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으로 연결돼 있던 '공동체의 끈'
경쟁과 피로에 젖은 사회에 의해
어느 순간 풀어지고 복구 어려워
'혼밥' 이젠 불가피한 선택이니
개인 권리로 능동화 시킬 필요
그대들은 결코 외로운 존재 아냐

직장에 다닐 적에 간혹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을 보면, 내심 참 안됐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저 사람은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외톨이거나 '왕따'이거나 부랑자이거나 부적응자는 아닐까. 아니면 실업자가 되어 길을 잃고 세상을 떠도는 한 마리 어린 양이 아닐까. 측은한 마음 절반, 안타까운 마음 절반으로 그런 사람들을 보곤 했었다. 하지만 큰 관심이 없었기에 그 문제를 '문제'라고 의식해본 적도 없었다. 그 당시엔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젠 내가 바로 그 외톨이이자 왕따이자 부랑자이자 부적응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이 막막한 사태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 먹고, 밖에 나가서 감히 사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낯섦은 점차 습관화되고 일상화되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변해간다. 한 때 성스러웠던 것도 언젠가는 세속화되기 마련이듯, 내게 점심식사라는 공포는 일년 정도 지나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러면서,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름대로 '혼밥'이라는 이 시대의 문화를 깊이 살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단순히 한 끼를 때운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혼밥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음식점에서 밥을 먹다 보면, 나처럼 혼밥을 '즐기는' 사람이 의외로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행동을 세밀히 관찰해 보았다. 어떤 사람은 구석진 자리에서 메뉴판을 멀뚱멀뚱 훑다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급히 먹고 일어난다. 대개 혼밥의 초보자들이다. 어떤 사람은 4인 좌석을 혼자 차지하고 주변의 동정을 살피며 천천히 먹는다. 혼밥에 입문한지 꽤 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좌석 한가운데 자리잡고 앉아 큰 소리로 "사장님, 김치 좀 더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혼밥 세계의 대가일 가능성이 높다.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은, 자살이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을 알려줘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고전이다. 내 생각에 혼밥이라는 이 시대의 새로운 문화는, 각 개인이 혼자 밥을 먹기 좋아해 선택한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가 개인에게 혼자 밥을 먹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일종의 압력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밥'으로 연결되어 있던 '공동체의 끈'이 어느 순간엔가 풀어지고, 이제 다시 복구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밥을 '나누던' 시대는 갔다. 부단한 경쟁과 피로에 젖은 이 사회에서 각 '개인'은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타자를 밟고 넘어가야 할 장애물로 여기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혼밥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이제는 개인의 노력으로 혼밥을 다시, 어느 시인이 말한 바, 따뜻한 '둥근 밥상'으로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당당한 혼밥을 개인의 권리로 능동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각종 SNS에서 혼밥이나 혼술을 직접 만들어 사진으로 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이를 적극 칭찬하고 권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그런 혼밥의 문화를 서로 나누는 걸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인정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멋진 혼밥에 상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오늘도 혼밥을 즐기는 동지들이여, 그러니 당당하시라, 그대들은 결코 외로운 존재가 아니다.
/정한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