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with+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 [with+] 시인 정조가 수원시장을 위하여

    [with+] 시인 정조가 수원시장을 위하여 지면기사

    수원 화성을 축성한 정조(조선 22대 왕)는 시인이었다. 정조는 시인으로서 고갈되지 않는 상상력의 샘물을 언어의 두레박으로 공급하며 인간 정신을 우위에 두었다. 평소 책 읽기와 글쓰기를 즐겨 했던 정조가 추구했던 인간 정신은 저서 '홍재전서'를 비롯한 문집을 통해 인문학의 정수를 펼쳤다. 여기에 19세기 조선의 문예부흥을 주도했던 정조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500여 편에 이르는 방대한 한시로 그 심상을 드러냈다. 개혁 군주로서 이상적 정치를 실현하는데 그의 시편들은 근본적 철학과 시적 상상력이 고도로 함축된 문화유산으로 남았던 것. 정조가 시인이 되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서 찾을 수 있다. 11살 때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영조와 노론 세력은 정조의 애원을 싸늘하게 외면했다.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사망한 후 정조는 왕 위에 오를 때까지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비극적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파생된 외로움과 고독은 그에게 시를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외로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은 고독의 정원에서 시심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 이로써 정조가 극복한 트라우마는 강력한 군왕으로 성장시킨 모토가 되었고, 콤플렉스는 고뇌에 찬 강인한 인간관으로 승화되었던 것이다. 정조가 물려준 세계유산 '수원화성''남문 언덕' 수원을 넘어 'K-문화'역사·실제성 갖춘 '무공해 스토리' 이 가운데 사도세자가 갇혀 죽은 뒤주는 넘지 못하는 언덕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어린 정조에게 자기 키만 했을 뒤주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가로막고 있는 언덕을 경계로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밖에…. 넘을 수 없었던 이 언덕은 정조 재임 시절 최고 업적으로 평가받는 수원 화성 축조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사도세자의 무덤을 화성으로 이장한 후 1796년 수원에 동서남북 사대문이 들어서면서

  • [with+] 불행으로 얻는 행복감

    [with+] 불행으로 얻는 행복감 지면기사

    얼마 전 거실을 청소하다가 청소할 만큼 몸이 건강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몇 년 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를 지병으로 가지고 있는 데다 '테니스 엘보'라는 병을 앓게 되어 팔의 통증이 심할 때였다. 팔에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다녔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집안 청소조차 하지 못했고 우울과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조심하지 않으면 병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청소할 수 있는 현재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 삶인가.그러고 보니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의 아이엠에프 사태로 인해 남편의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고 나서 아이엠에프 사태 이전에 돈 걱정 없이 살았던 때가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던 적도 있었다. 돈 걱정 없이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임을 절감했던 것이다. 왜 인간은 불행을 겪어야만 겸손해지고 감사를 배우게 되는 걸까. 행복 출발점인 감사 모르는건 불행건강 위협 미세먼지 있었던 까닭에요즘 공기 맑으면 기쁨 맛볼 수 있듯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마을에 한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마을의 랍비를 찾아가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했다. "우리 집은 게딱지만한데 아이들은 주렁주렁 딸린 데다가, 제 아내만한 악처는 다시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나라에서 가장 악처일 겁니다. 아, 저는 어떡하면 좋을까요?""자네 염소를 가지고 있는가?""물론이죠.""그렇다면 염소를 집안에 들여놓고 기르게나."농부는 의아한 얼굴을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이튿날 다시 찾아와 말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악처에다 염소까지……! 더는 못 참겠습니다.""닭을 기르고 있는가?""물론입니다.""그럼 닭을 전부 집안에 들여 기르게나."사나이는 또다시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이튿날 또 찾아왔다. "이젠 세상이 끝장입니다!""그렇게 괴로운가?""마누라에다 염소에다 열 마리 닭에다! 오오! 하느님 맙소사!""그럼 염소와 닭을 모두

  • [with+] 즐거운 성가심

    [with+] 즐거운 성가심 지면기사

    오늘 반팔을 입었다. 과연 항온동물이 맞는 걸까 싶게 추위도 더위도 많이 타는 나는 얇은 옷 위에 뭔가를 걸쳐 입기를 좋아한다. 춥고 덥고 배고프고 졸린 것을 싫어하는 정도가 성인치고 무던하지가 못해 마흔을 훌쩍 넘겼어도 덜 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요 며칠 날씨는 흠잡을 것 없이 좋았다. 그렇지 않은가? 봄의 몇 주간, 활짝 피어난 호사스러운 날씨는 대부분의 인간을 낙천적으로 만든다. 햇볕이 따뜻하고 새순이 파릇파릇한 봄날에는 여간해서 인상을 찌푸리기 힘들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은 1층인데, 나무 데크만 놓인 야외 발코니가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우려 때문에 여태껏 무용지물인 공간이었다. 그러다 발코니를 가릴 수 있는 천을 사서 둘렀더니 나비효과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노지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에 대한 욕심이 생겨난 것이다. 쇠뿔은 항상 단김에 빼는 우리 부부는 곧바로 꽃시장으로 달려갔다. 기다란 화분 세 개를 비롯해 흙과 데이지 모종, 튤립 구근 여섯 개, 약간의 야생화 한 아름을 안고 돌아왔다. 이런 욕망은 자꾸 번성하기 마련인지라 어디선가 접이식 테이블도 생기고, 의자도 놓고, 햇빛을 가릴 수 있는 2m짜리 차양도 쳐놓았더니 야외카페가 부럽지 않은 나만의 작업실이 탄생했다. 발코니 꾸미니 카페 못잖은 작업실변명인지 다짐인지 모를 글 쓰다보니어느덧 노트의 마지막 장 펼쳐졌다 이상고온으로 30도에 육박하는 사월의 어느 날, 나는 이 일인용 카페에 앉아있었다. 커피를 정성껏 내리고 멜빌의 '모비딕'을 읽는 것으로 나 혼자만의 오픈식을 경건하게 가졌다. 두 시간이 넘어가자 머리 위에 목욕탕 마크가 모락모락 떠오를 만큼 더웠지만 그래도 굳세게 앉아있었다. 나한테 뭔가가 '내세워지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생각도, 감정도, 상상도 아니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빛으로 달아오른 공기 속에 놓여 있을 때 일정한 상태로 예열되는 '감각'에 가까웠다. 뜨거운 햇빛 속에 앉아있으면 나는 항상 여행지의 해변이 떠오른다. 첫 배낭여행지가 터키와 이집트

  • [with+] 마법의 포장마차

    [with+] 마법의 포장마차 지면기사

    오랜만에 회식이란 걸 했다. 새로운 구성원들이 만난 자리라 낯설 법도 한데, 모두들 너무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술을 먹는다며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였다. 신나게 고기를 굽고, 서로의 빈 술잔을 채워주며 웃고 떠들다 보니 꽤 오래 전 부산에 놀러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핑계 삼아 부산까지 간 참이었다. 충동적인 여행이었기에 영화는 한 편 봤고, 그나마도 조느라 제대로 못 봤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시원한 가을 바람과 정겨운 부산 사투리를 듣는 재미로 하염없이 걸어다니던 밤거리에서 신기한 포장마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거리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부산의 꽤 큰 번화가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포장마차였다.온갖 음식을 즉석에서 뚝딱 만들어내는 그 포장마차는 손님들이 주인장에게 "오빠, 나 이거 해도. 양 많이!"를 외치는 곳이었다. 우리 역시 안주를 주문하는 우렁찬 사투리에 반해 남아 있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앉아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여기 오면 이걸 먹어야 한다"라며 바로 추천이 들어왔다. 그 오지랖이 피곤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테이블은 분리되어 있지만, 포장마차를 둘러싸고 앉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섞으며 일행처럼 노는 분위기였다. 옆자리에서 먹고 있는 안주를 쳐다보다가 "옆자리랑 똑같은 거 달라"고 시키기도 하고, "어디서 왔냐" 물어보며 서로의 안주를 나눠먹기도 했다. 부산영화제 기간이라 외지인이 많아서였을지도 모르고, 그날만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낯선 이에 대한 환대와 서로에 대한 너그러움이 넘치던 가을밤이었다. 살짝 취했던 우리는 처음 안주를 추천해줬던 바로 옆 테이블의 안주를 반이나 뺏어먹고, 우리가 시킨 안주가 나오면 옆 테이블에 다시 덜어주고를 반복했다. 부산국제영화제 핑계 삼아 간 여행포장마차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안주도 나눠먹고 웃으며 이야기꽃 사람간의 접촉이 금기시되는 코로나19 시대에는 시도는커녕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날 부산의 포장마차에서는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우리 테이블뿐만 아니라 둘러앉은

  • [with+] 나무꾼 시인 정초부

    [with+] 나무꾼 시인 정초부 지면기사

    정초부(1714~1789)는 정조 때의 이단전과 함께 시단을 풍미했던 노비 시인이다. 그는 경기 양평 사람이다. 성은 정(鄭 혹은 丁)씨라고 알려졌지만 이름은 분명한 초부(樵夫)다. 나무꾼이란 뜻이다. 그는 명문가인 여씨((呂氏) 집안의 노비였다. 참판을 지낸 여춘영의 노비라고도 하고 승지 여만영의 노비라고도 하지만 어떻든 여씨 집안의 노비였던 것은 분명하다.그는 자존심이 강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은 봉(鳳)이었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시를 아는 사람은 많았다. 그만큼 시가 빼어났다. 그리고 그의 시를 찾아 읽는 독자가 많았던 것이다.노비였던 그의 생김새는 몹시 고괴했다. 그러나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 그를 '예스런 선비의 멋진 용모를 가졌고 수염이 아름답고 흉금이 툭 터져 구김살이 없다'는 인물평을 남긴 사람도 있다. 이런 인물평은 그의 시문에 매료되었던 사람의 글일 것이다.명문가 여씨 집안 노비이자 나무꾼기억력 좋아 주인의 글 다 외워버려빼어난 詩 솜씨로 읽는 독자 많았다 정초부는 낮에는 산에 가 나무를 해서 지고 내려오고 밤에는 주인을 모시고 사랑채에서 잤다. 주인은 늘 책을 읽었다. 그는 주인이 글 읽는 소리를 듣고는 모두 외워버렸다. 경탄할만한 기억력이었다. 이런 그를 주인이 가상하게 여겨 자식들과 함께 공부하도록 했다. 그는 학업성취가 빨랐다. 특히 과거시험에 필요한 과시(科詩)를 잘 지었다. 그의 문장은 주인집 자제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당대에 그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예컨대 주인집 자제들을 위해 과거 시험장에 들어가 대리시험을 쳐서 주인집 자제들을 급제시켰다는 소문도 그중의 하나다. 그 대가로 주인이 그를 양인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었다. 여씨 집안에서는 그를 더 이상 노비로 묶어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문이 훌륭한 나무꾼으로 명성이 높은 그를 종으로 부린다면 이는 사대부 사이에서 평판이 나쁘게 날 수도 있는 것이어서 노비에서 양인으로 신분을 상승시켰을 것이다.그는 양인

  • [with+] 말할 수 없는 것들

    [with+] 말할 수 없는 것들 지면기사

    작년인가의 일이다. 수원에서 문학 관련 심사 일정이 있었다. 수원까지는 집에서 약 한 시간 거리여서 나는 일찌감치 출발했다. 중간에 택시로 갈아탔다. 차가 좀 막히는가 했는데 한참 딴생각에 빠졌다 눈을 들어보니 어라, 차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사고가 난 건가요?" 기사님께 물었는데 기사님도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글쎄요… 여기가 이런 곳이 아닌데." 수원역 근처였다. 심사장까지는 꽤 남았는데, 시계를 보니 영 불안했다. 사고가 났다 해도 금방 처리되겠지,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기다렸는데 차들은 점점 밀려들 뿐 한 대도 그 길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결국 기사님이 말했다. "내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수원역 쪽으로 얼른 가셔서 버스를 타세요." 차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1차선 도로에 있었지만 나는 내렸다. 내려서 보니 더 가관이었다. 수원역 앞 도로는 몽땅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냅다 수원역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는데,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늦었다고화 낼 수도 변명 할 수도 없는 일 시위대는 정류장 앞 버스를 막아서고 도로를 점거했다. 버스도 택시도 그 어떤 차도 수원역 사거리를 지나갈 수 없었다. 내가 타야 하는 버스 역시 꽁꽁 붙잡혀 있었다. 안 되는데, 지금 안 타면 진짜 늦는데. 발을 동동 굴러봐야 소용이 없었다. 일단 더 달려 시위 장소에서 떨어진 다음 택시를 잡아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고, 택시 앱을 아무리 눌러봐도 잡히지 않았다. 뛰어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고 애가 탄 심사장 스태프는 계속 전화를 걸어왔다. 무작정 달려 시위 장소에서 더 멀어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싸늘한 날이었지만 코트 속 등이 땀에 젖었고 나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찌어찌 택시를 겨우 잡아타고 도착했지만 이미 30분이나 지각을 한 상태였다. 너희 불편 알아서 해결 하라는건 약자 향한 지질하고 우스운 허세오만함 차마 입밖에 내선 안될 말 심사가 끝나고 돌아오던 길, 다른 심사위원 한 분

  • [with+] 광교산 영주를 찾아서

    [with+] 광교산 영주를 찾아서 지면기사

    고대로부터 일상에서 분리된 산은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왔다. 도달하기 힘든 산일수록 높고 깊고 험한 통로를 가졌다. 이러한 산을 오를수록 세속에서 멀어지며 성스러운 공간으로 접어드는 느낌이 든다. 자연과 동화된 상태에서 낙엽을 떨구듯이 자신을 비워가는 노정이 펼쳐진다. 거기에 사회 속에서 겪고 있는 일들과 지나간 일들이 바람결에 스쳐 지나가면서 근원적인 삶을 바라본다. 그리고 세속의 삶을 성찰하면서 자신을 정화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 이때 한 걸음 한 걸음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 된다. 그렇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는 것은 산이므로 자연의 허락 없이는 한치도 나아갈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산행은 자연이 베푸는 '신성한 축제'이며 '성찰의 시간'이 되는 데 있다. 게다가 건강은 덤으로 얻어지는, 산이 무상(無想)으로 주는 무념(無念)의 선물이다.담장은 내것과 타자의 것 경계 척도허물어 가면 더 많은 행복 가져다 줘 몸 담고 있는 우리 대학 인근에 수원의 광교산이 있다. 그것도 연구실에서 5분 남짓 거리에 광교산이. 광교산은 고려 태조 왕건(877~943)이 수원 화성을 지날 때 광악산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광악산을 광교산(光敎山)으로 칭한 것으로 전해진다. 빛의 신성함이 광교산에 서려 있다는 의미로 천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광교산은 성스러운 것으로 통속적인 삶을 가르친다.정상에서 바라보는 광교산은 시가지를 품고 있는 수원의 주산이다. 서쪽으로 화성의 서해안이, 북쪽으로 서울의 관악산이 보이며 동쪽으로 용인과 남쪽으로 동탄과 오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한 가운데 작을대로 작아져서 보이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보기도 한다. 그것은 티끌과 같은 욕망 속에서 복잡한 세계에 얽히고설켜 살고 있다는 생각과 마주하는 것. 그러한 사색의 끝에 세속적인 욕망의 경계가 사라진 공간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지각할 수 있다.'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 [with+] 단점에 내재한 장점

    [with+] 단점에 내재한 장점 지면기사

    한 선배의 말에 따르면 자기 남편은 자상한 게 지나쳐 자신이 쓴 가계부를 들춰 보고 머리를 맘대로 자르지 못하게 해서 싫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편감으로는 자상하지 않은 것이 낫다고 단언했다. 그 선배를 비롯해 여러 사람과 배우자의 장단점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내가 깨달은 게 있다. '장점에는 단점이 내재해 있고 단점에는 장점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자상함을 장점으로 가진 이는 배우자에게 잔소리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자상하지 않음을 단점으로 가진 이는 배우자에게 잔소리를 할 가능성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절약 정신이 있음이 장점인 사람은 배우자에게 절약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절약 정신이 없음이 단점인 사람은 배우자에게 절약을 강요할 가능성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깔끔한 성격을 장점으로 가진 이는 집안 청결에 예민해서 배우자를 힘들게 만들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집안 청결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장점과 단점은 한 뿌리에서 나온 듯 성격에서 쉽게 양면성을 찾을 수 있다. 인생 살면서 일희일비 할 필요없어좋은일과 나쁜일로 양면성 있는 법 인생에서도 양면성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집은 가난하지만 튼튼한 직장에 다니는 미혼 여성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여성이 부잣집에 시집가는 게 나을까, 가난한 집에 시집가는 게 나을까? 양쪽이 다른 조건이 같다면 당연히 부잣집으로 시집가는 게 낫다. 그러나 부잣집으로 시집가는 건 장점이지만 기죽어 사는 며느리가 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가난한 집으로 시집가는 건 단점이지만 대우받고 사는 며느리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혼 남성이 장가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동안 기분 좋게 만들었던 일이 훗날 돌아보면 나쁜 일이었고, 기분 나쁘게 만들었던 일이 훗날 돌아보면 좋은 일이었던 적이 많지 않았던가. 나쁜 일에서 좋은 점을 찾을 수 있었던, 내가 아는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사례. 몇 년 전 지인이 아들

  • [with+] 강의실의 상상 동물

    [with+] 강의실의 상상 동물 지면기사

    오미크론 확진자 수가 정점을 향해가고 있지만 이번 봄은 해빙의 분위기가 짙다. 마스크를 주문할 때도 '봄인데 흰 색 말고 다른 색을 써 볼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마음도 느긋해졌다. 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지금, 지나온 터널 가운데 인상적인 공간 하나를 뽑는다면 나에게는 '줌 화상회의' 창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공간으로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대면 수업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었을 때 과연 강의가 잘 이루어질까, 수업하는 척만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막상 시작해보니 학생들의 적응은 빨랐고 대면강의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대부분 화상으로도 가능했다. 그럼에도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는데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강의실에 다 같이 모여 대화하는 동안 그 장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공기, 그 공기가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소설 창작 강의는 가상의 모닥불을 피우는 것과 비슷하다. 누군가 장작을 넣어 불길을 키우고 또 다른 누군가의 견해로 불길이 타오르는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토론을 통해 작품의 중심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특유의 공기가 있다. 언어를 주고받는 동안에 오가는 비언어적인 언어, 표정이나 웃음 혹은 긴장된 순간 부풀어 오르는 압력 같은 것, 이 공통의 공기를 같이 호흡할 수 없는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 호흡을 나눠 마시는 것 자체가 감염상황으로 변했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강의를 비대면으로 '번역'하는 가운데 가장 큰 손실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칸칸이 나뉜 학생들 화면 뒤편에는고양이·강아지 등 반려동물들 등장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에는 도서관에 웅크리고 앉아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양식으로 삼는 상상동물이 나온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으면 이 동물은 굶주릴 수밖에 없다. 이와 비슷하게 강의실에도 학생들의 활기를 먹고 사는 지박령 같은 존재가 있지 않을까. 강의실의 에테르라 할 수 있는 이 유령은 어떻게 해도 줌으로 번역되기 어려워 보였다.그러나 시간이 더해지자 다른 생각이 끼어든다. 비대면 강의에서는 공평하게

  • [with+] 평어라는 실험

    [with+] 평어라는 실험 지면기사

    “예수는 제자들에게 반말을 했을까, 존댓말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접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이다.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누가 누구에게 존댓말을 하고 반말을 하는지 의식해본 적이 없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아마 생각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질문은 민음사에서 펴내는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가 마련한 ‘예의 있는 반말’ 특집 중 ‘한국어 존대법을 넘어 한국어 평등어를 향하여’라는 글에서 만났다.영어학자인 김미경은 “예수나 예수의 제자들조차 고민해 보지 않은 예수 존대법 문제가 우리에게는 어려운 문제”가 되는 것은 “존대법이라는 문법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의 높낮이를 계산하고 그 높이에 따라 존대를 달리하도록 훈련받는다”며 “그러는 사이에 사람을 위아래로 나누어 차별하는 서열의식이 무의식중에 뿌리 깊게 박힌다”고 설명한다.말이 개인 삶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새로운 언어, 새로운 관계 이어줄지그 말로 대화 사회는 어떤 변화 올지 사실 이 글을 읽기 전에 다른 책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접하고 생각이 많아졌던 터였다. 지난해 나온 ‘예의 있는 반말’에는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평어’라는 언어체계를 디자인해 사용하고 있는 디자인 커뮤니티 디학(디자인학교)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책에 따르면 평어는 사람 간의 높낮이를 따지지 않으며, ‘~께, ~께서’, ‘~시~’, ‘~요~’가 없다. 나이로 따져 부르는 호칭인 언니, 오빠, 형, 누나라는 호칭은 물론 직장에서의 선배, 후배라는 호칭도 쓰지 않으며, 이름 뒤에 ‘~님, ~씨, ~야, ~아’라고 붙이지 않는다.그러니까 평어는 ‘이름 호칭과 변형된 반말의 결합’인데 예를 들면 누군가 나에게 말을 하려고 한다면 우선 “지은”이라고 부르고 나서 말을 하는 것이다. “지은아” 같은 반말 호칭은 사용하지 않으며, “금방 지은이가 한 말은”이라고 하는 대신 “금방 지은이 한 말은”이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이름 두 글자만 부르는 호칭은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