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역사… 32년 운영한 이원호씨

폭우로 천장 내려앉아 세월 실감

10년 전 유정복 시장도 찾았던곳

20년 단골손님, 갈 곳 잃었다 서운

30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신광이발관 거울에 이날 마지막 영업을 한다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2025.4.3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30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신광이발관 거울에 이날 마지막 영업을 한다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2025.4.3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오랜 추억이 담긴 이발관을 정리하려니 시원섭섭하네요.”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62년간 자리를 지키며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 ‘신광이발관’에 마지막 손님들이 찾아왔다. 영업 마지막 날인 30일 오전 10시께 이원호(76) 이발사는 빠른 가위질로 한 단골손님의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손때가 묻은 면도칼로 천천히 구레나룻과 수염을 정리하기도 했다.

5평(16.52㎡) 남짓한 이발관은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거울 앞 선반에는 색이 바랜 헤어드라이기와 빗 등이 놓여 있었다. 필통에는 이씨가 수십년간 사용했던 미용 가위들이 가득했다.

이씨는 지난 1993년 신광이발관을 인수한 뒤 32년 동안 동네 주민들과 함께했다. “손님들의 이름은 몰라도 각자 선호하는 헤어스타일이 무엇인지, 손자는 언제 태어났는지, 요즘 어디가 아픈지 다 알고 있어요. 먼 타지로 이사 간 뒤에도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제일 고맙죠.” 이씨가 밝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30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신광이발관에서 이원호 사장이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2025.4.3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30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신광이발관에서 이원호 사장이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2025.4.3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늘 하던 대로 해달라”며 의자에 앉은 단골손님 김광일(73·인천 미추홀구)씨는 뱃길로 3시간30분 거리인 옹진군 대청도에 살았을 때도 신광이발관을 찾았다.

그는 “20여년 전 육지에 나왔다가 우연히 신광이발관을 방문한 이후로 다른 이발관은 가본 적이 없다. 사장님이 다정하고 실력이 뛰어나 여기서만 머리를 다듬는데 이젠 갈 곳을 잃었다”며 서운해 했다.

이발을 마친 그는 “거스름돈 주지 말아라. 내 마음의 표시”라며 지폐 5만원을 이씨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씨는 앞서 2023년에도 이발관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손님들이 거울에 붙인 영업 종료 안내문을 뜯어내며 ‘조금만 더 운영해 달라’고 만류해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30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50여년 넘게 운영한 신광이발관
30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50여년 넘게 운영한 신광이발관

신광이발관은 인천문화재단이 발간한 ‘세월을 이기는 힘 오래된 가게’에 소개되기도 했다. 책이 발간된 2015년, 취임 2년차를 맞은 유정복 인천시장도 신광이발관을 찾았다.(2015년 7월2일자 1면 보도)

취임 2년차 유정복 시장 ‘오래된 가게’ 첫 일정

취임 2년차 유정복 시장 ‘오래된 가게’ 첫 일정

주인공원 골목에 있는 ‘신광이발관’을 찾았다. 신광이발관은 1964년 신축한 다섯 평(16.69㎡)짜리 건물에서 50여 년 동안 동네를 지키고 있다.45년 경력의 이발사 이원호(66)씨는 1993년 가게를 인수해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전부터 쓰던 신광이발관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이어받았다.유 시장은 15년 된 이발 의자에 앉아 머리를 다듬고,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옛날식 면도칼로 면도를 했다. 옛 이발소의 모습을 간직한 건물 내부를 꼼꼼히 살피기도 했다.이날 유정복 시장의 ‘오래된 가게 찾기’는 동구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이어졌다. 유 시장은 수십 년째 운영하고 있는 헌책방들과 최근에 만들어진 배다리안내소, 아벨전시관 등이 어우러져 색다른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현장도 살폈다.유 시장이 찾은 가게 2곳은 인천문화재단이 지난 상반기 발간한 ‘문화의 길’ 총서 시리즈 아홉 번째 책 ‘세월을 이기는 힘 오래된 가게’에 소개된 곳들이다.유 시장이 취임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 가장 먼저 오래된 가게를 찾은 이유는 뭘까. 유 시장은 “오래된 가게는 구도심의 상징이자, 이곳에 사는 시민의 생활공간”이라며 “인천시가 구상하는 인천 가치 재창조는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소중한 자원”이라고 말했다.유 시장은 지난달 30일 취임 1주년 기자 설명회에서 인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새로운 도시와 구도심의 불균형이라고 했다. 같은 날 유 시장은 중구 일대 인천개항창조도시 재생사업 현장을 방문하는 등 최근 구도심 현장을 방문하는 행보를 이어가며, 구도심 정책의 가장 중심에 있는 중구와 동구에 대한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유 시장은 “과거 인천에서 가장 활력이 넘쳤던 중구와 동구가 가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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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폭우가 쏟아진 뒤 건물 천장이 살짝 내려앉자 이씨는 영업을 종료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임시방편으로 천장 지지대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천장을 보수하려면 건물 전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며 “이렇게 낡은 공간에 손님을 모시는 게 나의 양심에도 어긋나고, 손님에게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30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신광이발관에서 이원호 사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2025.4.3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30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신광이발관에서 이원호 사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2025.4.3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김씨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그는 미용 가위와 스펀지, 가운 등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거동이 불편해 이발관을 찾아오기 힘든 단골손님 집에 찾아가기 위해서다. 그는 “오랫동안 쉬지 않고 일했으니 이젠 가위를 놓고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며 쉬고 싶다”면서 “손님들이 신광이발관에서 보냈던 시간을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