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민주화운동과 폴 슈나이스 목사

김찬호

발행일 2019-06-10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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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부터 獨 진보적 동아시아선교회 활동
유신·민청학련 사건·김지하 시인 재판 참여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 한국취재 파견도
구술기록 '평화는 반드시 정의가 함께' 강조


김찬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국제협력담당
김찬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국제협력담당
지난 5월 24일부터 2박 3일간 독일 베를린에서는 재유럽 5·18민중항쟁협의회가 주최한 제39회 재유럽오월민중제가 열렸다. 1980년 5월, 현지 방송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 5·18민중항쟁 소식은 유럽 동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독일 교민을 중심으로 한 유럽 한인들은 즉각적인 규탄시위 등 행동을 조직하였고, 지난 39년간 한해도 빠지지 않고 재유럽오월민중제 행사를 개최해왔다.

이번 민중제에는 영화 '택시운전사'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미망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가 참석하여 교민들로부터 진심 어린 위로를 받았다. 사실 힌츠페터는 영화와 방송을 통해 많이 조명되었지만, 실제로 그를 한국으로 취재를 보낸 사람은 독일 동아시아선교회(Doam) 소속 폴 슈나이스(Paul Schneiss) 목사였다. 1970년대부터 한국민주화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슈나이스 목사는 지금은 은퇴하여 부인 기요코 여사와 함께 하이델베르크에 거주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5월 23일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하여 한국민주화운동을 지원했던 2010년까지 40여년에 걸친 목사 활동에 대한 구술을 채록하였다.

슈나이스 목사는 1970년부터 독일 진보적 선교단체인 동아시아선교회에 소속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2년 유신 시절부터 해외와 한국민주화운동을 잇는 메신저 역할을 하였으며, 1975년부터 일본 '사카이'지에 연재된 '남한으로부터의 편지' 자료를 전달하며 당시 집필을 주도한 지명관 선생을 도왔다. 특히 1974년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한 구속자 재판에 참여하였고, 김지하 시인 재판 참석을 위해서 매주 금요일 일본에서 건너오기도 하였다. 당시 재판에 참석한 방청객 중에서 외국인은 슈나이스 목사가 유일하였다. 그는 한국어를 하지는 못했지만, 재판 참석을 통해 구속자에게는 성원을 전하고 독재 정부에는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1978년 홍콩으로 강제 출국당한 후 입국이 금지되자 부인 기요코 여사가 대신 한국과 일본을 오갔다. 1980년 5·18민중항쟁 직전, 서울 조선호텔에서 머물던 기요코 여사가 군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이 소식을 일본에 있던 슈나이스 목사에게 전달하였다. 그는 일본 NDR 동경지국에 찾아가서 이 소식을 전했다. 당시 특파원이던 힌츠페터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길로 바로 한국으로 넘어왔다. 취재를 마친 힌츠페터는 영상원본을 독일에 보내고 사본을 슈나이스 목사에게 전달하였다. 목사는 영상 복사본을 국제앰네스티와 전 세계 기독교 교단으로 발송하여 5·18의 진실을 알렸다.

그는 1988년 한국에 다시 올 수 있었고 그때 처음 5·18 묘지를 찾았다. 목사는 이후에도 이석기 전 국회의원 구속, 제주 강정해군기지 주민반대투쟁, 세월호 사건 등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모니터링을 해왔다. 그는 구술기록 말미에 평화는 반드시 정의가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폴 슈나이스 목사의 사례와 같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지원한 국내외 인사에 대한 구술기록을 앞으로도 꾸준히 정리해 나갈 예정이다.

6·10민주항쟁이 어느덧 32주년을 맞이하였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고귀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왔지만, 제도로 이어진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지우려는 시도 역시 끊임없이 계속됐다. 폴 슈나이스 목사가 구술을 통해 전해준 증언은 정의로운 민주화운동의 역사로 기록되어 한국과 독일 젊은이에게 전달되도록 할 것이다.

/김찬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국제협력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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