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3·1운동 100주년 기념전 개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류은규

'경계를 허무는 사진' 그의 카메라는 세월을 찍는다

김영준 기자

발행일 2019-04-03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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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전시회가 열렸던 아트플랫폼 전시장에서 포츠를 취하고 있다.

#'잊혀진 흔적' 展 많은 관심 끌었는데

中서 항일운동 흔적 수집·조선족 살펴
중립지키고 검증 신경써서 전시회 구성

#조선족을 26년간 찍고 있는 이유는

하얼빈서 우리역사 왜곡되는 것 목도
만주지역 이주사 '객관적 기록'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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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류은규(57) 옌볜대 사진학과 교수의 3·1운동 100주년 기념전 '잊혀진 흔적'이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31일까지 인천 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과 윈도우갤러리에서 개최됐다.

'잊혀진 흔적'전은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을 위해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과 그들의 후손인 조선족의 삶을 조망하기 위해 기획됐다.

 

1990년대 초부터 26년 동안 중국에서 항일운동의 흔적을 수집하고 독립운동가 후손과 재중동포의 모습을 찍어온 류 교수는 이번 전시회에 작품 70여점과 아카이브 250여점을 출품했다. 

 

전시회는 '역사의 증언자들', '그리운 만남', '80년 전 수학여행', '삶의 터전', '또 하나의 문화' 등 5부로 구성됐다. 

 

전시회는 2천여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류 교수의 시선과 수고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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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교수에게 작품 활동과 이번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 앞으로 계획 등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1일 오전 인천 아트플랫폼 전시장을 찾았다. 

 

류 교수는 아내인 도다 이쿠코 인천 관동갤러리 관장과 함께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인터뷰 후 부부가 함께 전시 작품들을 떼어낼 예정이었다. 전시회 개막을 앞두고 부문 별로 나누고 작품들을 걸고, 전시회장을 꾸미는 데 1주일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지만, 떼어내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할 거란다.

류 교수는 "학생들에게도 강조하는 부분인데 '역사 관련 전시회는 가장 중립적으로 올바르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면서 한 쪽 편에 서서 찍을 순 있겠지만, 찍고 나선 중립을 지켜서 전시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서 "검증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 현지 교수와 국내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고, 한·중·일 역사를 공부한 일본 사람인 아내의 도움도 크게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류 교수는 26년 동안 조선족을 찍고, 관련 자료를 모으는 건 사진으로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류 교수의 이 같은 바람과 희망은 이번 전시회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국경,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 등 세상에는 늘 경계가 존재합니다. 한국과 중국, 한국인과 조선족 뿐만 아니라 조선족 사이에서도 세대 차이나 지역 차이로 인한 경계가 존재하죠. 

 

경계로 인해 갈등이 조장됩니다. 한국전쟁의 경우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했지만,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룰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죠. 그런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습니다. 

 

사진가는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장의 사진을 풀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100년 전 간도에서 울려 퍼진 '독립만세'의 함성을 상기할 수 있었으며, 우리와 단절된 채 살아왔던 조선족의 발자취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류 교수가 조선족의 삶을 기록하고 자료 발굴을 시작한 건 1993년이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일본항공, 전일본공수 등의 기내지에 게재되는 사진을 찍으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을 때 하얼빈을 사진에 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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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으로서 안중근 의사, 731부대(일본의 세균전 부대) 등을 떠올리며 하얼빈에 갔습니다.

 

한데, 제가 알던 역사적 사실들이 일본은 물론 중국 내에서도 공산당과 국민당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자신이 처한 시선에 맞춰 역사를 설명하고 있던 것이었죠. 

 

이후 만주지역의 이주사를 객관적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사진으로 기록하고 항일 운동 하신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모았습니다."

류 교수는 1995년 옌볜대 민족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위촉됐고, 2000년에 옌볜대에 사진학과가 만들어지면서 교수가 됐다.

"아내와 겨우 6개월 된 아이를 둘러업고 옌볜대로 간 건 교수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이주사와 만주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항일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였어요. 

 

오랜 호흡으로 동일한 주제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계속 찍으려면 현장에 거주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올해까지 26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류 교수는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옌볜은 중국과 조선 문화가 부딪히는 완충지대입니다. 이런 요인들을 통해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고요. 현재 200만 조선족 중 한국에 83만명이 가 있고, 베이징 등 대도시에 40만명이 나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시골처럼 젊은이들은 얼마 안 남고 다수의 노인들이 옌볜에 있습니다. 

 

중국 당국의 동북공정과도 어우러지면서 변화하고 없어지는 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제가 기록한 사진들은 현재 없어지는 것들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입니다. 그러면서 느낍니다. 제 사진이 사료적 가치도 갖는다는 사실을요."

#청학동 사진도 37년째 찍고 있는데

우리나라 발전상 고스란히 녹아있어
외국에서 '유토피아'로 소개 큰 반응

#언제까지 활동을 이어갈 계획인가

조선족·청학동 사진촬영은 계속 진행
두 작업, 내가 카메라 놓는 날 끝날 것


이주 조선인과 후손의 삶을 좇고 있는 류 교수는 37년 동안 지리산 청학동 사진을 담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1년께 일간신문 토픽란에 실린 작은 기사(등산객 한 명이 길을 잃고 헤매다 어느 마을을 찾아 들어갔다는 내용)를 본 류 교수는 이듬해 비둘기호 기차를 타고 진주를 거쳐 하동에서 시골 버스를 타고 내린 후에도 5㎞ 산길을 걸어서 청학동(당시 이름이 생기기 이전)에 갔다.

매번 하동에서 쌀 2말을 사 짊어지고 지리산 골짜기까지 찾아드는 그를 청학동 사람들은 의아해 하다가 지금은 형제처럼 가까워져서 대소사를 알리고, 언제 오는지 기다릴 지경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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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처음 청학동에 갔을 때 만난 10살 어린이가 현재 장가가서 슬하에 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의 발전상이 청학동에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여겨집니다. 

 

자급자족하던 청학동에 전기, 전화, TV가 들어오고 공권력과 자본도 따라 들어오죠. 가게가 생기고, 민박, 식당도요. 자급자족할 땐 주민 간 갈등이 없었는데, 현재 갈등도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특히 청학동 사진을 좋아합니다. 

 

서양엔 '유토피아'로, 중국에는 '이상세계'로 소개하는데, 유토피아나 이상세계는 실체가 아닌데, 제 사진을 통해 볼 수 있으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청학동 전시는 지난해까지 외국에서만 연간 4~5차례 진행했습니다. 조선족 작업과 청학동 작업은 제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계혹할 것입니다. 두 작업은 제가 카메라 놓는 날 끝날 것입니다."

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류은규 교수는?


서울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신구대 사진과와 상명대 예술디자인대학원 사진학과 순수사진 과정(석사)을 졸업했다. 

 

1988년 교도소를 주제로 광주학생회관에서 첫 전시회를 개최한 이후 지난달 '잊혀진 흔적'전까지 국내외에서 20여회 개인전을 열었으며, 15차례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번 '잊혀진 흔적'전의 3부에 구성됐던 '80년 전의 수학여행'을 최근 책으로 펴내는 등 8권의 사진 관련 서적을 내놓았다. 

 

현재 인천 관동갤러리와 도서출판 토향의 대표로 있으면서 중국 옌볜대와 하얼빈대,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사진예술과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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