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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샛별 같았던 박제가 지면기사
박제가(1750~1805)는 아버지 박평과 어머니 전주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좋아해서 읽은 책은 세 번씩 베껴 썼고 언제나 붓을 물고 있다가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었다. '내가 글을 처음 배운 것은 젖을 먹을 때였지'라는 시구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아버지 박평은 서자이기는 하지만 만년에 얻은 그에게 각별한 정을 주었다. 본가에서 다른 자식들과 함께 생활하게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열한 살 때 죽고 한성부의 본가에서 나오게 되면서 거처를 자주 옮겨 다니는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과부로 가난하게 살면서 십여 년 동안 좋은 옷을 입어보지 못하고 좋은 음식을 먹어보지 못하고 밤을 새워 삯바느질을 해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박제가와 교류하는 사람들 중에는 세상에 많이 알려진 사람이 많았는데 어머니는 가끔 그들을 초청해서 주안상을 차려 극진하게 대접했다. 그의 집에 다녀온 사람들은 후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집안 형편이 그처럼 빈한한지를 몰랐다. 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그처럼 컸던 것이다.서자로 신분·사람 차별하지 않는박지원 문하에서 많은 인물 교류자기 주장 강하고 굽힘이 없었다 박제가는 청년기에 우연한 기회에 박지원의 문하에 들어 교류하게 된다. 세상에 눈뜨게 되면서 사회적 천대와 멸시, 그리고 양반제도의 모순에 회의와 불만을 갖게 된다. 이때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등 여러 실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덕무와는 절친한 벗으로 평생을 함께한다. 신분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박지원 문하에서 여러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때 교류하던 인물들 중에 홍대용은 후일 박제가의 문하생이 되는 김정희의 장인 홍담용의 사촌간이 된다. 그는 늘 고민이 많았다. 장인 이관상과 사람을 가리지 않는 박지원의 배려로 전통적인 양반교육을 받았지만 서자라는 신분적인 제약으로 사회적인 차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봉건적인 신분제도에 반대하는 사상이 뿌리 깊었다. 남인인 정약용과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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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소풍길 지면기사
아홉 살 딸아이가 같은 반 친구에게서 생일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 그런데 거절했단다. 못 간다고 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화들짝 놀라 왜 거절했냐 물었더니 그 시간에 태권도장과 피아노 학원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생일 파티에 가느냐는 거였다. "아니, 그깟 학원이 뭐라고. 빠지고 다녀 와!" 그랬더니 아이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인 줄 알았단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친구 생일 파티에 가는 것이 처음이다. 제 생일에도 친구를 초대해본 적 없다. 그렇구나, 코로나 세대구나. 아이를 데리고 동네 문구점엘 갔다. 생일 선물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아이는 쇼핑 바구니를 들고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귓속말로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 물었을 때 슬라임이라 대답했단다. 그래서 슬라임 한 통 담고, 산리오 캐릭터가 그려진 필통도 담고, 천원짜리 작은 수첩과 지우개도 담았다. 민트색 포장지도 골랐다. 집에 와서는 서랍을 뒤져 마스킹 테이프를 꺼내고 아끼던 스티커도 꺼내 선물을 잔뜩 꾸몄다. 파티 전날 밤, 아이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너무너무 설레고 가슴이 뛰어 불을 끄고도 한참이나 종알거렸다.우리가 사는 동네는 신축 아파트 단지다. 그래서 딸아이와 딸 친구들이 아는 '집의 형태'는 총 세 가지다. 아파트와, 아파트가 지어질 때 함께 들어선 빌라, 그리고 아파트 둘레길을 따라 지어진 상가건물(아이들은 이걸 '빌딩'이라 부른다). 딸아이는 이제 처음으로 '빌딩'에 사는 친구네에 가는 거다. 빌딩 안 집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아이는 궁금해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사람 사는 덴 어디나 다 비슷비슷해." 엄마의 그런 말은 아이에게 소용이 없었다. 같은 반 친구 생일파티 초대받은 딸잔뜩 산 선물 꾸미며 '설레는 모습' 비가 오면 친구네 엄마가 차를 가져와 아이들을 데려간다 했지만, 비가 안 오면 친구 따라 손잡고 길 건너 '빌딩'으로 가기로 했다. 생일날 아침, 날씨는 맑다. 엄마와 아빠 없이 횡단보도를 처음 건너보게 된 것이다.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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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관리의 죽음'이 주는 교훈 지면기사
회계원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 번째 줄에 앉아 오페라 공연을 보면서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재채기를 하여 주위를 둘러봤다. 첫 번째 줄에 앉은 노인이 자신의 대머리와 목을 장갑으로 닦으며 투덜거리는 것을 보고 그 노인에게 침이 튀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노인은 다른 부서의 브리잘로프 장군이었다. 그는 앞으로 몸을 숙이고 장군의 귀에 "용서하세요 각하. 제가 침을 튀겼군요. 본의가 아니었습니다만…"이라고 속삭였다. 장군은 괜찮다고 했다. 휴식 시간에 그는 장군에게 용서를 해 달라고 더듬더듬 말했고 장군은 "허, 정말… 나는 벌써 잊어버렸다니까. 아직도 그 얘기요!"라고 말했다. 그는 '잊어버렸다고 하지만 눈에는 원한이 담겨 있는 걸' 하고 생각했다.집에 돌아온 그는 브리잘로프 장군이 화가 풀리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장군을 찾아가 재채기에 대해 해명했으나 장군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다음날 장군을 또 찾아가 사과의 말을 했다. 장군은 "꺼져!"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는 공포에 질려 속삭이듯 "뭐라고요?"라고 물었고, 장군은 "꺼지라니까!" 하고 발을 구르며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의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렸다. 그는 집에 돌아와 관복을 벗지 않은 채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여기까지가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관리의 죽음'의 내용이다.소설 속 주인공 체르뱌코프는 상관의 위압적인 고함 소리에 심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숨지고 만다. 이처럼 마음의 병으로도 숨이 끊어질 만큼 우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재채기 같은 사소한 일로도 불행해질 만큼 우리 인간은 가련한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상관 고함에 주인공이 숨지는 비극자기실수 집착… 불행으로 이어져 체르뱌코프는 왜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브리잘로프 장군은 체르뱌코프가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하려는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그의 거듭되는 사과에 분노가 치밀었다. 체르뱌코프는 장군이 자기의 사과를 받아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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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인간이라는 녹음기 지면기사
오랜만에 소설가 친구와 저녁 약속이 생겼다. 산책하다 골목 안쪽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막걸리도 한 병 곁들여 사는 안부와 소설 안부를 두루 묻다보니 음식이 나왔다. 밥술을 다 뜨고 마지막 잔을 먹는데 주인 할머니가 다가와 여덟 시에 식당 문을 닫는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괜찮다, 다 먹었다고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할머니는 아니다, 천천히 먹다 가도 된다면서 손사래를 치더니 "요즘에는 일하는 사람 쓰기가 너무 어렵다. 임금을 넉넉히 줘도 식당 문 닫을 시간되면 손님을 내쫓는다. 그래서 마무리는 주인인 내가 한다"고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그러시군요, 라고 대답한 것을 시작으로… 장장 삼십분 간,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졌다. 다시 찾은 식당서 버튼눌린것처럼또 듣게된 주인할머니 인생이야기손님마다 수십번도 더 감았을 말들반복해 퇴고한 글처럼 높은 완성도장전된 기억, 종이로 불러오고파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할머니의 인생이 쏟아져 나오는데 흥미로워서 말을 끊을 수도 없었다. 대구 사투리와 구순 노인의 어눌한 발음으로 세 아들들, 합정동에서 크게 열었던 한식당, 영특하고 발이 넓은 둘째 아들, 그리고 영화를 하는 막내 아들 이야기가 청산유수로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 식당이라면 십오 년 전쯤 나도 가 본 적이 있는 곳이다. 내가 그 식당 안다고, 나물이 환상이었다고 말하자 할머니는 쪼끌쪼글한 주름살이 다 펴질 것처럼 활짝 웃었다. 이야기의 1부는 상승, 2부는 하강이다. 이후 똑똑한 둘째 아들이 죽고, 막내의 영화가 실패하고, 그런데 식당이 너무 잘 된 나머지 카페까지 열다가 여차저차 망하고, 코로나가 오고, 이 골목에 자리 잡게 된 과정이 흘러나왔다. 소설가 둘이 만나서 소설 얘기 좀 해보려다가 진짜 소설같은 인생 이야기만 실컷 듣고 나온 밤이었다. 계산하면서 보니 이야기의 '증거'처럼 첫 식당의 나무 간판이 놓여있었다. 흥망성쇠를 다 듣고 나온 터여서 그런지 내 눈에는 난파된 배의 잔해처럼 보였다.한 달쯤 지나 다시 그 동네에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나는 맛집을 안다고 예의 그 식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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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혜성처럼 나타났다 유성처럼 사라진 천재 시인 '이언진' 지면기사
다산의 '여유당전서'를 최초로 독파했던 최익한은 자신의 저서인 '실학파와 정다산'에서 다산 정약용의 학문이 성호 이익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가 성호학파에 이언진(李彦璡, 1740~1766)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올려놓았다는 사실이다.이언진의 자는 우상(虞裳)이며, 호는 송목관(松穆館)이다. 그는 성호의 조카이자 제자인 이용휴의 제자다. 이용휴는 18세기 조선 문단의 큰 별이었다. 정약용은 말하기를 "이용휴는 명성이 한 시대의 으뜸이어서 무릇 글을 새롭게 바꾸고자 수련하는 자들이 모두 와서 수정을 받았다. 몸은 포의의 반열에 있으면서 손으로는 문원의 권력을 30여 년 동안 쥐었으니 예전에 없던 일이다"라고 이용휴의 위상을 평했다. 성호 이익 조카인 이용휴의 제자정해진 틀 탈피 새로운 문학 시도그의 글쓰기 단약 굽듯 했다는 것 이용휴는 성호의 경세학을 학문의 바탕으로 삼았다. 그러나 당시 학자들이 외면하던 양명학을 비롯하여 불교와 도교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아들 이가환은 조선 제일의 천재로 꼽혀 정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문사이자 정치가였다.이언진이 이런 이용휴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으며 그의 빼어난 재주 덕분이었다. 이용휴는 이언진의 시에 대한 첫인상을 '시집을 펼치자 빛이 괴상하고 번쩍번쩍하여 무어라 형용하기가 어려웠다'고 쓰고 있다. '시는 투식을 없애고, 그림은 격식을 따르지 말자. 정해진 틀은 뒤집고, 남이 가던 길을 벗어나자. 앞의 성인이 가던 길을 가지 말아야 비로소 훗날에는 참다운 성인이 되리라'라는 게 이언진의 시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언진은 정해진 틀, 남이 가던 길을 벗어나 새로운 문학을 시도했다. 이언진을 가장 잘 이해해 준 사람은 스승 이용휴였다. 스승은 제자의 시집 '송목관집'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시문을 짓는 작가는 남의 견해를 받아 제 견해를 세운 사람과 제 스스로 견해를 만들어 견해를 세운 사람이 있다. 제 스스로 견해를 만들어 견해를 세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고함과 편견이 개입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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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두 번째 일곱 살 지면기사
이제 한국식 나이 셈법은 사라졌다. 내 또래 친구들은 신이 났다. 원래 나이에서 한 살 빼고 두 살 빼고, 도로 어려졌다. 하지만 우리 집 꼬맹이는 잔뜩 뿔이 났다. 작년, 만 나이 법이 곧 시행된다는 뉴스가 떴을 때 나는 여덟 살 딸아이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너 이제 내년 되면 도로 일곱 살 된다? 아홉 살 아니고?"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상황을 설명해줬더니 아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떼를 썼다. "싫어! 내가 얼마나 힘들게 아홉 살이 되는 건데!" 웃음이 났다. 아니, 밥 먹고 잠자는 거로만 저절로 나이를 먹었으면서 이게 무슨 소리람. 하지만 아이의 반응은 격했다. 열심히 나이 먹은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등교를 하려던 아이가 문득 멈춰 섰다.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엄마, 그러면 나 내년에 2학년 못 되고 유치원 도로 가야 하는 거야?" 고민은 또 있었다. "엄마, 설마… 키가 다시 작아지는 건 아니지?" 알고 보니 우리 집 아이만 그런 건 아니었다. 꼬맹이들 키우는 집들마다 아이들의 한탄에 웃음보가 터졌다.딸아이의 두 번째 일곱 살이 이제 시작되었다. 뙤약볕 비추는 날에 새 나이를 갖는 건 꽤 멋지다. "두 번째 일곱 살이야. 지난 일곱 살에 못 했던 일, 아쉬웠던 일, 다시 해봐." 내 말에 아이가 코웃음을 흥, 친다. "난 아직도 마음이 안 풀렸거든! 일곱 살 된 거 속상하거든!" 푸푸 웃으며 등교시킨 후 나도 출근을 했다. 이제 사라진 한국식 나이 셈법여덟살 딸, 도로 일곱살에 심각 내게도 두 번째 일곱 살이 왔으면 좋겠다. 나의 일곱 살은 언제나 마룻바닥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방 세 개짜리 단독주택이었으나 우리 다섯 식구에게 주어진 방은 한 개뿐이었다. 방 한 개는 작은 부엌을 덧대 신혼부부에게 세를 주었고, 나머지 한 개는 총각 아저씨에게 세를 주었다. 딸기와 포도나무가 있던 작은 마당 닭장에는 신혼부부가 겁도 없이 들여놓은 칠면조 두 마리가 있었고, 엄마는 옥상 장독대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수돗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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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의도적 눈감기와 집단행동 지면기사
딸과 함께 길을 가던 어느 여름밤이었다. 한 모텔 앞에 젊은 두 남녀가 마주보고 서 있었고 그 광경을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남의 연애에 관심이 없어 가려는데 딸이 내 팔을 잡아 걸음을 멈추게 하더니 "저 여자가 위험해 보여"라고 말했다. 가만히 보니 남성은 여성을 모텔로 끌고 들어가려 하고 여성은 모텔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여성이 비틀거리는 걸로 보아 술에 취한 것 같았다. 그제서야 내 눈에도 여자가 위험해 보였다. 그런데 두 남녀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 딸이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려고 하며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때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더니 경찰차가 도착했다. 어떻게 경찰차가 오게 됐는지 알 수 없었으나 경찰차를 본 남성이 그곳을 떠남으로써 그 위험한 상황이 종료됐다. 그 당시 이십 대 초반의 딸이 남을 돕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려던 것이 대견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나 자신을 반성했다. 만약 그때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경찰차도 오지 않아 남성의 힘에 못 이겨 여성이 모텔에 끌려들어 갔다면, 여성은 어떻게 되었을까? 길거리에서 우리의 아들딸들이 어떤 곤경에 처해 있는데 그걸 보고도 도와주는 이가 없다고 상상해 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실제로 '방관자 효과'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 '방관자 효과'는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나설 것으로 생각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현상을 말한다.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 것이다. 불쾌하고 성가신 일 못 본척 하면'방관자 효과'로 끔찍한 일 발생다급한 상황엔 집단행동 더 낫다 마거릿 헤퍼넌의 책 '의도적 눈감기'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어 입력된 정보를 편집하고 걸러야만 한다. 이때 '우리 대부분은 연약한 자아와 중대한 신념을 뒤흔들어 놓는 것들을 편리하게 걸러 내고,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줄 정보들만 통과시킨다'라고 책은 말한다. 즉 우리는 불쾌하거나 성가신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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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망각의 아름다움 지면기사
초등학교 3학년인 내 딸은 '그림책의 시대'에서 빠져나온 것 같다. 그 자리에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림은 '삽화'로 축소되어 몇 페이지만에 한 컷씩 등장하지만, 완전히 물러나지는 않았다. 이렇게 삽화가 곁들여진 책 가운데 문득 에리히 캐스트너와 조우했다. 도서관에서 '하늘을 나는 교실'을 만난 것이다. 그날 밤 딸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향수에 푹 젖었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은 그 문장을 처음 읽던 나와 마주치는 일이니까. 딸이 잠든 후에도 책을 마저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겁쟁이 울리, 걸핏하면 먹을 것 타령인 마티아스, 냉소적인 재담가 제바스티안, 배에 버려진 고아 요니, 금연 선생과 사감 선생님까지. 오래된 친구들과 재회하는 기분으로 행복한 독서를 이어가다가 가난한 마르틴이 여비가 없어 크리스마스에도 기숙사에 남아있어야 하는 에피소드와 마주쳤다. 사감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르틴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고, 부모님과 눈물 젖은 재회를 한 후 선생님께 감사의 편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별똥별을 바라본다. 이 장면에서 스치듯 나온 마르틴의 대사에 나는 벼락을 맞는 심정이 되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별빛은 벌써 몇 천 년 전의 별빛이에요. 저 빛이 우리들의 눈에 닿을 때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거죠. 지금 보이는 별은 대개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사라졌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빛은 아직까지 여행을 계속 하고 있어요."딸에게 읽어준 '하늘을 나는 교실'10년전 쓴 '개그맨' 같은 구절 놀라 이 장면에서 왜 놀랐냐면 10년 전에 쓴 내 단편 '개그맨'에 이런 구절이 나오기 때문이다. '문득 그가 들려준 이야기. 우리가 보고 있는 별이 오래전에 죽은 별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원한 것은 별이나 그걸 바라보는 우리가 아닌 빛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죽은 별이 내고 있는 빛이 여전히 우주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과학책에서 읽을 줄 알았는데, 시작은 어린 시절에 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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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시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지면기사
이덕무(1741년 6월11일~1793년 1월25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서예가다. 호는 영처(處)·형암(炯庵) 등 무려 40여 개나 된다. 조부는 이필익, 부친은 이성호, 모친은 박사렴의 딸 반남박씨다. 처는 백사굉의 딸 수원백씨이며, 아들은 이광규, 사위는 유선과 김사황이다.그는 서얼 출신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박제가와 유득공, 그리고 서상수와 성대종 등 서얼들과 어울리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북학파였던 홍대용, 박지원, 이서구 등 사대부와 강세황, 심사정 등의 서화가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자신을 '책 읽는 바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학문하기를 즐겨 문자학과 금석학, 그리고 서화에 조예가 깊었다. 혈기 왕성한 20대부터 서얼시사집단인 백탑시사(白塔詩社)의 중요한 일원으로 활동을 주도했다. 1777년 간행된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이 청나라에 알려져 사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듬해에는 중국으로 가는 외교사절단의 지휘부인 서장관으로 왕복 5개월 동안의 사행 기간에 보고 들은 각종 정보를 기록하여 국왕에게 보고하고 사행단의 비리나 부정을 감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의 기균, 이조원, 반정균 등의 석학들과 교유했다. 그는 관직에 있는 15년 동안 정조로부터 520 차례의 하사품을 받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정조는 그의 문집을 간행하게 했다.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관직을 그대로 잇게 하는 은전을 베풀었다.연암 "문학이 추구해야할 두가지"갓 태어난 아이가 울고 웃는 '천진'곧장 울음이 터져 속일수없는 '진정' 이덕무는 천성이 소심하고 온건하며 섬세한 사람이었다. 후리후리한 키에 몸은 가냘팠다. 젊은 시절 지독한 가난으로 어머니와 누이가 영양실조로 폐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세상이 알아주는 독서광이었으며 책에 대한 욕심이 많아 귀한 책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멀고 가까운 것을 따지지 않고 빌려다 베꼈다. 추위로 손가락에 동상이 걸려 부었는데도 베껴 쓰기를 쉬지 않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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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아욱국 향기 지면기사
얼마 전부터 아예 요리를 그만두었다. 그만두었다, 라기보다는 포기했다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재능도 없고 집념도 없는 내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프라이팬을 놀리는 일이 그야말로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이제 매주 금요일 저녁, 일주일 치 반찬을 사러 간다. 밑반찬 다섯 종류와 메인요리 다섯 종류, 그리고 국이다. 밑반찬은 반찬통에 담아두고 메인요리와 국은 냉동실에 넣어둔다. 덕분에 내 삶은 제법 여유로워졌다. 지난주 금요일에도 나는 반찬가게엘 들렀다. 2인분씩 담아놓은 국 진열대를 지나다 보니 어라, 아욱국이다. 슴슴하게 된장 풀어 오로지 아욱만 넣고 끓인 국. 국이 담긴 지퍼백을 열면 아욱 향기가 보드랍게 코를 찌르겠지. 두 봉지를 집는다. 오래전 소설 퇴고 위해 횡성 시골로주인 할머니 마당서 뜯어온 채소 중유일하게 제대로 먹은 것은 '아욱' 벌써 오래전, 삼십 대의 나는 어느 날 짐을 싸 들고 횡성 어디쯤 시골 마을로 기어들어갔다. "또 왜! 대체 왜! 너는 나를 잡아먹으려고 이 회사엘 들어왔니?" 상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걸핏하면 한 달씩 두 달씩 쉬겠다고 생떼를 쓰는 나를 익히 보아와서 아주 인연을 끊을 듯 굴지는 않았다. "올 때 로얄살루트 21년산으로 두 병 사 올게요, 진짜로요." 새벽 구름이 지붕에 닿을 듯 낮게 내려앉는 시골집에 수트케이스 두 개를 풀며 나는 마냥 신이 났다. 어영부영 붙잡고 있던 장편소설을 마무리하고 돌아가겠다는 야심이 있었지만 나는 쓸데없이 마당에서 빨래를 삶거나 방바닥을 구르며 음악을 듣거나 했다. 언젠가는 써지겠지, 그깟 장편소설, 언젠가는 나에게 오겠지, 나는 세상만사 다 내려놓은 사람처럼 흥얼흥얼 놀았다. 주인 할머니는 마당에 무언가를 많이도 키웠다. 마당뿐 아니라 골목이 다 텃밭이었다. "아무거나 뜯어먹어. 남의 집 것들도 괜찮아." 토끼 새끼도 아니고, 아무거나 뜯어먹으라니 나는 할머니의 말이 우스워 정말 무얼 뜯어먹을까, 동네를 시시껄렁한 얼굴로 걸어다녔다. 내가 제일 먼저 뜯어온 건 옥수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