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영생의 의미 건축물로 형상화
역사 흔적 남는 노출콘크리트 선택
높은천장·예술성 조화 경건함 절로

강화 갑곶돈대, 제물진두 등 순교성지와 우리나라 최초의 영세자이자 한국 천주교회 창설자 중 한 사람인 이승훈(베드로)의 묘역이 있으며, 1897년 건립된 답동성당 등 의미 있는 가톨릭 종교 사적지가 산재해 있다.
이중 제물진두(祭物津頭·중구 항동 1가 1의 13)는 1866년 병인박해때 프랑스와의 병인양요, 미국과의 신미양요 등을 치른 후 ‘외적과 내통한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해 주민들에게 경계심을 심어준다’는 의도에서 대원군 정권이 서울 한강변의 양화진두(楊花津頭·절두산)와 함께 천주교인들에 대한 공개 처형장으로 택한 곳이다.
천주교 인천교구는 제물진두에서 순교한 10명의 정신과 신앙을 기념하기 위해 순교기념경당을 건립해 지난해 5월 준공했다.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한국 천주교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인천시와 인천도시공사는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과 답동성당을 잇는 가톨릭 성지순례 관광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2월 ‘공간과 사람’은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이하 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을 설계한 임근배 건축사와는 서울 중구의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가톨릭 신자로서 성당과 가톨릭 관련시설 20여 곳을 설계한 임 건축사는 인천교구로부터 의뢰를 받고 기념관을 구상·설계하면서 ‘순교’에 초점을 뒀다. 순교자를 기리고 건축물의 속성상 눈에 띄어야 할 필요도 있었다.
임 건축사는 “‘순교, 가장 소중한 목숨을 내놓은 데에 대한 보상은 무엇일까’를 두고 고민했어요. 그 상이자 보답은 목숨을 내놓게 된 원인으로부터 받게 될 것입니다. 즉,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으므로 그 상도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며, 그 수고와 고통은 하느님 나라에로의 초대, 하느님께서 주는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질 것입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순교의 의미를 건축물로 형상화하기 위해선 직유법이 낫다고 생각했단다.
한중문화관 바로 옆, 큰 길가의 번잡함과 어우러진 좁은 땅(109.1㎡)에 들어선 기념관은 ‘순교는 신앙의 꽃이다’는 설계자의 신념이 투영됐다.
건축면적 43.3㎡, 높이 15m의 기념관 양측 벽은 하늘을 향해 피는 꽃을 형상화하고 있다. 동시에 순교자를 감싸 안는 하느님의 두 손이다.

진입로는 다소 어두웠다. 마주 보이는 곳에 이웃한 건물이 있고 우측에 한중문화관, 좌측에 경당이 둘러싸여 있어서 위에서만 빛이 들어왔다. 아주 어둡지도 않지만 밝지도 않은 곳이다.
임 건축사는 “중간 공간은 숨을 고르고 마음을 바로잡기 위한 준비공간”이라며 “이를 위해 좁은 땅이지만 진입로를 만들어 동선을 늘렸다”고 말했다.
진입로를 거쳐 도달한 경당은 작지만, 단순·소박하다. 여기에 높은 천장, 예술성이 어우러진 성미술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경건함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천장과 높은 벽의 십자가 문양의 작은 창을 통과한 빛은 제대(祭臺)와 경당을 비춘다.
기념관을 순례하고 돌아 나오는 길은 반대로 빛의 길이다. 들어갈 때 좁고 다소 어두운 진입로가 나올 때는 빛을 향해 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눈을 찌푸릴 정도의 밝음을 보게 된다.
건물의 재료는 노출 콘크리트로 선택됐다. 노출 콘크리트는 세월이 흐르며, 눈·비·바람을 맞으며 자연스럽게 변색되어가는 장점이 있다. 과거의 순교 역사를 오늘에 기리고 내일에도 기억됨을 암시하기 위한 설계자의 의도이다.
기념관은 2013년 7월 착공 이후 10개월 만에 완공했지만, 설계과정도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기념관이 들어선 자리는 역사문화미관지구에 속하기 때문에 그만큼 인천시의 건축 심의가 까다로웠다.
임 건축사는 “당초 기획된 기념관의 높이는 24m였으나 심의를 거치며 18m로 줄었으며, 현재의 15m로 확정됐다”면서 “때문에 설계에 1년 반 정도 소요됐다”고 말했다.
설계자가 바라는 기념관의 앞으로 모습은 일반 시민이 조용히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임 건축사는 “천주교 건물이지만, 종교를 떠나 아무나 조용히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면서 “빌면서 마음을 푸는 문화가 우리 정서에 자리한 것처럼, 번잡하고 시끄러운 일상에서 벗어나 누구나 이곳에서 잠시나마 머물면서 무엇인가를 위해 비는 공간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김영준기자 ·사진/조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