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이상 담금질' 도원동 철공장인의 삶 엿보기

윤설아 기자

발행일 2018-08-07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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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硏, 인문도시연구총서 발간
송종화할아버지등 3명 구술·기록
1인기업 체제 간신히 명맥 이어가
숭의·도화동 등 도시변화상 설명


50년 이상 인천 대장장이의 명맥을 잇고 있는 중구 도원동 철공소 장인들의 삶을 구술·기록한 책이 발간됐다.

인천연구원 도시정보센터는 인문도시연구총서 제4권 '도원동의 철공장인'을 펴냈다고 6일 밝혔다. '도원동의 철공장인'은 인천 중구 도원동에서 철공소를 운영하고 있는 철공장인 3명의 생애 이야기를 담았다.

한 자리에서 30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일철공소의 송종화(80) 할아버지, 솜씨 좋은 목수에서 대장장이가 된 인해공업사 김일용(68) 씨, 철공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도원철공소 나종채(69)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14~17세의 어린 나이에 대장장이 일을 시작했다.

해방 직후부터 1970년대까지 각지의 대장장이들은 인천 중구 도원동 인근으로 몰려와 철공소를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6·25 전쟁 이후에는 북한에서 대장장이로 일했던 사람들이 정착하기도 했다.

경의선과 항만 시설이 가깝고 당시 주거 지역이 몰려 있어 철공소가 자리 잡기 좋았고, 철길 옆 마을 집값이 저렴했던 것도 한몫했다고 한다.

책에서 3명의 장인은 대공장의 대량생산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지금의 시대에 '손노동'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한다.

16세에 철공업 일을 시작한 송종화 할아버지는 대장장이 일은 '교본 없이 터득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송종화 할아버지는 "(대장간 일은) 열 사람이 배우면 한 사람이 되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이 다르다. 인천 거 다르고, 강화 거 다르고, 영종도 다르고, 대부도가 다르다. 물건을 만들 때는 지역에 따라 다르니까 다 맞춰야 한다"는 송 할아버지의 얘기는 '장인정신'과 '직업정신'을 되새겨 보게 한다.

나종채 씨는 사물놀이 대가로 불리는 김덕수 풍물단이 악기로 쓰는 가위를 비롯한 전국의 각설이학원, 제주도, 미국 LA 등지의 엿장수들의 엿가위를 제작한 '가위'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동화 시설과 중국 제품의 유입으로 오래된 철공소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이들 철공소는 1980년을 정점으로 급격히 쇠퇴하면서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워 현재는 1인 기업 체제로 간신히 명맥만 잇고 있다. 김일용 씨는 "용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데 없다. 배우는 사람도 없지만 웬만한 사람은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책에서는 3명의 장인들이 들려주는 남구 숭의동, 도화동, 동구 금곡동, 중구 도원동의 도시경관 변화상도 엿볼 수 있다.

총서를 총괄한 김창수 인천연구원 도시정보센터장은 "철공 장인들은 모두 손으로 만들었기에 유일무이한 '작품'에 가깝다"며 "이분들이 마지막 세대인데, 시민들의 맞춤형 제작 수요에 맞춰 숭의동 목공예거리처럼 철공소거리도 본격적인 관심을 갖고 철공소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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