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역사… 32년 운영한 이원호씨
폭우로 천장 내려앉아 세월 실감
10년 전 유정복 시장도 찾았던곳
20년 단골손님, 갈 곳 잃었다 서운

“오랜 추억이 담긴 이발관을 정리하려니 시원섭섭하네요.”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62년간 자리를 지키며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 ‘신광이발관’에 마지막 손님들이 찾아왔다. 영업 마지막 날인 30일 오전 10시께 이원호(76) 이발사는 빠른 가위질로 한 단골손님의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손때가 묻은 면도칼로 천천히 구레나룻과 수염을 정리하기도 했다.
5평(16.52㎡) 남짓한 이발관은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거울 앞 선반에는 색이 바랜 헤어드라이기와 빗 등이 놓여 있었다. 필통에는 이씨가 수십년간 사용했던 미용 가위들이 가득했다.
이씨는 지난 1993년 신광이발관을 인수한 뒤 32년 동안 동네 주민들과 함께했다. “손님들의 이름은 몰라도 각자 선호하는 헤어스타일이 무엇인지, 손자는 언제 태어났는지, 요즘 어디가 아픈지 다 알고 있어요. 먼 타지로 이사 간 뒤에도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제일 고맙죠.” 이씨가 밝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늘 하던 대로 해달라”며 의자에 앉은 단골손님 김광일(73·인천 미추홀구)씨는 뱃길로 3시간30분 거리인 옹진군 대청도에 살았을 때도 신광이발관을 찾았다.
그는 “20여년 전 육지에 나왔다가 우연히 신광이발관을 방문한 이후로 다른 이발관은 가본 적이 없다. 사장님이 다정하고 실력이 뛰어나 여기서만 머리를 다듬는데 이젠 갈 곳을 잃었다”며 서운해 했다.
이발을 마친 그는 “거스름돈 주지 말아라. 내 마음의 표시”라며 지폐 5만원을 이씨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씨는 앞서 2023년에도 이발관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손님들이 거울에 붙인 영업 종료 안내문을 뜯어내며 ‘조금만 더 운영해 달라’고 만류해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신광이발관은 인천문화재단이 발간한 ‘세월을 이기는 힘 오래된 가게’에 소개되기도 했다. 책이 발간된 2015년, 취임 2년차를 맞은 유정복 인천시장도 신광이발관을 찾았다.(2015년 7월2일자 1면 보도)
지난해 여름, 폭우가 쏟아진 뒤 건물 천장이 살짝 내려앉자 이씨는 영업을 종료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임시방편으로 천장 지지대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천장을 보수하려면 건물 전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며 “이렇게 낡은 공간에 손님을 모시는 게 나의 양심에도 어긋나고, 손님에게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씨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그는 미용 가위와 스펀지, 가운 등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거동이 불편해 이발관을 찾아오기 힘든 단골손님 집에 찾아가기 위해서다. 그는 “오랫동안 쉬지 않고 일했으니 이젠 가위를 놓고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며 쉬고 싶다”면서 “손님들이 신광이발관에서 보냈던 시간을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