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들 잠든 잊힌 공동묘지… 이젠 역사의 산실로

 

한용운·문일평·안창호 등 항일 운동 헌신 여러 묘소

1995년부터 역사적 재조명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

3·1 운동 관련 민족대표 등 주요 활동가들도 포함돼

조봉암·지석영 등 다양한 분야 족적 위인들도 한곳

숭고한 정신·희생 기억하는 중요한 역사문화 공간

1973년 만장된 망우리공동묘지의 모습. 녹음 가득한 지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국가기록원의 자료임이 사진에 박혀있다. /독자 제공
1973년 만장된 망우리공동묘지의 모습. 녹음 가득한 지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국가기록원의 자료임이 사진에 박혀있다. /독자 제공

망우역사문화공원은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시 중랑구를 아우른다. 중랑구가 지난 2020년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의뢰해 실시한 망우리공원 현황조사 학술용역 보고서 등에 따르면 대일항쟁기 당시 일제는 공동묘지를 도입했다. 서울 동·서·남·북에 하나씩 공동묘지를 설치해 사망자를 매장토록 했고 화장도 시작했다. 이 때 생긴 공동묘지 중 한 곳이 망우리 묘지다. 정해진 공동묘지 외에는 묘를 쓰지 못하도록 별도의 규칙까지 제정한 한편 이를 일제 경성부에서 통제했기 때문에, 이 당시 서울지역 안팎에서 유명을 달리한 많은 이들이 망우리 묘지에 묻혔다. 순국한 독립 운동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용운과 문일평, 안창호, 오세창 등이 대표적이다. 유관순 열사가 잠들어 있을 것으로도 추정되고 있다.

조미선 구리시 문화해설사가 망우리역사문화공원을 안내하고 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이 길은 성묘객을 위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일상에서 시민들이 산책로로 쓰고 있다. 망우리가 들려주는 얘기가 워낙 무게가 있어 ‘사색의길’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2025.5.1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조미선 구리시 문화해설사가 망우리역사문화공원을 안내하고 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이 길은 성묘객을 위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일상에서 시민들이 산책로로 쓰고 있다. 망우리가 들려주는 얘기가 워낙 무게가 있어 ‘사색의길’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2025.5.1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 항일의 기억 품은 역사적 공간

1973년 만장에 이른 망우리 묘지는 광복 50주년인 1995년 무렵부터 재조명이 시작됐다. 항일의 기억을 잊지 않고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자는 취지로 이곳에 잠든 독립 운동가 묘소 주변에 잇따라 연보비를 세운 것이다. 이어 2012년 한용운 묘소가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된 것을 시작으로, 5년 뒤인 2017년엔 문일평·방정환·서광주·서동일·오기만·오세창·오재영·유상규 묘소가 일제히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다. 모두 항일 운동에 대한 유공을 인정받아 건국 훈장이 주어진 이들이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두 행정구역에 걸쳐 있는데, 이들 중 한용운과 문일평·방정환·오기만·오세창·유상규의 묘소는 행정구역상 구리시에 소재한다.

한용운과 방정환 묘소는 화장 후의 유해를 안장한 것이다. 등록문화재는 아니지만 망우역사문화공원엔 화가 이중섭의 묘소도 있는데, 역시 화장 후 망우리로 왔다. 안창호의 묘도 당초 이곳에 있었다. 그러나 1973년 도산의 애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울 신사동 일원에 도산공원을 조성하면서 그의 실제 묘를 공원으로 옮긴 채, 망우리엔 허묘를 세워뒀다. 묘 이장 당시 이곳에 있던 비석도 함께 도산공원 기념관으로 옮겨졌지만, 해당 비석을 작성한 춘원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논란이 되자 도산공원에 있던 비석만 2016년 다시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돌아왔다.

도산 안창호의 허묘에 위치한  춘원 이광수가 짓고 원곡 김기승이 쓴 비석. 2025.5.1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도산 안창호의 허묘에 위치한 춘원 이광수가 짓고 원곡 김기승이 쓴 비석. 2025.5.1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안창호를 따랐던 이들도 인근에 함께 잠들어있다. 도산은 미국에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을 창립했는데, 도산의 묘 뒤편에는 흥사단원이었던 이영학의 묘소가 있다. 안창호의 조카사위이자 마찬가지로 흥사단에서 활동했던 김봉성도 망우리에 잠들었다. 한편 국가등록문화유산에 속하진 않지만 인천 강화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정치계의 거목인 조봉암의 묘소와 국내에 종두법을 도입해 국내 보건 의료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의사 지석영의 묘소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다. 또 대일항쟁기 당시 시와 그림, 음악 등으로 저항의 불꽃을 태우고 우리의 얼을 놓치지 않기 위해 힘썼던 여러 예술인들의 혼도 이곳에 깃들어있다.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로 잘 알려진 김상용과 시 ‘목마와 숙녀’ 등으로 유명한 박인환, ‘조선의 고갱’으로 불리는 화가 이인성 등이 대표적이다.

항일의 기억을 품은 공간은 되새겨야할 지역의 역사, 애향심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

구리시는 지난 2019년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 최초로 국가유공자의 날을 제정해 기념하는 등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중심으로 지역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 구리지역에 잠든 5명의 독립운동가들

묘소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애국지사들 다수는 1919년 3·1 운동과도 연관이 깊다. 우선 한용운과 오세창은 민족대표 33인에 속한다. 1919년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는 한편 전국적인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이다.

승려였던 한용운은 1910년 국권이 일제에 침탈당하자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면서 항일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 같은 행보가 단적으로 드러난 게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한 일이다.

옥고를 치른 후에도 저항의 정신은 쉬이 꺾이지 않은 채 ‘님의 침묵’ 등 각종 문학 작품에 고스란히 남았다.

서예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오세창은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의 기자로 일하는 한편, 천도교의 기관지인 만세보를 창간하기도 했다.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내 소파 방정환의 묘소. 석묘 뒤에는 한글로 ‘동무들이’라고 표기돼 있다. 2025.5.1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망우역사문화공원 내 소파 방정환의 묘소. 석묘 뒤에는 한글로 ‘동무들이’라고 표기돼 있다. 2025.5.1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국내에서 처음으로 ‘어린이’라는 말을 사용, 미래 세대인 아동 인권을 존중하고 이들의 계몽·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방정환 역시 3·1 운동 당시 등사기로 조선독립신문을 찍어 이를 알리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바 있다.

우리나라 역사 연구에 매진하며 민족주의 운동에 앞장섰던 문일평은 1919년 3·1운동 이후 같은 달 기미독립선언서의 후속격인 ‘애원서(哀願書)’ 발표를 주도했다. 조선 독립의 당위성과 이로 인해 동양 평화가 이룩될 수 있음을 애원서에 담았다. 이후 3월 12일 서울 보신각에서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애원서를 낭독하고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내에 있는 문일평 묘소. 2017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가유산포털
망우역사문화공원 내에 있는 문일평 묘소. 2017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가유산포털

유상규는 안창호의 애제자로, 흥사단에서 활발히 일했다. 안창호가 ‘유상규 군 곁에 묻어달라’고 유언할 정도로 사제의 정은 각별했다.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전신) 1회 입학생이었던 유상규는 3·1 운동 당시 학생이었는데, 동료 학생들에 만세 운동의 취지를 알리고 동참토록 하는 데 중점적인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조직되자 자료 조사 및 수집 활동 등에도 적극 나섰다. 이후 의사로서 조선의사협회, 조선위생협회 창설을 주도하는 등 국민 보건 위생 계몽에 힘썼다.

이밖에 오기만은 항일 단체 중 하나였던 신간회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다. 황해도 배천지역의 신간회 지회 설립을 주도했는데, 항일 의지를 담은 격문을 배부하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조봉암 등과 더불어 사회주의가 기반이 된 청년 애국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귀국 후에도 사회주의, 민족주의 등을 토대로 한 독립 운동에 중점을 뒀다.

사진은 구리시가 지난해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진행했던 ‘망우4색, 근대 위인을 만나다’ 모습. 문화해설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곳에 잠든 독립운동가들의 생애를 설명하고 있다. /구리시 제공
사진은 구리시가 지난해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진행했던 ‘망우4색, 근대 위인을 만나다’ 모습. 문화해설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곳에 잠든 독립운동가들의 생애를 설명하고 있다. /구리시 제공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돌아온 도산의 묘비엔 ‘배우고 가르침에 끊임없이 애쓰시고, 슬기와 큰 덕을 바로 세워 사심은 우리나라와 겨레를 위함이셨네. 바르고 사심 없이 사람을 대함에 봄바람 같고, 일을 행하심에 가을 서릿발 같으셨네’라고 적혀있다. 길은 달랐으되 나라와 겨레를 위해 끊임없이 헌신해온, 이윽고 광복의 기쁨을 만들어낸 숭고한 혼들이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새겨져있다.

/강기정·권순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