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오페라 하면 떠올리게 되는 이탈리아 오페라는 노래를 중시한다. 가수 중심의 오페라로 불리는 이유다.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드라마는 노래를 묶어내는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독자적인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
반면 문학과 연극의 전통이 강한 독일 오페라는 드라마의 완성도에 비중을 둔다. 노래만큼이나 기악 부분을 중시한다. 이러한 요소는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드라마 완성도에 비중 두는 독일 오페라…
'음악극' 창안 바그너, 26년 만에 '반지' 완성
바그너는 대단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으며 혁명가였다. 그는 저서 '미래의 예술작품'(1849)을 통해 "분리된 예술 장르를 하나의 종합 예술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혁명 예술"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총체 예술 작품(Gesamtkunstwerk)을 표방한 바그너는 음악과 연극, 이야기가 하나로 결합된 예술인 '음악극(Musikdrama)'을 창안했다. '음악에 봉사하는 연극적 요소'를 갖춘 기존의 오페라와 차별화를 꾀한 거였다. 그렇다 보니 바그너는 작곡은 물론 대본도 직접 썼다.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이하 '반지')는 전야(前夜·'라인의 황금')와 3일간의 본편('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구성됐다. 총 연주시간은 15시간(휴식시간 제외)에 이른다. 3~5시간에 이르는 작품들이 4일 동안 펼쳐지는 것이다.
바그너는 고대 그리스 제전에서 상연됐던 3부로 구성된 '그리스 비극'을 '반지'의 모델로 했다. 그러나 프롤로그 격인 '라인의 황금'에서 이미 구체적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반지'는 4부작으로 봐도 무방하다.
'반지'는 작곡가가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을 하는 데 26년이 걸렸다. 작품을 쓰다가 멈춰서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다른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
또한 바이에른의 소도시 바이로이트에 자신의 음악극 상연에 적당한 극장을 건립한 바그너는 1876년 극장 개관 기념작으로 '반지'를 초연했다.
'반지'는 북유럽의 신화와 게르만족의 전설을 혼합해 만들어졌다. 저주받은 반지가 저주에서 풀리기까지의 40여년 동안의 과정과 반지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극은 16명의 주역을 포함해 3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바그너는 15시간에 이르는 복잡한 이야기를 관객에 쉽게 전달하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마련했다.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합창단)는 전지적인 관점에서 극의 전사(前事)를 설명하고 무대 배경을 제시하며, 주인공을 비난·설득·독려한다. 바그너는 이 역할을 오케스트라에 부여했다. 이를 '유도동기'(Leitmotiv)라고 한다.
게오르그 솔티와 빈 필하모닉의 '니벨룽의 반지' 전곡 수록 음반.
'반지'에는 100여 개에 달하는 유도동기가 사용됐는데,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음악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사건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고, 상황들을 연계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았다. 이러한 장치들은 세상에서 가장 긴 음악을 질서와 구심력을 갖춘 가장 정돈된 작품으로 만들었다.
15시간 동안 연주되는 음악 중 친숙하게 느껴질 부분은 '발퀴레' 3막에 나오는 '발퀴레의 기행'과 '신들의 황혼' 3막의 '지크프리트 장송행진곡' 정도일 것이다.
웅장하면서 스케일이 큰 '발퀴레의 기행'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연출한 영화 '지옥의 묵시룩'(1979)에 쓰였다. 영화 속 킬고어 중령은 헬기에 장착된 확성기를 통해 '발퀴레의 기행'을 틀어놓고선 베트남 양민과 가옥을 향해 포와 기관총을 난사한다. 발퀴레의 용맹함을 부각한 음악과 함께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이 교차하는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지크프리트의 죽음은 '반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애초에 바그너는 '지크프리트의 죽음'('신들의 황혼'으로 수정)이라는 작품을 구상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을 다 가질 수 있는 반지에 대한 배경 설명을 하기 위해 프리퀄 형식의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가 작곡된 것이다. 즉 '신들의 황혼' 중 지크프리트의 장송행진곡부터 브륀힐데의 '희생의 노래'까지 45분 정도이지만, 바그너는 이 대목을 위해 15시간에 이르는 '반지' 4부작을 썼다.
이제 위대한 작품을 접해보자.
오토 솅크가 연출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제임스 레바인 지휘)의 '반지'는 작곡자의 의도를 가장 충실히 따른 고전적인 연출이면서도 바그너의 이 거작을 접하는 초심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길잡이로 꼽힌다. 아울러 파트리스 셰로가 연출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피에르 불레즈 지휘), 하리 쿠퍼가 연출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다니엘 바렌보임 지휘)이 '반지'의 3대 프로덕션으로 꼽힌다.
음반으론 게오르그 솔티(빈 필하모닉)의 역사적인 녹음(1958년부터 1965년에 걸쳐 진행된 세계 최초의 '반지' 전곡 스튜디오 녹음)과 카를 뵘이 지휘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실황 반을 꼽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