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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볼모로 잡힌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들이 지난 1일부터 무급휴직 상태에 놓여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2일 오후 평택 캠프험프리스 동창리 게이트 앞에서 26일째 철야 농성 중인 강제 무급휴직 피해 근로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평택 험프리스 한국인 1천명 무급휴직… 칼바람 속 천막농성 '분통'
"급여 88% 한국서 주는데 고용주는 미국" 정부 지원 '특별법' 목청


"아무리 그래도 한 가족 생계를 협상 수단으로 삼으면 안되는 거잖아요."

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칼바람이 몰아친 22일 평택 캠프 험프리스(K-6) 동창리게이트 앞 얇은 천막 안에서 박성진(54·평택시 세교동)씨가 울분을 토로했다. 박씨는 지난 3월 28일부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강제 무급휴직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2004년부터 미군기지 안에서 45인승 셔틀버스를 몰아온 박씨는 한 번도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인 자신이 '무급휴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가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는 전국적으로 1만2천여명으로, 그중 2천300명이 평택기지에서 일한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치다.

지난 1일부터 평택기지 한국인 근로자의 40%에 해당하는 1천명 가량이 무기한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여행업에 종사하는 박씨의 딸도 코로나19로 일을 쉬게 되면서, 졸지에 가족 두 명이 휴직자가 됐다. 비단 박씨만의 일이 아니다.

미군기지 소방대원 26년 차를 맞은 원준일(60·평택시 비전동)씨는 "잠시 다른 일을 해보자고 생각하는 동료들도 있는데 금방 접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아르바이트는 꿈도 못 꾼다"면서 "혹시라도 외부에서 일을 하다 감염되면 2년 동안 미군기지 안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휴직이 아니라 해고되는 셈"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평택기지에서도 몇 차례나 감염 사례가 나와, 외부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안내 문자가 왔다. 이런 상황에서 잠시라도 다른 일을 해보자고 생각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미군기지 내부 통신망을 관리했던 김승수(44·평택시 동삭동)씨는 고등학생 두 아들의 학원비를 걱정했다. 김씨는 "다행히 3월 급여가 (4월)15일에 나와서 한숨은 돌렸지만 앞으로는 기약할 수가 없다. 그래서 현금은 최대한 안 쓰고 신용카드로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특별법'만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박씨는 "한국인 근로자 급여의 88%를 한국정부가 부담하고, 미국이 주는 건 12%밖에 안 된다. 이런데도 고용주는 미국"이라며 "한국인 근로자의 인건비만은 정부가 담당해줬으면 한다. 이번 협상이 중요하다는 것도 백 번 이해하지만, 제발 먹고 사는 걸 볼모로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강기정·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