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끄는 책]죽음마저 잊혔던 시인, 박서원… 전집으로 부활한 '그녀의 세계'

자전적 양식 90년대 문학 새지평
"한국어의 가장 어둡고 황홀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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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서원 시전집┃박서원 저. 최측의농간 펴냄 516쪽 2만3천원

남성이 주류였던 1990년대 문단에 고백 투의 자전적 시적 양식과 새로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작풍으로 여성문학의 지평을 열었던 박서원(1960~2012)의 시 전집이 최근 출판됐다.

첫 시집 '아무도 없어요'(1990)와 전성기의 시집 '난간 위의 고양이'(1995), '이 완벽한 세계'(1997), 후기 작품인 '내 기억 속의 빈 마음으로 사랑하는 당신'(1998), '모두 깨어 있는 밤'(2002)까지 5권의 시집이 한 권에 묶였다. 책 말미에는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글도 수록됐다.



시인은 1989년 문예지 '문학정신'에 시 '학대증' 연작을 포함한 7편의 시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그는 허위의식 없는 미학 세계를 구축했다.

시인은 8세 때 아버지를 잃었고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희귀 신경병인 기면증에 정신질환을 앓았고 미성년 시기에 당한 성폭력의 상처를 지녔다. 황현산 평론가의 회고에 따르면, 시인이 시를 쓴 계기는 "누가 시라고 하는 것을 주어서 읽어보았는데, 이런 것을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어서 썼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인은 2002년 마지막 시집 발표 이후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잊혔고, 그의 시집 대부분도 절판되면서 작품 또한 읽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조용히 잊혀진 시인의 죽음도 4년 뒤인 2016년에야 알려졌다. 때문에 이번 시 전집의 발간은 '박서원 문학의 부활'로 여겨진다.

시인의 죽음이 알려진 후 출판사 최측의농간은 오랜시간 시인의 유가족을 수소문했다. 지난해 초 출판사 측은 시인이 머물렀다고 알려진 서울 수유동의 한 주택 앞에서 우편 봉투 하나를 발견했고, 거기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시인의 어머니와 연이 닿을 수 있었다.

유족에 따르면 시인은 생전 자신의 모든 원고를 스스로 정리 및 폐기했다. 때문에 이번 전집의 원고는 모두 종이책으로 인쇄된 시인의 시집 초판본이다. 박 시인의 전집 출간은 시인을 추모하고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전망이다.

황현산 평론가는 "두 시집 '난간 위의 고양이'와 '이 완벽한 세계'는 한국어가 답사했던 가장 어둡고 가장 황홀했던 길의 기록으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고 평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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