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습 때문에 시신 집에도 못들여
남편도 시름시름 앓다가 이듬해…"
공소시효 관련 TV자막 보며 '분통'
"법이 처벌 못해도 우리는 절대 용서 못해…."
19일 오후 3시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 31년이 지났지만, 화성연쇄살인사건의 7번째 피해자 안모(사망 당시 52세·여)씨를 기억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이웃 주민들 틈바구니 속에 안씨의 7촌 이모(80) 할머니가 입을 뗐다.
이 할머니와 안씨는 한집 건너에 살며 남다른 정을 나눴다.
사건은 1988년 9월 7일 밤에 있었다.
날이 밝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안씨를 찾아 마을 주민들이 나섰다.

염소집 지나 냇가 둑에서 안씨가 발견됐다. 이 할머니는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할머니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 것은 객사한 시신은 집 안으로 들이지 않는 장례풍습 때문에 안씨의 시신을 그의 집 마당에 뒀던 장면이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에 안씨의 남편도 이듬해 생을 등졌다고 한다.
"밤이 지나도록 안 들어와서 나가 찾아봤더니 죽어 있는 거야. 남편도 시름시름 아프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막 울다가 술 마시고 슬퍼하다가 병이 난 거야. 이듬해 따라 저 세상으로 갔어."
공소시효가 지나 경찰이 특정한 용의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자막이 마을회관 TV 화면에 계속해서 찍히자 할머니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37년 전 이 마을로 이사 온 신모(75) 할머니는 중년 여성을 상대로 벌어진 강력 범죄에 가슴을 졸였던 당시를 회상했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마을에서 밤마다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몰라. 불량한 젊은 남자들은 다 잡아가서 동네 전체가 흉흉했어. 가재리, 하가등리 청년들은 마을마다 2명씩 버스정류장에서 보초를 서기도 했어."

안씨 내외의 산소는 길 건너 하가등리에 자리했다.
하가등리는 2004년 범죄 없는 마을로 뽑혔다.
연쇄살인사건이 남긴 비극을 마을 초입에 놓인 '범죄 없는 마을' 바위석이 치유 없이 짓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을에 연고가 없는 인근 공장 노동자들도 "그 용의자는 천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