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면 난민
새삶을 찾아 고향 땅을 떠나온 예멘 난민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14일 오후 수원시 매교동에 마련된 한 임시거처에서 이주 서류관련 통화를 하는 예멘 난민 윌리드(37)를 압둘라(24)가 지켜보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제주 난민 사태 1년, 뿌리 깊은 '인종주의' 탓 일상 고통은 여전

"인사 외면·사생활 문란등 편견 심해" 대부분 위험한 직종 전전

한국 사회에 공존이란 화두를 던진 이른바 '예멘 난민' 사태가 1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5월까지 한국으로 들어온 500여명의 예멘 난민 중, 단 2명 만이 정식으로 난민 인정을 받았으며 나머지 난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그 중 일부 예멘 난민들이 경기도를 찾았고, 수원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이들이 이곳까지 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6월 최종적으로 난민 불인정을 받게 된 예멘인 하일(36)씨는 지난 여름 동안 한 달은 양식장에서 일하고, 두 달은 고기잡이 배를 타는 고된 노동을 했다.

예멘에서 약사로 일하던 하일씨는 현재 천안의 한 화장품 공장에서 청소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배를 탈 땐 하루에 20시간씩, 양식장에선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배 타는 게 너무 힘들어서 지난해 10월 오산으로 올라오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매달 150만원 밖에 받지 못하는 제주도의 저임금 노동은 벗어나게 됐지만, 경기도에서의 삶도 어렵기는 매 한 가지였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인종주의가 그의 회사 생활을 방해한 것이다.

하일씨는 "이슬람을 믿는 예멘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점심 메뉴로 돼지고기를 줬다. 인사를 해도 외면하는 일도 잦았다"면서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예멘인은 알아서 회사를 그만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하일씨와 함께 일하던 또 다른 예멘 난민은 회사를 그만두고 청주의 화장지 공장으로 일터를 옮겼다. 하일씨의 일자리를 알선한 이는 난민 지원 활동을 펼치는 홍주민 목사다.

홍 목사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 그만뒀으니 하일씨도 일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회사에서 연락을 해왔다. 중동 사람은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편견이 이들을 차별한 실제 이유였다"고 말했다.

화성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예멘 난민 월리드(37)씨는 "프레스 절단 업무를 하다 눈에 불티가 튀어 다치며 일을 그만뒀다"고 했고, 또 다른 난민 자말(37)씨는 "건축 현장에서 일한다. 난민 대부분이 위험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말씨는 예멘에서 군인으로 일한 인물이다. 군을 무단 탈영한 그는 예멘으로 돌아가면 사형을 당하는 처지지만, 이런 그조차 한국의 난민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홍 목사는 "예멘 난민들에게 무슨 일을 원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에브리띵(Everything·무엇이든)이었다"면서 "예멘 난민 사태가 벌어진 지 1년이 지났다. 당시 수많은 사회적 논의들이 이뤄졌지만 한국사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고 한탄했다.

/신지영·배재흥·박보근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