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40여년 교직생활 마침표' 민중 미술 전념하는 이종구 화백

"지금까지 방관자로 살지 않고, 화가와 교사로서 함께 싸워왔다"

김태양 기자

발행일 2021-02-24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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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이종구 화백
이종구 화백은 인천 부평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화가와 교사의 역할을 하면서 민주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며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사회 문제를 대변하고 기록·증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군부독재 체제속 억압받는 현실 직시 '저항 선택' 작품세계 바탕이 돼
고향땅으로 시선 옮겨 '오지리 사람들' 연작… 몰락한 농촌의 현실 투영
소중한 아이들 희생 '세월호 참사' 광화문 촛불시위 작품 속 직접 등장도
인천 골목 곳곳에 '문화예술의 향기' 묻어났으면 모든 시민 즐길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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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종구(66) 화백은 우리나라 민중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산업화 속에서 몰락하는 농촌의 실상부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생전 모습까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역사적 흐름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화백은 현시대를 기록하는 화가이면서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1980년 인천 동산고등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고, 2004년 중앙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임용돼 이달 말 퇴직을 앞두기까지 4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화백은 젊은 학생들과 건강한 의식을 공유하고 세대 간 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교사 생활에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이 화백의 퇴임 기념집, '저기 선생님이 걸어 가신다'란 제목에는 학교를 떠나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스승을 응원하는 제자들의 따듯한 마음이 담겼다.

이 화백은 "오랜 기간 있어 온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독립한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있지만, 직책을 모두 내려놓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 세상에 나간다는 생각에 기대감과 설렘도 크다"며 "시원섭섭하다는 게 이런 것 같다"고 웃으며 소회를 밝혔다.

이 화백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작품 활동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방학 때도 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 화백은 퇴임 후 "예술가의 삶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 같다"며 "시간적 여유가 생긴 만큼 화가로서 전문성을 기르고 작품 활동도 활발하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공감 이종구 화백

이 화백에게 있어 민중 미술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이 화백이 처음 예술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는 군부독재 속에서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였다. 군부독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지역 곳곳에서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화백은 인천에서 지역 작가들과 연대해 예술로 저항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군부독재 체제 아래서 시민들이 억압받는 현실을 지켜봤다"며 "젊은 혈기에 뜻맞는 작가들과 저항을 선택한 게 지금 민중 미술의 바탕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화백은 특히 산업화가 진행되고 농산물 수입 개방이 이뤄지면서 몰락해가는 농촌의 현실에 주목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이 화백에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화백은 이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땅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탄생한 게 '오지리 사람들' 연작이다. 이 화백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이 화백은 쌀부대를 캔버스 삼아 고향 땅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 그리고 이웃들의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농민들의 초상화가 아니라 어려운 농촌 현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그리고자 노력했다.

담벼락에 붙은 정치 선거 포스터나 수입쌀 상품 포장지 등을 배경으로 농민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때부터 주변에서는 이 화백을 '농민 화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화백은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의 근간은 농촌이었지만 쌀 수매가 폭락, 농산물 수입 개방 등으로 농부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힘든 세상이 돼버렸다"며 "고향 사람들의 모습을 투영해 소외당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농민을 대변하고 싶었다"고 했다.

인터뷰 공감 이종구 화백

이 화백은 세월호 참사의 기억과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 등 역사적 사실을 화폭에 담은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소중한 아이들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며 "예술가로서 세상에 잘못된 일이나 모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를 그린 작품에는 낯익은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시민들과 함께 서 있는 이 화백 본인의 모습이다. 이 화백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신도 지지하고 연대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화백은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다운 삶, 인간의 가치, 인간의 존중성 등 '휴머니즘'에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인간을 해치는 독재, 분단, 환경 파괴 등을 작품 소재로 삼는 이유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시민 의식, 시민의 권리, 평등한 삶 등에 대해 강조를 많이 했던 것 같다"며 "지금까지의 민주화 과정에서 방관자로 살지 않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지지하는 등 화가와 교사의 위치에서 함께 싸워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화백은 시민 활동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자신이 갖춘 능력을 바탕으로 활동을 펼치면서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어떤 활동을 할지는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없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지역 현안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인천 시민'인 이 화백은 지역 골목 곳곳에 문화예술의 향기가 묻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화백은 "문화예술은 특정 지역에 사는 주민만 누려서는 안 되고, 모든 시민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며 "지역 곳곳에서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화합해 문화예술을 즐기는 환경을 인천시가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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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화가의 위치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정치적·사회적 문제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작품으로 증언·기록하는 일을 계속 할 것"이라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 건강한 시민사회가 만들어지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이종구 화백은?

△ 1954년 충남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으로 유학을 왔다.

△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1976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 1980~ 2003년 인천 동산고등학교 교사로, 2004년부터 2021년 2월까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민중 미술 운동에 참여했고, 지난 40여년 동안 20여차례의 개인전과 500여회의 기획전, 단체전에 출품했다.

△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가나미술상, 우현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인천민족미술인협의회 대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인천지회장, 인천문화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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