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with+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with+] 다음 중 김치의 재료가 아닌 것은? 지면기사
엄마가 택배로 김치를 보냈다. 한 통은 배추김치, 나머지 한 통은 열무김치. 내가 불러주는 맞춤법 퀴즈를 풀던 아홉 살 딸아이는 김치 때문에 퀴즈가 멈춰 골이 났다. '해도지'가 아닌 '해돋이', '낭떨어지'가 아닌 '낭떠러지', 그런 퀴즈가 요즘 세상에서 제일 재미나단다. 나는 쉬운 문제만 골라낸다. 행여 한 문제라도 틀리면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고 입술을 삐죽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날 내는 문제만 내주어서 수십 번 퀴즈를 풀어도 아이의 맞춤법 실력은 별 발전이 없다. 이걸 왜 저녁마다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를 지경이니 말이다. "엄마가 웃긴 얘기 하나 해줄까?" 김치통을 보고 떠오른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가 눈을 반짝였다.요즈음 학교 분위기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적엔 한 학교에 한두 명쯤 유별난 우등생이 있었다. 좋게 말해 우등생이지, 시험 때만 되면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선 한 문제라도 틀릴라치면 악을 빽빽 쓰고 시험지를 찢어발기고 온 반 아이들을 정신 사납게 하는 그런 아이 말이다. 도대체 시험이 뭐라고, 시험 문제지 걷어가자마자 서랍 속 참고서 우다다다 뒤져서 정답 찾아보고, 틀렸다 싶으면 세상 떠나가라 울어젖히는 못 말리는 진상.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바로 그런 애였다. 진심이다. 중학교 시절, 나는 평소에는 멀쩡했다. 잘 놀고 잘 웃고 친구들과 잘 지냈다. 친구들의 연애편지도 대필해주고, 그 공으로 바나나우유도 얻어먹었다. 쉬는시간엔 함께 도시락을 까먹고 점심시간엔 친구들과 매점으로 달려가 보름달 빵을 사먹던 평범한 열다섯 살, 중학교 1학년. 그런 내가 시험 때만 되면 돌변했다. 전교 1등을 놓치면 죽는 줄 알았던 나는 한 문제라도 틀리면 문제집을 다 찢어버리고 쓰레기통에 처박은 후 눈물콧물 다 쏟으며 법석을 떨었다. 친구들이고 선생님들이고 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중간고사 가정 시험이었다. '다음 중 김치의 재료가 아닌 것은?'이라는 문제였고, 나에게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 네 개 모두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였다. 아마도 마늘, 생강
-
[with+] 재물과 행불행 지면기사
부유하지만 근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검은 수사'에 나오는 예고르 세묘니치다. 그는 크고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 있다. 나이 든 그는 집에 놀러온 젊은 코브린에게 정원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이런 모습은 나 없이는 단 한 달도 유지되지 못할 걸세. 이 정원이 성공을 거둔 까닭은 엄청나게 크고 일꾼이 많아서가 아니라네. 성공의 진짜 비밀은 내가 이 일을 사랑한다는 데 있단 말일세"라고. 그리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접붙이기도 하고 가지치기도 하고 묘목도 심고 모든 걸 자기가 한다면서, "내가 죽으면 누가 그걸 다 돌볼까? 누가 일을 할까?"하고 걱정을 한다.미셸 드 몽테뉴의 책 '에세'에는 돈을 갖게 된 때 근심을 가졌던 이야기가 나온다. 여행을 갈 때면 돈 가방 때문에 짐꾼들이 믿을 만한지 걱정되고, 돈 가방이 눈앞에 없으면 안심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돈궤를 집에 두고 오면 항상 그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며,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고 몽테뉴는 썼다. 우리 주위에도 부유하나 행복해 보이지 않는 이가 얼마든지 있다. 내가 지인한테서 들은 70대 할머니는 여러 가구가 세 들어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을 갖고 있었다. 계약보증금은 싸지만 월세가 비쌌기에 짭짤하게 재미를 보았다. 그런데 경기가 침체되면서 월세를 몇 달 내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세입자들과 다툼이 일어나 속을 끓이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사했다. 소문에 따르면 노인은 젊은 시절부터 악착같이 돈을 모아 몇 년 전 건물을 샀다. 건물을 산 뒤에도 구두쇠였던 노인은 비싼 음식을 사 먹지 않았고, 비싼 옷을 사 입지 않았다. 그는 어쩌면 돈의 노예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불행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위의 세 가지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재물은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고 마음에 그늘이 지게 만들기도 한다. 부자일수록 근심은 더 많다는 속담이 있다. 부자는 아무 근심도 없는 것 같지만 그 생활 속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가난한
-
[with+] 나라는 박물관의 관람객 지면기사
일주일간 대대적인 '집 안 이사'가 있었다. 원래는 딸의 방을 새로 만들어주려는 이유였는데, 그러다보니 함께 쓰던 공부방을 분리하고 남편의 취미 방을 처분하고 내 서재를 독립해나가는 식으로 일이 커졌다. 끝나고 보니 방 세 개의 모든 가구가 재배치되는, 방들끼리 이사를 다니는 고된 작업이었다. 이참에 오래된 물건도 솎아내고 묵은 먼지도 털어 내다보니 모든 것이 정리되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서재에 앉아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딸이 태어난 후 십 년만에 온전한 서재를 되돌려 받게 된 셈이었으니까. 책장을 정리하면서 나만의 버릇대로 '심장' 칸을 하나 만들었다. 책장 한 가운데를 비우고, 그 안에 가장 좋아하는 '경전' 몇 권을 가져다 놓는 것이다. 거실 벽을 책장으로 채울 때 만들어본 방법인데 이렇게 한복판을 비워두고 평생 읽을 보물 같은 책들을 채우면 책장 전체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자동차로 치면 엔진룸에 해당한다고 할까? 거실의 심장 칸에는 '돈키호테'와 '모비딕', '보르헤스 단편집'과 '빌러비드' 등이 있고 그 위쪽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있다. 서재의 심장에는 무엇을 넣어둘까? 나는 즐거운 고민에 빠져 일단 전집에서 '안나 카레리나' 세 권을 가져다 넣어두었다.(이 글을 쓰다말고 일어나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도 추가했다.) 서재 심장엔 '안나 카레리나' 세권한쪽엔 습작·편지 등 '인생 기념품' 여섯 개의 책꽂이로 둘러싸인 책상은 견고한 성채처럼 보인다. 큰 책상에 대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결혼하면서 6인용 탁자 두 개를 사서 하나는 책상으로, 하나는 식탁으로 쓰고 있다. 이 커다란 짐승 같은 탁자를 책상으로 길들이기 위해 두꺼운 옥스포드 천을 깔고 몇 개의 '성물'을 늘어놓았다. 자주 쓰는 파일꽂이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 필기구와 핸드크림이 꽂힌 도자기통, 나침반이 그려진 문진과 향초 등등이다. 이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있으려니 정찬을 준비하는 집사 같다. 달리보면 나만이 유일한 요리사요 손님이지만 이제부터 이 책상에서 쓰게 될
-
[with+] 18세기 조선 문단의 이단아 이옥 지면기사
이옥(李鈺, 1760~1813)은 경기도 화성 출신으로 조선 후기의 시인이다. 효령대군의 후손이었으나 서얼이었다.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가선대부 호위별장 이만림이고, 할아버지는 어모장군 행용양위부사과를 지낸 이동윤이며, 아버지는 이상오이고, 어머니는 남양홍씨로, 이성현감 홍이석의 딸이다. 실학자 유득공은 이모의 아들로, 이종 사촌형이 된다.그는 18세기 조선 문단의 이단아였다. 정조는 선비들의 기풍을 바로잡겠다는 생각을 하고 문체반정을 통해 대대적인 문장개혁을 실시했다. 당대의 문장가들인 박지원이나 이덕무, 박제가도 반성문 제출을 왕으로부터 요구받았다.이옥은 문체반정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과거시험 자격이 여러 차례 제한되기도 하고 멀리 기장까지 쫓겨나 군인으로 편입되기도 했다. 그의 불경스럽고 불온한 문체가 늘 말썽이었다.정조, 선비기풍 잡으려 '문장개혁'불온한 문체로 왕의 미움받은 이옥 그는 왕의 미움을 받고 고향으로 쫓겨 내려가면서도 부지런히 글을 썼다. 예컨대 남정십편(南程十篇) 등이 그것인데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보고 들은 것들 열 편을 쓴 것으로 반성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고 불경스럽고 해괴한 내용들이었다.이옥의 생애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어려서의 이름이 기상이며 호는 경금자(絅錦子)라고 썼다. 별볼일 없는 무반의 후손으로 당색은 당시 몰락의 길을 가던 북인 계열이었다. 그의 문집은 제대로 수습되지 못해 필사본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기도 했다. 그것들을 2009년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다섯 권의 전집으로 묶어 출판했다. 그의 복권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할 만한 분위기다.그는 시인이면서도 시는 자신이 짓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언'은 무엇 하고자 지은 것인가? 어째서 국풍이나 악부나 사곡을 짓지 아니하고 굳이 이언을 지었소?" 이언은 네 여성의 삶을 서로 다른 가락으로 노래한 그의 시다. "내가 한 게 아니라오. 주재자가 그렇게 시킨 것이라오."이 질문은 처음부터 '이걸 시라고 썼는가'
-
[with+] 조금 다정한 노후 대책 지면기사
"인생이 꾸꾸무리하다." 밤늦게 전화를 걸어온 선배의 말에 나는 푸푸 웃었다. "왜요?" 내가 묻자 그냥 한숨이다. 들어보니 회사 옆자리 동료가 퇴사를 했단다. 그게 뭐라고, 회사 생활 어언 25년 가까이 한 사람이 고작 동료의 퇴사에 울적해졌다니. "내 또래거든. 이제 더는 다른 회사에 들어가긴 힘들다는 말이잖아. 인생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퇴사라는 거지." 아, 나는 짧게 탄식했다. "이젠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어.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아." 그럴 테다. 점심시간에 제일 먼저 부장님에게 무얼 드실 건지 물어보는 사람은 이제 더 없고 퇴근길, 한잔할까? 하는 부장님의 말에 알겠습니다! 하고 벌떡 일어나는 사람도 이제는 없다. 그런 자세를 가진 사람은 이제 다 부장님이 되었거나 퇴사했다. 부장님은 혼자 놀아야 한다. 그래서 외로운 부장님에게 내가 말했다. "목요일마다 그림 모임 안 할래요? 생초보들 모여서 노닥노닥 얘기 나누면서 그림 그리기로 했거든." 태풍이 온다던 날이었다. 폭염에 지쳤다가 비 오기 전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자 나는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림 모임 같은 것 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난 것이었다. 늘 그랬듯 나는 즉흥적인 사람이라 꼼꼼한 계획 같은 건 세우지도 않고 페이스북에 짧은 알림 글을 올렸다. 뭐 대단히 예술 하는 거 말고, 소소하게 그림 그리다가 사는 이야기나 조잘조잘 나누고, 두어 달 그리다 보면 완성작도 모일 거고, 그러면 조그마한 동네 갤러리 같은 데 대관해서 전시회도 해보는 거 어때요? 하고 말이다. 그림이라는 게 말이 쉽지 한 번도 안 그려본 사람투성이일 텐데 사람들이 모이겠어?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여덟 명이 모였다. 정말 순식간이었다.동료 퇴사에 울적해하던 직장인 선배외로운 부장님께 초보 그림모임 권유이유는 할머니 됐을때 행복하려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색연필, 물감 등을 가득 펼쳐놓고 일을 벌이기엔 장소가 마땅찮았으므로 우리는 아이패드만 챙기기로 했다. 그림 선생님도 없고, 그러니까 무얼 배우려고 만
-
[with+] 선행과 이로움 지면기사
'자네가 말하는 그 착한 일들을 실천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쾌락 때문이야.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이지. (중략) 자네가 거지에게 동냥을 하면 그건 자네 자신의 쾌락을 위한 거야. 내가 위스키 소다를 또 한 잔 마시는 게 나 자신의 쾌락을 위한 것이나 같아'.-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중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다가 이 글을 만났다. 주인공 필립에게 시인 크론쇼가 한 말이다. 필립이 쾌락이라는 표현에 반감을 나타내자 크론쇼는 '행복'이라 하지 않고 '쾌락'이란 말을 사용하겠다며 그 이유는 쾌락이 사람의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쾌락을 최고선으로 여겼던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상기시킨다. 우리 인간이 착한 일들을 실천하는 이유가 쾌락 때문이고, 그것이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악행은 물론이고 선행조차도 쾌락이라는 이로움 때문에 한다. 쾌락을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또는 흐뭇함으로 바꿔 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지인에게 생일 선물을 주었다면 그것이 즐거워서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서다. 구걸하는 거지에게 돈을 주었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의 기분이 좋아져서다.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금을 냈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의 기분이 좋아져서다. 착한일 실천하는 이유는 쾌락때문거지에 돈주는 건 기분 좋아져서다 이번엔 자원봉사자들이 홍수로 침수된 지역에서 피해 복구를 도우며 고생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들에겐 어떤 이로움이 있을까? 일례로 흐뭇함이라는 이로움이 있을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 듯싶다. 하나는 힘들지만 봉사 활동을 하면서 그 자체로 흐뭇함을 느끼는 부류다. 또 하나는 힘들지만 봉사 활동이 끝난 뒤에 흐뭇함을 느끼는 부류다. 마치 집안 청소를 마친 후 흐뭇함을 느끼듯이 말이다. 혹자는 자신이 하고 싶어서 봉사를 하는 것이니,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
[with+] 인생의 슬픔 지면기사
나는 상대적으로 명랑한 사람이다. 그건 우리 엄마의 뱃속에 입장하기 전에 내가 타고 있던 구름이 유난히 푹신푹신하고 경박한 물방울 씨앗을 품었던 탓이 아닐까. 말도 많고 호기심도 많고 뛰어다니기 좋아하던 유년시절에서 출발해 여전히 말도 많고 호기심도 많고 자전거타기를 좋아하는 중년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생각한다. 인간의 생애는 왜 이렇게 슬픔이 가득할까! 도서관 한 귀퉁이에 앉아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손녀의 짧은 여행을 그린 그래픽노블을 보다가 문득 비애감에 물들었다. 책 속의 인물들이 겪는 고통은 너무나 보편적인 일이었기에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그러자 어젯밤 엄마와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난밤 엄마와 나눈 이야기 떠올라이른 나이 세상 떠난 새롬이 아줌마아들에 남편마저 잃은 젬마 아줌마 엄마의 친구들, 그 중에서도 세상을 떠난 세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대화의 중심이 되었다. 첫 번째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 새롬이 아줌마. 호리호리한 몸피와 활기 넘치는 목소리. 이분은 예쁘고 세련된 외모에 위트가 넘치고 취향이 고상했다. 그때만 해도 아파트 화단을 파서 김장독을 묻던 일이 허용된 터라 엄마가 항아리에서 김장김치를 꺼내면 아줌마가 지나가다 한쪽씩 얻어가던 기억이 난다. 엄마 친구지만 내 친구이기도 해서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오 분이나 십 분씩 대화를 나누었다(엄마 친구 중 단독으로 대화가 '통하던' 분이다). 이렇게 빛나던 새롬이 아줌마는 이혼 후에 가난으로 고생하다 이른 나이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아주머니는 두꺼운 겨울옷이 없어 중학생 아들의 남자용 파카를 입고 있었다. 언젠가 엄마는 노래방 테이프에서(그때는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주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새롬이 아줌마의 목소리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아줌마의 평소 인상과 달리 노래 목소리는 비통했다. 이것이 사실인지 엄마의 해석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고인이 된 지 십수 년이 지난 뒤 재생되어 나오는 그 노래를 떠올려보았다. 두 번째는 젬마 아줌마. 엄마와 성당 레지오를 함께 하며 단짝으로 지낸
-
[with+] 샛별 같았던 박제가 지면기사
박제가(1750~1805)는 아버지 박평과 어머니 전주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좋아해서 읽은 책은 세 번씩 베껴 썼고 언제나 붓을 물고 있다가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었다. '내가 글을 처음 배운 것은 젖을 먹을 때였지'라는 시구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아버지 박평은 서자이기는 하지만 만년에 얻은 그에게 각별한 정을 주었다. 본가에서 다른 자식들과 함께 생활하게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열한 살 때 죽고 한성부의 본가에서 나오게 되면서 거처를 자주 옮겨 다니는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과부로 가난하게 살면서 십여 년 동안 좋은 옷을 입어보지 못하고 좋은 음식을 먹어보지 못하고 밤을 새워 삯바느질을 해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박제가와 교류하는 사람들 중에는 세상에 많이 알려진 사람이 많았는데 어머니는 가끔 그들을 초청해서 주안상을 차려 극진하게 대접했다. 그의 집에 다녀온 사람들은 후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집안 형편이 그처럼 빈한한지를 몰랐다. 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그처럼 컸던 것이다.서자로 신분·사람 차별하지 않는박지원 문하에서 많은 인물 교류자기 주장 강하고 굽힘이 없었다 박제가는 청년기에 우연한 기회에 박지원의 문하에 들어 교류하게 된다. 세상에 눈뜨게 되면서 사회적 천대와 멸시, 그리고 양반제도의 모순에 회의와 불만을 갖게 된다. 이때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등 여러 실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덕무와는 절친한 벗으로 평생을 함께한다. 신분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박지원 문하에서 여러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때 교류하던 인물들 중에 홍대용은 후일 박제가의 문하생이 되는 김정희의 장인 홍담용의 사촌간이 된다. 그는 늘 고민이 많았다. 장인 이관상과 사람을 가리지 않는 박지원의 배려로 전통적인 양반교육을 받았지만 서자라는 신분적인 제약으로 사회적인 차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봉건적인 신분제도에 반대하는 사상이 뿌리 깊었다. 남인인 정약용과 친
-
[with+] 소풍길 지면기사
아홉 살 딸아이가 같은 반 친구에게서 생일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 그런데 거절했단다. 못 간다고 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화들짝 놀라 왜 거절했냐 물었더니 그 시간에 태권도장과 피아노 학원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생일 파티에 가느냐는 거였다. "아니, 그깟 학원이 뭐라고. 빠지고 다녀 와!" 그랬더니 아이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인 줄 알았단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친구 생일 파티에 가는 것이 처음이다. 제 생일에도 친구를 초대해본 적 없다. 그렇구나, 코로나 세대구나. 아이를 데리고 동네 문구점엘 갔다. 생일 선물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아이는 쇼핑 바구니를 들고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귓속말로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 물었을 때 슬라임이라 대답했단다. 그래서 슬라임 한 통 담고, 산리오 캐릭터가 그려진 필통도 담고, 천원짜리 작은 수첩과 지우개도 담았다. 민트색 포장지도 골랐다. 집에 와서는 서랍을 뒤져 마스킹 테이프를 꺼내고 아끼던 스티커도 꺼내 선물을 잔뜩 꾸몄다. 파티 전날 밤, 아이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너무너무 설레고 가슴이 뛰어 불을 끄고도 한참이나 종알거렸다.우리가 사는 동네는 신축 아파트 단지다. 그래서 딸아이와 딸 친구들이 아는 '집의 형태'는 총 세 가지다. 아파트와, 아파트가 지어질 때 함께 들어선 빌라, 그리고 아파트 둘레길을 따라 지어진 상가건물(아이들은 이걸 '빌딩'이라 부른다). 딸아이는 이제 처음으로 '빌딩'에 사는 친구네에 가는 거다. 빌딩 안 집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아이는 궁금해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사람 사는 덴 어디나 다 비슷비슷해." 엄마의 그런 말은 아이에게 소용이 없었다. 같은 반 친구 생일파티 초대받은 딸잔뜩 산 선물 꾸미며 '설레는 모습' 비가 오면 친구네 엄마가 차를 가져와 아이들을 데려간다 했지만, 비가 안 오면 친구 따라 손잡고 길 건너 '빌딩'으로 가기로 했다. 생일날 아침, 날씨는 맑다. 엄마와 아빠 없이 횡단보도를 처음 건너보게 된 것이다. 아침을
-
[with+] '관리의 죽음'이 주는 교훈 지면기사
회계원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 번째 줄에 앉아 오페라 공연을 보면서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재채기를 하여 주위를 둘러봤다. 첫 번째 줄에 앉은 노인이 자신의 대머리와 목을 장갑으로 닦으며 투덜거리는 것을 보고 그 노인에게 침이 튀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노인은 다른 부서의 브리잘로프 장군이었다. 그는 앞으로 몸을 숙이고 장군의 귀에 "용서하세요 각하. 제가 침을 튀겼군요. 본의가 아니었습니다만…"이라고 속삭였다. 장군은 괜찮다고 했다. 휴식 시간에 그는 장군에게 용서를 해 달라고 더듬더듬 말했고 장군은 "허, 정말… 나는 벌써 잊어버렸다니까. 아직도 그 얘기요!"라고 말했다. 그는 '잊어버렸다고 하지만 눈에는 원한이 담겨 있는 걸' 하고 생각했다.집에 돌아온 그는 브리잘로프 장군이 화가 풀리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장군을 찾아가 재채기에 대해 해명했으나 장군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다음날 장군을 또 찾아가 사과의 말을 했다. 장군은 "꺼져!"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는 공포에 질려 속삭이듯 "뭐라고요?"라고 물었고, 장군은 "꺼지라니까!" 하고 발을 구르며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의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렸다. 그는 집에 돌아와 관복을 벗지 않은 채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여기까지가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관리의 죽음'의 내용이다.소설 속 주인공 체르뱌코프는 상관의 위압적인 고함 소리에 심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숨지고 만다. 이처럼 마음의 병으로도 숨이 끊어질 만큼 우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재채기 같은 사소한 일로도 불행해질 만큼 우리 인간은 가련한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상관 고함에 주인공이 숨지는 비극자기실수 집착… 불행으로 이어져 체르뱌코프는 왜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브리잘로프 장군은 체르뱌코프가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하려는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그의 거듭되는 사과에 분노가 치밀었다. 체르뱌코프는 장군이 자기의 사과를 받아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