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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월 1일 응봉산 정상에 설치된 인천 측후소(인천기상대)의 모습. 일본 정부는 1904년 설치된 인천 임시관측소를 헐고 이 자리에 새로 설립했다. /굿모닝인천 제공

1904년 4월 인천기상대서 첫 관측
일제때 해상 정보 중요시 여겨 설치
일기예보 발표 등 중앙관측소 역할

2일 우리나라 대다수 신문은 약속이나 한 듯이 1면 톱으로 '사상 최고 기온'을 언급하는 폭염 관련 기사를 실었다.

기사마다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 가장 높은 기온', '111년 관측 사상 최고', '111년 만에 최악의 폭염', '111년 만에 역대 최고기온'이라는 표현이 따라붙었다.

이 기사들은 1907년을 우리나라 기상 관측의 시작점으로 삼고 있다. 모두 틀렸다.

이들 잘못된 기사들은 "서울 39.6℃, 관측 시작(1907년 10월 1일) 이래 일 최고기온 극값 1위 기록"이라는 기상청의 1일 보도자료를 근거로 썼다. 서울 지역 최초 관측 기준을 말한 것을 한반도 기상 관측이 1907년부터 시작된 것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기상 관측을 시작한 것은 1904년 4월 10일 인천기상대(옛 인천 임시관측소)에서다.

인천기상대가 2010년 발행한 '인천기상대의 역사를 찾아서'라는 책자를 보면 일본 정부는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해전(海戰)이 승부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하고 한반도 각 요충지인 인천, 부산, 원산 등에 임시관측소를 설치했다.

바다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해상 기상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지만 우리나라 지역의 기상을 관측했다. 우리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첫 근대 기상 관측인 것이다.

그 시작은 인천에서부터 했다. 1904년 7월 임시관측소를 총괄하는 일본인 와다유지(和田雄治)가 인천 임시관측소장으로 부임하면서 인천이 중앙 관측소 역할을 했다.

일본은 이듬해 기상 관측의 중요성을 깨닫고 인천 임시관측소를 헐어 응봉산 정상에 2천여㎡ 규모의 최신 시설을 갖춘 목조 2층짜리 인천관측소를 세웠다.

이후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전 지역 날씨는 물론 일본 해역의 해양 기상관측도 했다고 한다. 대한제국 정부가 1907년 1월 평양, 대구, 서울에 기상대를 설치한 때에도 한반도의 모든 기상 정보는 인천 관측소로 모여 일괄 관리됐다. 일기예보도 인천에서 발표했다고 한다.

이러한 인천 중심 기상 관측 체계는 1945년까지 이어져 우리나라 대표 기상대 역할을 했다. 지난 1일 나타난 최악의 폭염은 한반도에서 기상을 관측한 이래 '111년 만'이 아니라 '114년 만'이라고 해야 옳다.

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천기상대는 한반도 전역의 날씨는 물론 연안, 만주지역의 기상까지 관측했다"며 "한반도에서 근대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된 시점은 인천기상대의 관측 시작 일자인 1904년이 맞다"고 말했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