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리얼리티·(1)성장]판교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벤처산단 개발, 승부수를 던지다

공지영·신지영·김준석 기자

발행일 2020-01-06 제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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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개발이 본격화 되기 전 판교일대 전경(왼쪽)과 개발이 시작된 직후 판교 일대 전경. /성남시 제공

#건교부 vs 경기도

'강남의 베드타운 계획' 중앙부처와 조성방향 마찰
"양보다 질로 개발" 대통령 직접보고 '승부수' 성공

#60만평 vs 10만평

건교부, 합의 뒤집고 '주택공급에 중점' 부지 축소
道 '첨단산단 요구' 민간단체 가세… 20만평 '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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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를 주거단지로 개발하는 것은 우리 경제 도약의 중요한 기회를 일실하는 결과 초래'.

2000년 12월 1일, 김대중 대통령이 경기도청을 방문했다.

 

예정된 도정 업무보고였지만, 대통령 앞에 선 경기도 공무원들의 표정은 자못 비장했다. 판교의 운명을 가를 승부수를 던져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을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현 킨텍스 대표이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단순히 국가가 주도해서 국토균형발전의 관점에서만 수도권 개발을 바라보면 판교 개발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경기도가 아무리 싸우자고 덤벼도 건설교통부(지금의 국토교통부) 장관이 말을 안 들어주면 끝이다. 법이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니까 도정보고를 이용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방식을 택하면 되겠다 싶었다. 대통령께 직접 설명하면 분명 이 사업의 중요성을 이해할 것이라 확신했다." 



 

판교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했다. 

 

판교를 품고 있는 경기도의 고집이 지금의 판교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느 신도시처럼 판교도 한때는 서울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한 베드타운이 될 뻔했다. 

 

서울 강남과 근접한 훌륭한 입지조건을 갖췄고 앞서 개발된 분당신도시의 긍정적 이미지가 강남수요를 잡기에 손색없어서였다. 

 

서울 강남 집값을 잡는 것이 정권의 승패를 결정짓는 상황이었는데, 번듯한 요건을 갖춘 판교를 두고 군침을 흘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국가 국토개발의 전권을 쥐고 있는 건설교통부가 280만평에 이르는 판교 택지개발사업을 '주택공급'에만 주안점을 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그런데 경기도가 제동을 걸었다. 더 이상 수도권에 주민의 90%(2001년 기준)가 서울 등 타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1기 신도시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그러면서 들고 나온 것이 '첨단벤처산업단지' 개발을 동반한 신도시 건설이었다. 

 

경기도가 꿈꾼 건 '자급자족'이었다. 판교에 벤처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이 곳에서 일하는 IT인력들이 판교에 살면서 회사와 연구소를 오가고, 저녁과 주말에는 상권과 문화를 즐기는 자급자족의 도시가 될 것이라는 게 경기도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건설교통부의 입장은 '반대'였다. 끈질기게 벤처산업단지를 요구하는 경기도와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골이 깊어졌다.

경기도정 업무보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수도권에서는 양보다는 질 위주로 개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사실상 경기도의 손을 들어준 뒤 '60만평' 개발로 합의를 해놓고도 건설교통부는 2001년 6월, 별안간 합의를 뒤집고 벤처산업단지 부지를 '10만평'으로 축소 발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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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작업이 한창인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 전경. /성남시 제공

임 전 지사는 "대통령도 건설교통부에 경기도 의견을 무시하지 말고, 수렴해서 결정하라고 메시지를 줬는데 당시 민주당을 등에 업고 건설교통부가 끝까지 반대했다. 대통령 보고 이후 60만평까지 합의가 됐는데 민주당 보고 이후 다시 '주택 공급' 위주로 개발계획이 돌아섰고 10만평으로 확 줄어버렸다"고 회상했다.

당시 경기도와 벤처기업협회 등에서 실시한 수요조사에서는 2005년에 이르면 벤처기업 수가 4만3천여개에 이르고, 860만평 이상의 신규입지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벤처기업협회는 2000년 10월에 기자회견까지 열고 "서울 테헤란로와 양재, 포이동으로 이어지는 벤처밸리는 이미 과포화 상태로 비싼 임대료 등 여러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며 "80년대 이후 수도권 68개 지구 230만명 수용규모의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자족기능 확충을 위한 시설은 한 번도 마련되지 않았다. 판교는 베드타운이 아닌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첨단산업단지가 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더불어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경기도상공회의소연합회, 경기벤처협회 등 경기도 경제를 주도하는 민간단체들도 언론매체에 판교 벤처단지 조성을 찬성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60만평의 판교벤처단지 조성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것입니다' '판교벤처단지 조성은 경기도지사의 사사로운 건의가 아니라 대통령님과 당대표께 건의드리고 당 및 건설교통부와 공식협의를 거친바 있습니다' '판교벤처단지 20만평에 용적률 200%는 경기도측 요구내용과 전혀 다릅니다' 등 건설교통부의 일방 행보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었다.

특히 이들이 낸 '건교부의 판교벤처 불가론에 대한 반박문'에는 흥미로운 내용도 포함됐다. 

 

이들은 "건설교통부가 그동안 경기도 5대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1조8천930억원의 이득을 취했다"고 꼬집으며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되며 판교개발로 얻어진 이익은 당연히 판교개발과 관련한 사업에 재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만, 말레이시아 등 경쟁상대국은 지식집적지 조성을 위해 특별법까지 제정해 조세감면,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고 중국의 경우 베이징시 중관촌에 지식집적지 조성을 위해 국가가 28조원을 투입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2001년 9월, 경기도와 건설교통부는 판교벤처용지 개발에 '20만평'을 사용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지금 판교의 성장에 비추어보면 지독히도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경기도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첫 성공사례였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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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주신 분들

임창열 킨텍스 대표이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율 前 경기도행정1부지사, 이상후 前 LH 부사장,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 오보영 이트너스 이사, 엄정한 컴퍼니B 대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성남시, 성남산업진흥원, 판교박물관

■기획취재팀

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
사진: 임열수부장

영상 : 강승호기자, 박소연 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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