는 척 끄덕끄덕 졸다가, 완전히 잠 속으로 침몰한다.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면 눈앞의 공간은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실제로 주변 사람 일부도 바뀌었다. 새로운 기분으로 읽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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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버섯을 찾아서 지면기사
엊그제,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숲속에 들어갔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너울거리며 길을 막았고 바닥의 검은 흙과 부엽토는 물기를 가득 머금은 채 반들거리고 있었다. 막 생명을 피워낼 것 같은 기름진 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땅을 비집고 쑥쑥 올라오는 것들은 다름 아닌 각양각색의 버섯이었다. 촉촉한 땅 위로 힘차게 뻗는 버섯들을 보니 내가 버섯에 눈을 뜨게 된 2021년의 특별했던 여름이 떠올랐다. 어느 날 산에 갔는데 길가에 다양한 형태의 버섯들이 바닥을 덮을 만큼 만발해 있었다. 너무 많아서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지나칠 수 없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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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질투 다루기 지면기사
오래 전이지만, 외국을 가보고 쓴 것 같은 시나 소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때가 있었다. 시에서 프랑스 어느 지방 소도시의 멋진 풍경이 나오거나 소설에서 어디 독일의 기차역, 이탈리아의 무슨 해변 어쩌구 하는 구절이 나오면 갑자기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2학년 때 자퇴하고 오토바이 배달을 하고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라 심사가 꼬일대로 꼬였다. 사는 게 편해서 해외여행도 가고 거기서 글도 쓰고 하는구나, 두고 보라지 그런 말랑하게 관조하는 그럴듯한 글이 아니라 진짜 글이 뭔지 보여주마,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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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소설 쓰는 아이 지면기사
열두 살 딸은 요즘 매일 하굣길에 뛰어 들어온다. 이 더운 날 그냥 사부작사부작 그늘 따라 걸어올 일이지 어쩌자고 땀을 빨빨 흘리며 저러는지. 양말 벗어던지고 손을 씻자마자 아이가 앉는 곳은 식탁 앞이다. 책가방에서 딱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낸 뒤 노트북을 연다. 수첩에는 쉬는 시간마다 써둔 메모가 있고, 수첩을 넘겨 보며 노트북에 부랴부랴 쓰기 시작한 것은 그래, 소설이다. 아이가 없는 동안 슬그머니 읽어보았는데, 줄거리는 도통 아리송하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타임슬립인가 싶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소년이 등장하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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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커플 사이에 끼어 여행하기 지면기사
이번 여름에는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짧은 여행이야 하겠지만 여름마다 나름 길다면 길게 떠났던 여행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기했다. 그래서 지나간 여행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그 여행은 두 가지, 아니 세 가지로 의미가 있었다. 마지막 의미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알았지만. 나는 자동차에 타고 있다. 통영에 가는 길이었다. 내 친구들, 남자와 여자이고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이 앞좌석에 타고 있다. 나는 그 지역에 가야할 일이 생겼는데, 일 자체는 중요하지만 금방 끝나고 보수도 생길 일이었다. 친구들을 꼬드겨 며칠간 남도를 돌자고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