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1)] '마지막 세대'를 만나다

40년 세월 만선 꿈꾸며… "물고기 잡아 자식들 다 키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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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 어부' 이정섭(78)씨가 평택호에서 물고기를 잡은 후 귀항하고 있다. 내수면 어업은 청년들의 직업 선호도 하락, 민물고기 수요 감소, 댐 설치와 환경변화로 인한 수산자원 감소 등의 이유로 위기에 직면한 실정이지만 그는 40년간 평택호를 지키며 매일 작은 배를 이끌고 만선(滿船)을 꿈꾸고 있다. 2022.4.5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민물에도 어부(漁夫)가 있다. 경기도에는 1천명이 넘는 '민물 어부'가 산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바다 어부들과 달리 이들은 하천과 댐, 호수, 저수지 등 내수면에서 주로 물고기를 잡거나 양식을 한다.

이 업에 일생을 바친 이들은 돛 하나 달린 작은 나룻배로 노를 저어가며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다. 지금도 작은 모터가 달린 배를 몰며 만선(滿船)을 꿈꾼다.

그러나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가긴 쉽지 않다. 자연으로부터 재화를 생산하는 1차산업에 청년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민물고기를 선호하던 소비자들도 줄어간다.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며 댐 설치와 환경변화로 수산자원은 점점 줄어간다.



결국, 현재 내수면에 남은 민물 어부들조차 다른 일자리를 찾으며 사실상 '마지막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일같이 강에 배를 띄우고 좀 더 발전된 양식 방식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여기에 자신과 아버지의 인생이 담겼기 때문이다.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고 내 아들이 물려받고 싶은 산업이 되길 바라며 내수면 현대화 사업에 뛰어든다.

경인일보는 이 같은 민물 어부들의 재기를 꿈꾸며 경기도 내수면 어업의 역사와 이 업이 왜 위기에 직면했는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 편집자주

여전히 배 띄우는 70대 이정섭씨
1982년부터 고향 평택호에서 조업
"맨땅에 헤딩… 그래도 잘 잡혔어"


"평생을 평택호와 살았어. 물고기 잡아 자식들도 다 키웠지."

이정섭(78)씨는 평택호 '어부(漁夫)'다. 처음부터 어부가 꿈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목장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린 자녀가 둘이었던 이씨는 앞길이 막막했다. 그렇게 찾아온 게 고향 '평택호'였다.

처음에는 낚시꾼을 태우는 '뱃사공'으로 평택호와 만났다. 1979년 노가 딸린 작은 나룻배를 띄우고 낚시꾼들을 태웠다. 한 사람당 5천원, 꽤 쏠쏠했다. "당시 하루에 10만원 벌 때도 있었으니까 노가다(일용직)보다 나았어, 그렇게 한 3년을 했지."

뱃사공으로 평택호를 돌던 그는 1982년 어느 날,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이 이거 하면 괜찮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때 시작했지."

그물값이 비싸 한 사람당 3~4개밖에 못 쳤고 기술 하나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뛰어들었는데, 물고기는 잘 잡혔다. 치어 방류를 해야만 수산자원이 풍부해지는 지금과 달리 그물만 쳤다 하면 만선(滿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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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 어부' 이정섭(78)씨가 평택호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다. 내수면 어업은 청년들의 직업 선호도 하락, 민물고기 수요 감소, 댐 설치와 환경변화로 인한 수산자원 감소 등의 이유로 위기에 직면한 실정이지만 그는 40년간 평택호를 지키며 매일 작은 배를 이끌고 만선(滿船)을 꿈꾸고 있다. 2022.4.5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당시를 회상하던 이씨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작은 나룻배도 '통통배'로 바뀌었다. "직접 노를 젓고 그물로 끌어내고 하니까 너무 힘들었어. 그때 통통배로 바꾸고 모터 달린 배가 나올 때까지 그걸로 먹고 살았지."

그러나 만선의 꿈을 이룬 것은 이씨만이 아니었다. 당시 평택호에만 100여명의 어부가 있었는데, 모든 어부가 고기를 많이 잡기 시작했고 제값을 받기 어려웠다. 위기감을 느낀 어부들과 삼삼오오 모여 판로 개척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때가 1990년대였는데, 많이 잡아도 소용이 없는 거야. 애들은 계속 커가고 교육비는 나가는데, 희망이 안 보였어."

한때 100여명… 값 못받아 위기도
"힘들었어도 노력한 만큼 대가"


어부로 벌써 10년의 시간을 보낸 그는 다른 일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어부들은 하나 둘 평택호를 등졌지만 이씨는 떠나지 않았다. 남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같이 평택호에 배를 띄웠다. 주 어업 시기가 아닌 가을·겨울에도 작업해 보고, 양식장도 차려봤다. "정말 부지런히 했지.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태우고, 애들 가르치려고. 평택호에서 잡은 고기로 자식도 키우고 생활을 했어."

굴곡을 타는 생활에 모터 달린 배도 뒤늦게 샀다. "그때 그 배를 살 돈이면 얼만데, 처음에는 비싸서 사지도 못했다가 나중에 바꿨어."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평택호 어부다. 이제는 자식들도 다 결혼하고 제 밥벌이를 하고 살지만, 이씨는 여전히 매일 같이 평택호에 배를 띄운다. "고기를 잡으면 재미가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싫지가 않더라고. 부지런히 하고 노력하면 그만큼 대가가 나왔으니까." → 관련기사 3면([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1)] 경기도내 어부 40년새 3363→1144명… "힘든일 대물림 안 하고파")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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