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사회부 기자
고건 사회부 기자

‘매콤한 마라맛에 중독된 대중들이 이제 순한맛을 찾는 상황이다.’

올해 봄 가장 높은 영향력을 끼친 드라마 콘텐츠인 ‘폭싹 속았수다’의 열풍을 두고 한 평론가가 남긴 분석이다. 이곳저곳 폭발하는 액션 보다 마음에 잔잔히 드나드는 감동이 좋다. 피로 물든 처절한 복수극에 열광하던 관객들은 우리들의 일생 속 벌어지는 소소한 굴곡에 더 눈길을 주고 있다.

도파민의 시대가 정말 저물고 있을까.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끌고 새로 출시된 매운음식들의 스코빌지수가 천정부지가 올라가듯, 극한까지 중추 신경계를 자극할 것 같은 대중매체들이 보드랍게 변하고 있다.

매일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위기’라는 단어 때문인가. 명퇴·사직이란 사회적 사형 선고를 두고 처절하게 경쟁하는 일상도 한몫하고 있을까.

5개월 전 목도한 ‘비상계엄 선포’라는 비현실적 상황부터 40일 뒤 펼쳐진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는 숨가쁜 정치적 시나리오는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극단적 자극에 한계치를 넘은 듯하다.

지난 2월 제4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예소연 작가의 ‘그 개와 혁명’ 소설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소소한 에피소드를 가족의 사랑으로 풀어냈다.

딸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인들에게 전달하며 아버지의 입장이 직접 돼보는 과정을 겪고 그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부녀가 서로 다른 세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간극을, 아버지의 투병과 장례를 통해 극복하는 이 작품도 SF·추리 등의 최근 매콤함이 주름잡는 소설계에 울림을 주고 있다.

“아빠의 겨울에 나는 녹음이 됐다. 그들의 푸름을 다 먹고 내가 나무가 됐다”. 폭싹 속았수다가 모두 공개된 지 어언 한 달이 지났지만 명대사 모음집이 SNS 이곳저곳 공유된다.

좋은 문장의 대사를 듣고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애청자들의 마음처럼 올해는 세상이 더 순해지길 바란다.

/고건 사회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