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부부 "죄책감 마주 바다 그려"

유가족 공방열고 '평범한 삶' 노력
관객 눈시울… 인천서 16일까지



002.jpg
1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그날의 사람들, 오늘의 이야기'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63점의 세월호 제주 생존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공방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2024.2.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10년이 지났어도 참사의 고통은 어제처럼 생생하죠. 그래도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남으려고 노력해요."

2014년 4월16일, 김병규(63·제주시)씨는 아내 임은영(54)씨와 함께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제주시로 향하는 여객선 '세월호'에 올라탔다. 김씨는 "살았다는 안도감은 찰나였다. 우리 부부는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짓눌렸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참사 후 1년간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는 그를 세상으로 다시 꺼내준 건 '그림'이었다. 김씨는 제주마음치유센터 심리 치료 프로그램 일환으로 아내와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세월호일반인추모관 10주기 추모전시7
1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그날의 사람들, 오늘의 이야기'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63점의 세월호 제주 생존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공방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2024.2.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처음엔 그림으로 뭘 해결할 수 있겠나 싶었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슬픔을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 일부러 바다를 그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상담사가 '아픔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한 이후로 바다를 자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그린 '석양이 내린 해변'은 붉은 석양 앞, 한 남성이 거친 파도를 등지고 해변가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담겼다. 홀로 살아남았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이고 혼자 바다에서 빠져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1일 부평아트센터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전시 '그날의 사람들, 오늘의 이야기'가 개막했다. 김씨를 포함한 제주시 생존자 7명,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희생자 가족 14명이 만든 작품 63점(그림·사진·조형물 등)이 전시됐다.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견뎌온 고통의 시간들을 작품에 담아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세월호일반인추모관 10주기 추모전시3
1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그날의 사람들, 오늘의 이야기'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63점의 세월호 제주 생존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공방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2024.2.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해 299명이 사망했고, 5명이 실종됐다. 당시 172명이 살아남았다.

단원고 2학년 6반 고(故) 이태민군의 어머니 문연옥(51)씨는 유가족 11명이 힘을 합쳐 만든 '진실을 향한 광장의 빛'을 소개했다. 실로 자수를 놓은 16개의 조각이 합쳐져 두 사람이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을 이뤘다.

"아이를 잃고 난 뒤, 집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언제라도 아이가 '다녀왔습니다'하며 문을 열 것 같았습니다. 집에 갈 수 없으니 매일 분향소 앞에서 살다가 유가족들이 모여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공방을 시작했어요." 문씨는 "4·16공방에서 만든 작품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또 나눠주며 우리가 열심히 버텨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면서 "이젠 우리도 사회의 일원으로 다른 시민들과 소통하며 다시 세상에 섞여들어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회 관계자의 작품 설명을 듣던 관객들은 종종 눈시울을 붉혔다. 우두커니 서서 오랫동안 작품을 들여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세월호일반인추모관 10주기 추모전시6
1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그날의 사람들, 오늘의 이야기'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63점의 세월호 제주 생존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공방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2024.2.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날 전시회를 찾은 남궁훈(72)씨는 "그림과 사진이 무척 아름다워서 더 슬프다.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이를 시민들에게 공개하다니 경외롭다"며 "참사를 막을 방법이 정말 없었을지,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공동 주관한 세월호일반인희생자추모관 전태호(48) 관장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왜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는지, 참사는 누구의 잘못인지, 하나도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단원고 학생 유가족, 생존자들과 연대해 우리가 여기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회는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에서 오는 16일까지 열린다. 인천에서 전시가 끝나면 안산시 단원구 4·16민주시민교육원(2월19일~3월15일), 제주문예회관(4월13~18일)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