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with+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with+] 희망과 시무룩의 쌍곡선 지면기사
우연히 펼쳐본 '32살 시절의 일기'아주 못생기지도 가난치도 않은 나현재 돌아보니 크게 안 바뀌었지만병속 편지처럼 다가온 그때 무지개오늘 내 스스로에게 기분 북돋아줘연휴기간에 마감이 맞물려서 꼼짝없이 작업에 붙들려 보냈다.도서관이 문을 닫으니 카페로 가는데 모처럼 집중이 잘 된 날의 풍경을 묘사해보면 이렇다. 오후 내내 똠양꿍과 같이 뜨겁고 맵고 시고 짜고 달콤한 수프를 끓여대고 있다고.물론 가상의 수프다. 정확히 해두자면 두뇌 전골수프라고 할까, 우선 이 요리를 끓이는 냄비는 내 두개골이다. 소재랄 수 있는 새우나 고기는 이미 있지만 그것 만으로 찌개가 끓여질 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 자극을 줄 것들을 열심히 집어넣는다. 일단 '부팅용 독서'를 하기 시작하는데, 다양한 책을 펼쳐 서퍼가 파도를 가르듯 아무렇게나 읽기 시작한다. 그러다 줄을 쳐 놓은 책 속의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말과 개념을 횡단하는 것으로 일상의 리듬을 작업의 리듬으로 바꿔나간다.이 사이에 내 마음속에서 캐낸 문장을 노트에 휘감고 있으면 노트는 금속으로 된 원통으로 변하고, 코일들이 감기면서 자기력을 띨 때까지 회전하며 일종의 자력을 만드는 것이다. 자력이 생긴다면 철가루와 같은 금속들이 달라붙어 이야기를 만들어줄 것이다.그러나 일이 그렇게 원만하게 돌아갈 리가 없다. 정신 차려보면 웹의 바다에 휩쓸려 시간을 잔뜩 허비한 나를 발견한다. 한탄하는 일기를 적으려고 파일을 열다가, 실수로 서른두 살 때의 일기를 클릭했다. '어쩌면 내가 가장 잘하는 짓은 한심하게 시간을 보낸 후 신랄한 말로 자신을 질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오려서 붙여도 다를 바 없는 자책이다.그런데 다음 문장에서 느닷없는 자기진단이 이어진다. '나는 아주 못생기지도, 아주 가난하지도 않다. 사고무친 고아라거나 원수 같은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성격마저 낙천적이다. 나 같은 타입은 살아가긴 좋아도 작가가 되기에는 생긴 꼴이 틀려먹은 것이 아닐까'. 그때는 정말 돈 한 푼 없던 백수시절인데, 가난하지 않다고 해
-
[with+] 낭중지추 지면기사
다큐 '…달은 가장 오래된 TV' 보고한동안 잊었던 백남준 다시 떠올려그의 예술 총체적 이해·외로움 공감일방 아닌 쌍방 비디오아트로 소통韓국적 지켜 34년만에 '금의환향'도날고 기던 사람도 죽으면 거의 잊혀진다. 지난해 가을 서울시가 창신동의 백남준기념관을 폐관한다고 했을 때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백남준마저 지워야 한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언론보도에 부담을 느꼈는지 폐관하지 않는다는 후속기사가 나왔다.나는 백남준(1932~2006)을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작가로 기억하고 있다. 1990년대 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작가들의 작품전이 열렸을 때 저쪽 한 구석에서 내 눈을 확 사로잡는 그림이 있었다. 누군가 하고 다가갔더니 다름 아닌 '백남준'이었다. 색동옷을 표현한 듯 여러 색채를 이용해 죽죽 내려그은 자그마한 그림이었다. 아이들 그림 같은 한 장으로 내로라하는 작가들을 압도하는 장면에 나는 '재능은 숨길 수가 없구나' 하는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또 1992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 회고전이 열렸는데 그때 보았던 작품들도 기억에 남아있다. 화초 속에 보석처럼 빛나던 'TV 정원'과 12개의 모니터에 달의 여러 형상을 담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예쁘장한 불상이 모니터와 마주보고 있는 'TV 붓다' 같은 작품들은 새롭고 신선했으며 아름다웠다. 그때 나는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제목을 보고 그 기발함에 놀랐다. 모니터를 조작하다 우연히 발견한 달의 형상을 보고 백남준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달을 발견했어요. 텔레비전에서 우연히요.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은 달이에요."한동안 잊고 있었던 백남준을 다시 떠올린 건 현재 상영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백남준 : 달은 가장 오래된 TV' 덕분이다. 한국계 미국 영화감독인 아만다 킴이 5년을 공들여 만든 백남준 영화는 어려운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잘 정리해주고 있다. 처음 영화를 보고는 백남준의 예술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
-
[with+] 봉직과 파직의 풍운아 허균 지면기사
의병과 왜군 물리쳐 선무원종공신기생과 구설수·조카 부정합격 유배파란만장한 삶… 문학적 능력 인정새로운 시풍 실험엔 언제나 정점에詩에 자기만의 목소리 '개성론' 주장허균(1569~1618)은 국문소설 '홍길동전'의 작가이며 '성수시화(惺搜詩話)', '학산초담(鶴山樵談) 등의 시화를 엮은 당대 최고의 비평가다. 스스로 200 상자가 넘는 경전을 읽었다고 전한다. 그뿐만 아니라 '제자백가'에서 명나라 대가들의 문집에 이르기까지 그의 눈을 거치지 않은 책이 없었다.그는 강릉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운 공로로 선무원종공신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1594년(선조 27년) 문과에 급제하고 1597년(선조 30년) 다시 중시문과에 급제하여 공주 목사를 거쳤으나 탄핵받아 파면되고 유배당했다.시류에 영합하지는 않았지만 기생과 놀아나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고 과거시험에 조카를 부정합격 시킨 사실이 드러나 유배를 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불교를 신봉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1614년(광해군 6년) 8월27일 위성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는 등 벼슬은 정헌대부 의정부 좌참찬 겸 예조 판서에 이르렀다.그는 자유주의자였다. 사회가 금기시 하는 문제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자각된 민중의 힘을 역설한 호민론(豪民論)은 오늘의 시각에서 보아도 진보적인 주장이다. 그의 사상이 배경으로 깔린 작품이 '홍길동전'일 것이다.광해군 10년인 1617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신분제도와 서얼 차별에 항거하려고 서자와 불만하는 계층을 규합하여 혁명을 계획하다 발각되었다. 그를 비판하던 기자헌을 제거하려다가 역으로 반역을 도모하려 했다는 기준격의 밀고를 받게 된다.서얼들과 허물없이 어울렸다가 옥사에 연루되기도 했지만 관리들이 매달 치르는 시험에서 매번 일등을 했다. 그를 비방하던 사람들조차 그의 문학적 능력을 인정했다. 허균은 여러번 탄핵당해 파직되어 귀양 갔지만 다시 일어나 벼슬길에 복귀하곤 했다.그는 언제나 현실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목표를 세우면 수단
-
[with+] 친절하다는 착각 지면기사
인천공항서 수레 끌며 먹고사는 일"비켜주세요" 대부분 사람들 무반응걸린 수레를 살짝 들어주는 여행객감사할것 없다는듯 쿨한 모습 멋져힘들기만하다 친절이 이렇게 달다시 쓰기로 먹고사는 일이 여의치 않아 인천국제공항에서 수레 끄는 일을 하고 있다. 커다란 화물트럭이 한가득 상품을 실어오면 그걸 내려서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면세점의 요청에 따라 상품을 수레에 실어 가져다주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일이다. 200㎏ 이상 실은 수레를 끌며 수백 미터로 펼쳐진 대리석 바닥을 하루종일 오가야 한다. 처음엔 발바닥이 칼로 찌르듯 아팠다. 신발의 쿠션이 충분하지 않은가 싶어 신발을 몇 차례 바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발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리석 바닥은 너무 단단하고 수레는 너무 무겁고 공항은 너무 길었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흘러 발바닥이 압력에 적응하고 발의 하부를 단단한 근육으로 채운 후에야 통증은 사라졌다.무거운 수레를 끄는 일은 관성의 법칙을 체험하기 좋은 일이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수레는 멈추기 어렵고 멈춘 수레는 다시 움직이기 힘들다. 수레를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려면 끌고갈 때 보다 몇 배의 힘을 더 내야 한다. 그리고 수레가 다니는 길은 면세점 쇼핑을 위해 수많은 여행객이 오가는 곳이다. 수레가 사람과 부딪히면 큰 사고가 날 수 있기에 사람이 붐비는 구간을 지날 때는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짐을 가득 실은 커다란 수레가 지나가면 모두가 알아서 비켜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앞을 거의 보지 않는다. 화려한 명품 브랜드 상점의 전시된 상품들을 고개 돌려 바라보며 걷거나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며 다가온다. 고개를 돌려 반짝이는 것들에 눈을 맞춘 채 무작정 다가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앞쪽으로 가져오기 위해 "잠시만요"라고 부드럽게 말하며 지나갔다. 큰소리로 말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기분이 상할 수 있으므로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반응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상품들은 빛을 발하지만 대비되는 풍경을 더욱 어둡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스마트
-
[with+] 십 년 만에 작업실 지면기사
출산 이후론 사라진 '당연한 공간'예전의 오피스텔 맞은편 새로 계약한권씩 묶일 책들 생각하면 실웃음딸도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쁜손길매주 한번씩 복층서 같이 자야겠다스마트폰 인터넷뱅킹 앱을 켜놓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각각의 통장을 들고나는 액수를 가만히 본다. 한 달에 얼마큼씩 빠지면 티 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다시 말해, 화면에 도도독 찍힌 잔액 중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은 얼마큼일까. 물론 그런 액수란 애초 존재하지 않겠지. 잔액이란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지 들어내서 좋은 액수란 없는 거니까. 그래도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곰곰 계산했다.하지만 내 계산 따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오피스텔 임대인의 마음이다. 뱅킹 앱을 접고 다시 부동산 앱을 켰다. 양재역 뱅뱅사거리 근처 오피스텔 월세는 만만치 않다. 게다가 관리비까지 보태야 하니 말이다. 나는 작업실로 쓸 오피스텔을 구하는 중이었다."네가 왜? 작업실을 왜 따로 구해?" 친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말이다. 나는 집에 어엿한 서재가 있다. 커다란 책상이 두 개나 있고, 편백나무로 짠 책장이 있고, 편안한 의자도 있다. PC도 새로 세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는 작업실이 필요할까. 나는 우물쭈물하다 친구에게 대답했다. "그냥, 갖고 싶어서." 그런 거다. 그냥 나는 작업실이 갖고 싶은 거다. 내 대답이 나도 어처구니없어 웃었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작업실은 구해야겠다. 평소 갖고 싶은 것이 많아 카드빚 쌓는 사람도 아닌데, 내 인생에 작업실 하나쯤 선물하는 게 뭐 어떻다고.끝내 오피스텔 계약을 마치고 이번에는 평면도를 들여다 보았다. 소설을 쓰는 책상은 창가에 두고, 그림 작업을 할 긴 책상은 가운데에 두고…. 그렇게 색연필로 표시를 하고 있으니 열 살 딸아이가 참견을 한다. "이건 뭐야? 이 네모난 건?" 아이가 가리킨 건 복층 도면이다. "그건 이층이야. 거긴 매트리스 두고 가끔씩 피곤하면 누울 거야."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층이 있다고? 여기가 이층집이라고?" 엄마
-
[with+] 기억의 날개 지면기사
나를 무아경에 빠지게하는 '나비'기억이 활짝 날개를 젖히는 순간몰두했던 밤 생생하게 되살아나시간을 안 믿지만 부디 탈출하는 멋진 순간 새해엔 더많이 만나길최근에 쓰고 있는 소설에는 꿈과 현실이 반대로 작동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현실이 진창일수록 꿈속이 찬란해지는 주인공은 어느 날 거래를 하게 되고…. 독자들이 나중에 읽으셔야 하니까 이하 내용은 생략, 아무튼 지금 내게 필요한 자료는 독특하고 풍성한 꿈들이다. 그래서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강력한 꿈, 사실상 유래가 있는 꿈, 꿈꾼 지가 너무 오래되어 어느 순간부터 소설가의 언어로 오염된 꿈들을 캐고 있다. 그러다 꿈과는 상관없는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십여 전에 해외 레지던스 작가로 선정되어 쿠바에 3개월간 체류한 적이 있다. 그때 알게 된 이들과 2박 3일간 동행했다.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K, 그녀의 다섯 살짜리 아들 J, 일 때문에 이들 모자와 함께하는 대학을 갓 졸업한 R. 이 세 명과 어느 리조트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했다. 듣자니 하루에 2만5천원만 내면 숙박은 물론 식사와 수영장, 무제한의 맥주와 닭튀김이 제공되는 리조트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리조트 앞 바다와 수영장을 오가며 물에서 나오지 않았고, 닭튀김도 실컷 먹었다.저녁이 되자 일행은 태양과 수영에 지쳐 일찍 곯아떨어졌다. 선잠에서 깨어난 나는 살그머니 밖으로 빠져나와 수영장 가장자리에 앉았다. 야자수 너머 달이 떠있고, 멀지 않은 곳에서 밴드의 음악이 들려왔다. 라틴 특유의 시끌벅적하고 쿵짝거리는 리듬, 춤추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아득히 메아리쳤다. 내 옆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키 큰 화초가 서 있었는데 달빛을 받아 음영이 칼날처럼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큰 창처럼 보였다.몸에서 잠과 더위가 빠져나가자 미지근한 욕망이 고였다. 무언가 쓰고 싶다는 욕망. 다행히 늘 들고 다니는 펜이 끼워진 수첩이 손에 있었다. 쓸 것은 오로지 묘사뿐. 우선 숙소의 일행이 떠올랐다. 나무로 만들어진 방갈로 안에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엄마와 아들, 젊은 처녀의 잠은 탐욕스럽고 적나
-
[with+] 만학의 김득신 지면기사
59세 과거 급제 조선 대표 만학도80세 생마감 때까지 책 놓지 않아김홍도·신윤복 함께 3대 풍속화가'파적도'엔 긴장감·역동성 느껴져그는 둔재였으나 노력으로 극복김득신(金得臣, 1604~1684)은 조선의 대표적인 만학도이다. 그는 회갑이 다 된 59세에 과거에 급제했다. 8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전한다. 백이전은 1억1만3천번을 읽었고 노자전은 2만번을 읽었으며 중용서는 1만8천번을 읽었다. 사기(史記)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밖에 유종원, 주책, 중용서, 목가산기, 백리해강을 수없이 읽었다.백이전을 읽은 것은 글이 드넓고 변화가 많아서였고 중용서를 읽은 것은 이치가 분명하기 때문이었고 유종원을 읽은 것은 문장이 정밀하기 때문이었고 목가산기를 읽은 것은 웅혼해서였고 백리해강을 읽은 것은 말은 간략한데 뜻이 깊어서였다. 그는 자신이 노둔함을 알아 매일 같은 책을 읽으면서 횟수를 일일이 기록했다고 전한다.김득신이 태어날 때 아버지 김치가 꿈에 노자를 만났다고 한다. 아이 이름을 노담 혹은 몽담으로 지었다. 그러나 신통한 태몽을 꾸고 태어난 아이는 머리가 나빴다. 열 살이 되어서야 글공부를 시작했고 공부가 늘지 않았다. 주변에서 저런 둔재가 있느냐고 비아냥거렸지만 아버지는 화 내지 않았다. 아들이 노자의 정령을 타고 났으니 반드시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김득신은 10대 후반에 도화서의 화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화원으로서의 활약은 순조 대까지 이어졌다. 그는 김홍도, 신윤복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일컬어지고 있지만 대중에게는 덜 알려진 화가이기도 하다. 김득신의 본관은 개성이고 자는 현보, 호는 긍재(兢齋), 홍월헌(弘月軒)이다. 1754년(영조30)에 출생하였다고 전하지만, 큰아버지 김응환(1742∼1789)과 나이 차이가 12살밖에 나지 않는다. 둘 중에 한 명의 생몰연도는 오류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김득신이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한 문헌은 1772년(영조 48)에 편찬된 '육상궁시호도감의궤(毓祥宮諡號都
-
[with+] 뻔뻔한 회장 김건우 지면기사
동화책 속 건우는 '특별한 아이'딸은 "이상한 아이야" 라고 말안해특수학급 다니는 딸 친구 준규를연민했는지 키링선물후 마구 변명난 더 잘크려 다시 한번 책 펼쳤다잠깐 놀고 들어오겠다던 아홉 살 딸아이가 도통 들어오지 않아 집 앞 놀이터로 나가보았다. 미끄럼틀에 대롱대롱 매달려 집에 올 생각이 없다. "조금만 더 놀고!"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별수 없이 벤치에 앉았다. 찬 바람이 부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놀멍'을 하는 시간은 정말 재미가 없다. 그냥 두고 나는 들어갈까, 생각하던 참에 옆에 서 있던 남자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따님이 정말 성격이 좋네요. 줄넘기도 진짜 잘하고요." 으응? 고개를 들었는데 "저, 준규 아빠입니다" 하신다. 그러고 보니 준규가 있다. 미끄럼틀 끄트머리에 서서 딸아이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손짓도 하고 있다. 화들짝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준규는 딸아이 반 친구인데, 인기가 아주 많다. 딸의 말을 빌리자면, 반 아이들은 대부분 준규와 짝을 하고 싶어한단다. 아홉 살이면 남자아이들이 한참 개구쟁이 짓을 할 때인데 준규는 그와 달리 조용하고 잘 웃는 아이인 데다 색연필도 잘 빌려주고 지우개도 잘 빌려주기 때문이란다. 딸아이도 준규랑 짝이 되고 싶어하지만 제비뽑기를 하다 보니 그게 늘 실패다. 다만 단점도 있단다. 준규는 오전에는 같은 반에서 공부하지만 오후가 되면 특수학급으로 간다. 그래서 준규와 짝이 되면 오후에는 좀 심심해진단다.놀이터에서 만난 준규 아빠는 무척 예의바른 분이었다. 그리고 다정한 분이었다. 미끄럼틀을 잘 오르지 못하고 아래에서만 맴맴 도는 준규에게만 눈을 두어도 바쁠 판국에 이리저리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는 우리 딸에게 계속 소리쳤다. "와아, 너 진짜 멋지다! 정말 용감한데? 아저씨는 너처럼 날랜 아이를 처음 봐!" 그 마음이 뭔지 알 것도 같았다. 우리 준규와 놀아줘서 고마워, 그것이었을지도 몰랐다.아홉 살 내 딸과 반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준규 아빠의 조마조마함을. 열한 살이 되고, 열두 살이 되면 준규는 '나랑' 조금 달
-
[with+] 따끔한 충고에 관한 생각 지면기사
당사자가 지적 필요하지 않다면친구간 따끔한 말 안하는게 낫다전국 19~59세 꼰대인식 조사결과'굳이 안해도 될 조언·충고' 1위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수 있어그녀는 기차를 탄다. 커다란 짐을 가진 할머니가 손잡이에 매달려 서 있고 빈 좌석이 없다. 할머니 앞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학생이 뭔가를 펴들고 열심히 읽고 있다. 그녀는 금방 학생의 이기주의에 기가 막혀서 울분을 터트린다. "뭐예요? 당신은 젊은 학생이면서 이 무거운 짐을 가진 노인이 안 보여요. 빨리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세요." 그러나 뜻밖에도 할머니 쪽에서 반박했다. "그만두시오.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고, 첫째로 이 짐은 솜이에요." 차 안의 모든 손님은 웃음을 터트린다.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쓴 '마음껏 참견을 할 것'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 나오는 이야기다.이 여성처럼 누구나 따끔한 충고를 해 주고 싶을 때가 있으리라. 그러나 그녀가 가벼운 솜을 무거운 짐으로 잘못 알아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한 결과를 낳았듯이, 충고자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충고를 하려고 할 때 우리 대부분은 상대편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말하더라도 듣는 이의 성품에 따라 충고를 고맙게 들을 수도, 불쾌하게 들을 수도 있으니 충고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여러분에게 도박에 빠져 있거나 외도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은 따끔한 충고를 해야 한다고 보는가, 따끔한 충고를 삼가야 한다고 보는가? 이에 대해 갑과 을 두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자. 충고를 해야 한다고 보는 갑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친구가 가서는 안 될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충고를 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도박에 빠진 친구는 멈추지 않으면 재산을 탕진할지 모릅니다. 외도를 하고 있는 친구는 멈추지 않으면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를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방관하고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충고가 필요 없을 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으며, 충고가 필요한 이에
-
[with+] 죄와 벌 지면기사
내 첫번째 단편집 '개그맨' 포함16세 아이에 책 5천권 해킹 당해그에게 50권쯤 읽게하면 어떨까 어쨌든 돈으로 환산 못하는 독서소중한 재산이므로 손해는 아냐이따금 소설가에도 '이건 참 소설 같은데'라는 상황이 찾아온다. 출판사에서 메일을 받았다. 알라딘 커뮤니케이션에서 전자책이 해킹당해 5천권 가량이 유출되었는데, 내 첫 번째 단편집 '개그맨'도 포함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범인은 16세 고등학생으로 텔레그램에 해킹된 책의 일부분을 자랑삼아 올려놓은 뒤 36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하라며 회사와 협상을 시도했다. 9월에 범인은 잡혔으나 이미 '손을 탄' 책들의 운명이 가늠되지 않는 가운데 이번에는 알라딘과 50여 개의 출판사 사이에서 보상을 놓고 대립 중이다. 출판사는 초유의 사태에 제대로 된 선례를 남기기 위해 개별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알라딘은 '사회기금'을 조성해 피해 출판사의 전자책을 사서 도서취약계층에 주는 등 사회적 보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출판사들이 신간의 전자책을 알라딘에 넣지 않는 사태로 이어진 것이 최근까지의 진행 상황이다.이 뉴스는 나에게 복잡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내 머리 속에는 5천권의 책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16세의 해커, 그 아이에게 이 책들은 단지 전자화된 프로그램에 불과하고 수십억대의 코인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일 뿐이다. 비가시적인 세계에서 비가시적인 세계로의 전환과 대박의 꿈만이 책들의 유일한 가치다.그런데 5천권의 책 가운데 한 권인 내 첫 책에는 등단작을 비롯해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대학 졸업 후 8년이 지나 등단을 했는데, 등단작이 은퇴작이 될까봐 겁에 질려 무수히 밤을 새웠다. 젊음과 시간과 에너지와 숱한 불면의 밤들이 통과한 그 이야기들은 내게 소설 쓰기를 가르쳐줬을뿐더러 지독한 육체노동의 결과물이다. 중년이 된 지금, 갈수록 소설쓰기가 육체노동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한마디로 작가에게 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노동의 가시적인 결과물이다. 그 아이는 전혀 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