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6년 사법시험 통과해 인권변호사 생활
공공의료원 설립 추진 계기로 정치인의 길
두 번의 낙선 끝에 2010년 성남시장 당선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전국구 정치인 거듭나
2024년 총선 대승으로 ‘여의도 대통령’ 칭호
형·배우자·아들·대장동 등 리스크 작용했지만
온갖 역경에도 꺾이지 않았던 성남의 소년공
‘경기도지사 출신’ 첫 대통령 역사 만들어내
‘변방장수’, ‘비주류’를 자처하던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의 주역으로 거듭나 ‘지금은 이재명’을 실현시켰다. 지난 2017년과 2022년에 이어 삼수 끝에 결국 자신의 구호대로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출발선에 섰다. 흙수저 소년공은 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를 거쳐 100만 성남시정의 중심이 됐고, 8년 뒤엔 그 성남시를 품은 1천300만 경기도정의 수장이 됐다. 또 다시 7년이 지난 지금, 이제 경기도를 넘어 5천만 대한민국을 총괄하는 대통령이 됐다. 경기도지사 출신 첫 대통령이기도 하다.
경기도에서 성장한 ‘변방장수’

1963년(호적상 1964년생)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난 이 당선인은 인생의 상당부분을 성남시에서 보냈다. 어려웠던 환경은 그를 단단히 키워냈다. 그의 첫 대선 도전 선언지였던 성남 오리엔트 시계 공장은 이 대통령이 소년공으로 일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 때 발생한 사고로 팔이 비틀어져 공장 일을 할 수 없게 됐지만 좌절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1986년 28회 사법시험을 통과해 성남시에서 인권변호사로 일했다. 사법시험에 통과했을 당시인 1986년 11월 3일 경인일보 기사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한 청년 이재명의 포부가 담겨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앞으로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억울한 사람을 위해 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다짐처럼 청년 변호사는 지역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공공의료원 설립 추진을 계기로 정치인의 길을 택한 이 당선인은 두 번의 낙선 끝에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이 당선인의 행보는 여느 단체장들과 달랐다. 스스로를 ‘변방장수’ ‘비주류’로 칭하면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사이다’ 같은 모습에 그에 주목하는 시선이 하나 둘 늘어났다. 특히 차별화된 정책으로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른바 ‘성남시 3대 무상복지(청년배당·무상교복·산후조리지원)’가 대표적이었다. 시행이 가로막히면 경기도, 정부와도 거침 없이 부딪혔다. SNS를 활용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일 역시 기성 정치인들에게선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전국구 정치인으로 거듭난 이 당선인은 2017년 대선 경선에 참여하면서 차기 리더로서의 존재감을 굳혔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이듬해인 2018년 경기도지사직에 도전해 당선됐다.
도지사 재직 당시에도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대내외적 어려움이 이어졌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안 화폐인 ‘지역화폐’를 경기도 단위에서 대대적으로 도입하는가 하면, 경기도 차원의 재난 기본소득 지급으로 자신의 대표 정책인 ‘기본소득’을 전 국민에 각인시켰다. 특유의 추진력을 앞세워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현해낸 이 당선인은 2022년 현역 도지사로선 처음으로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며 두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섰지만, 불과 0.73%p 차이로 윤석열 전 대통령에 고배를 마셨다.

인천에서 이뤄낸 여의도 입성…각종 역경에도 ‘어대명’은 흔들리지 않았다

2017년 대선 경선 패배 이후 곧바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섰던 이 당선인은 2022년 낙선 직후에도 쉼 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석 달만인 그해 6월 자신의 정치적 기반지인 성남 분당이 아닌, 인천 계양구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도전해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이어 기세를 몰아 같은 해 8월 당권 경쟁에서도 승리, 민주당 대표가 됐다. 두 번의 대선 도전 실패는 이 당선인에 큰 시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치인 이재명의 최대 약점으로 꼽혔던 부족한 당내 기반을 채우는 계기가 됐다. 대표로서 당 안팎을 빠르게 장악한 이 대통령은 2024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대승으로 이끌며 ‘여의도 대통령’ 칭호까지 얻었다. 같은 해 8월 당 대표직 연임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뤄냈다.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로 입지를 다지던 이 당선인에 기회는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에 따른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된 가운데,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무려 89.77%를 득표하며 여유있게 대통령 후보직을 확정했다.
그는 어떤 정치인들과 비교해도 역경이 적지 않았다. 형과 배우자, 아들 등 가족들을 둘러싼 논란은 성남시장 재직 당시부터 이번 대선 기간까지 꾸준히 이 당선인에 리스크로 작용했다. 대장동 개발, 대북 송금 논란 등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역임했던 기간 등에 불거진 각종 의혹들로 이 당선인 본인은 물론 주변 인사들이 끊임없이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했다. 생명의 위협마저 받았다. 민주당 대표로 재임하던 지난 2024년 1월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하던 도중 피습을 당했다. 이번 대선 기간에도 테러 시도 제보가 잇따랐다는 게 민주당 설명이다.

온갖 역경에도 꺾이지 않았던 성남의 소년공은 이제 대한민국의 5년을 좌우할 대통령으로 거듭났다. 동시에 경기도지사 출신 첫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대선 전날인 2일 정치 인생의 시작점과도 같은 성남 주민교회에서 그는 “제 삶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여정이었다. 부패한 구조, 기득권의 벽, 냉소적 시선이 넘쳐났지만 시민만 보고 시민의 기대를 따랐다”며 “정치란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성남에서, 경기도에서 한 것처럼 이젠 대한민국을 바꾸겠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 대한민국 미래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