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성에서 남성으로 법적 성별 정정에 성공한 이한결(26)씨. 2020.10.26 /이여진 기자 aftershock@kyeongin.com |
여성으로 출생… 정체성 고민 털어 놓자
어머니 "차라리 레즈비언으로 살았으면"
수술후 법원 성별 정정 기각, 1년뒤 허가
"다른 소수자 상담… 함께 변화 만들것"
이한결(26)씨는 트랜스젠더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수술을 통해 남성이 됐다.
이씨와 같은 트랜스젠더는 미국에 100만명 정도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2017년 미국 공중보건 저널(Public Journal of Public Health)은 인구 10만명 당 390명이 트랜스젠더로 확인됐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우리나라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10만명 안팎일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MtF(Male to Female)가 더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씨와 같은 FtM(Female to Male)은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소수다.
그는 "제가 가진 성 정체성대로 살기 위해 가족을 설득했고, 수술을 받고도 법정에서 성별 전환이 거부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성 정체성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 기간은 10년이 넘는다.
이씨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6~7세 때부터 자신이 지정받은 성별(sex)은 여성이지만, 사회적 성별(gender)은 남성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학예회 때 치마 대신 바지 한복을 입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여성에게 이끌렸다. 당시 모습을 보고 이씨의 어머니는 '딸이 레즈비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가슴이 나오는 게 싫어서 없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생 무렵부터 어머니에게 가슴 제거 수술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성인이 돼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후에도 한결씨는 여성 애인을 소개하는 등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이씨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 되겠느냐"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가족 입장에서는 수술을 해야 하고,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과 다르게 사는 트랜스젠더보다는 레즈비언으로 사는 게 나아 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틈날 때마다 성별 정체성과 성적 끌림, 젠더에 대해 알렸다"며 "어머니는 피곤해 하고 간혹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 가끔 질문이라도 하면 너무 반가워서 열정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3년 전인 2017년 마침내 어머니를 설득했고,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법적으로 성별을 바꾸기 위해 그해 11월에 가슴 제거 수술을, 이듬해 1월에 포궁(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다.
"수술날 마취가 덜 풀려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으로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고맙다'고. 어머니는 '이제 만족하냐?'고 하셨는데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수술은 끝났지만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성별정정허가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된 것이다. 그는 다른 법원에 다시 신청했다. 성별정정허가신청은 판사의 재량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씨는 성장환경진술서에 '어릴 적부터 파란색과 로봇을 좋아했다'고 쓰는 등 한국 사회의 성별 고정관념에 맞춰 조사에 임했다. 인내심을 발휘한 끝에 지난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
이씨는 퀴어 커뮤니티에서 '봉레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뮤지컬 아카데미 '밤 아카데미'에서 영상 촬영과 편집을 맡고 있고, 트위터와 유튜브에 '성 소수자의 일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대로 살지 못한 기간을 '벽장 안에 있었다'고 표현했다.
"벽장을 나오기 전 저는 어머니와 한참 싸우고 울던 사람이었지만 이제 '오픈리(직장 가족 대중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한 성 소수자)'가 돼 다른 성 소수자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기도 해요. 이 변화의 중심엔 어머니가 있고 앞으로도 많은 변화를 함께 만들 것을 의심치 않아요."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
사진 : 김도우기자
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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