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한국 사회 뒤흔든 '레드 콤플렉스'

종북이라는 족쇄 채우기…이념의 희생양은 지금도 있다

경인일보

발행일 2020-10-26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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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후 뿌리 박힌 '이념 적개심'
국가보안법 제정… 1961년 '반공' 국시로
'인혁당 사건' 등 다른 생각 탄압도구 활용
헌정 최초 '종북 논란' 통진당 해산 판결
北 적개심 낮아졌지만 '혐오 정서'는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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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RED(레드)'다. 붉은색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상징한다. 한반도는 일제 강점기부터 좌우 갈등이 극심했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휴전'상태에 있다.

 

남측은 '자유민주주의'를, 북측은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좌우 이념 차이는 상대에 대한 적개심으로 표출됐고, 이는 남측 구성원 대다수에게 깊숙하게 뿌리박혔다. '레드 콤플렉스'는 한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막을 내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흘렀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도 하고, 이념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는 레드 콤플렉스를 빼놓을 수 없다. 사회주의와 북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도 남아 있다. 북과 관련돼 있으면 '차이'는 '틀림'으로 간주된다.

'레드 콤플렉스'는 일제강점기 때 시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독립을 위한 방법은 각자가 달랐다. 사회주의를 추구하기도 했고, 자유주의 방식이 답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해방을 맞이했으나 38선이 그어졌다.

각각의 이념은 38선 이남과 이북에서 세력을 키웠다. 이념의 차이는 갈등의 모습으로 곳곳에서 나타났다. 여순사건, 제주 4·3항쟁 등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남과 북을 더 갈라놓았다. 전쟁은 3년간 이어졌고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양 일산 금정굴 등지에서는 민간인이 학살되기도 했다. 전쟁의 결과는 '휴전'이었고 38선보다 조금 북쪽에 휴전선이 설치됐다.

한반도 남쪽에는 '레드 콤플렉스'가 공고해졌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한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됐고, 1961년 반공은 국시(國是)가 됐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권력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를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대표적인 예는 1964년과 1974년 발생한 인민혁명당 사건이다. 당시 정부는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을 결성했다'고 발표했다. 언론인, 교수, 학생 등이 검거됐다. 일부는 사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시간이 지나 2007년 사법부는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고 밝혀진 것이다.

1964년 인혁당사건
인민혁명당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부끄러운 기록이다. 국가는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을 결성했다'며 교수, 학생 등을 검거했고 일부는 목숨을 잃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이 2007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엄혹한 사회에서도 남과 북의 공존을 향한 노력은 이어졌다. 1972년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고, 1991년에는 남북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 등에 관해 합의한 '남북공동합의서'가 발표됐다.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점차 확산됐다.

2000년엔 광복 이후 처음으로 남과 북 정상이 만나 손을 맞잡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두 정상은 6월15일 '통일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6·15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남과 북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담론이 넘쳐났다. 개성공단 사업이 추진되는 등 민간 교류가 활발해졌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2002년 대한민국에서 월드컵이 열렸다.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수백만 명이 'be the reds'라고 쓰인 붉은 티셔츠를 입었다. 번역하면 '빨간 사람이 되자'정도가 된다.

수십년 전만 해도 붙잡혀갈까 두려워 입 밖에도 내기 어려웠던 금기시되는 내용이다. 한국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가 줄어든 것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왔다.

2003년엔 육로를 통한 금강산 관광이 이뤄졌다. 통일부는 대학생 등에게 경비를 지원하며 금강산 관광을 독려했다. 각 대학에서는 '금강산 모꼬지'를 모집했고 대학생들은 설악산 가듯 금강산을 다녔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무르익었던 '평화 모드'는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2008년 금강산 관광을 하던 박왕자씨가 북에 의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경색됐다.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다.

2008년 박왕자씨 피살사건
2008년 금강산 관광을 하러 갔다가 북측에 의해 목숨을 잃은 박왕자씨 빈소.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급격하게 악화됐다. /연합뉴스

2010년엔 백령도 앞바다에서 천안함이 침몰됐고, 서해 작은 섬 연평도는 포격을 맞았다. 남북 교류 사업은 중단되거나 미뤄졌다.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종북 논란'이 불붙었다. 통합진보당이 중심이었다. '북의 지령을 받고, 북에 종속돼 있다'는 뜻을 가진 '종북'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2013년 대한민국 국무회의는 법무부가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심의·의결했다.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내렸다.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앞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종북'의 핵심인물로 지목됐다. 2013년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됐고, 2014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은 이석기의 내란 선동에는 유죄를, 내란 음모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종북 아니냐"는 질문은 상대를 제압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였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남북 관계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는 다시 손을 잡았고, 2018년 판문점선언이 발표됐다. 다양한 교류 협력 사업이 선언에 담겼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하는 사업들이 많다. 여전히 남북은 긴장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레드 콤플렉스가 존재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서 온라인에서 '빨갱이'라는 표현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남북관계는 수십년 간 화해와 긴장을 오갔다. 그 사이 경제력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북에 대한 적개심은 낮아졌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이를 대신하는 것은 비하와 조롱, 혐오의 정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려움의 대상에서 '이해하기 힘든', '경제력이 떨어지는', '이상한' 국가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방식이 달라졌더라도 '레드 콤플렉스'가 여전히 유효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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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

사진 : 김도우기자

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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