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치경찰제는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경찰 행정'이다. 지방정부가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지역 치안을 국가와 함께 책임지겠다는 의미다.
대신 중요범죄 수사는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이나 영국의 국립범죄수사청(NCA)과 유사하게 국가 경찰 조직인 국가수사본부와 각 시·도경찰청의 수사 부서가 전담하고 생활안전, 경비·교통, 여성청소년 보호 등 민생 치안 분야는 지방정부와 자치경찰이 맡도록 역할을 나눴다.
31년 논의끝에 文정부때 전국 확대
교통안전 확립 등 예산 부족 걸림돌
"시·도지사에 분명한 권한 위임을"
우리나라 자치경찰은 수십 년에 걸친 논의 끝에 탄생했으나 제도 안착까지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하다. → 그래픽·표 참조

자치경찰제는 31년 전부터 논의돼왔다. 1990년대 초까지는 자치경찰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지만, 1991년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면서 자치경찰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점차 고개를 들었다.
15대 대통령선거가 열린 1997년 김대중 후보가 지방자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자치경찰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당선된 이후인 1998년 경찰청 안에 경찰개혁위원회를 두고 '자치경찰제도기획단'을 운영하면서 해외에서 먼저 도입된 자치경찰 국내모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자치경찰제의 국내 도입을 위한 초석을 닦은 셈이다.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자치경찰제 공약을 이어받아 기초자치단체 단위의 자치경찰제 도입을 검토했다. 지방행정과 치안행정의 연계성을 확보하면서 기초 단위 지역에 알맞은 치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구상에서다.
2004년에는 대통령 훈령 제131호로 자치경찰실무추진단 운영규정을 공포하는 등 노력 끝에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의 출범과 함께 제주자치경찰제가 시범 실시됐다. 이는 경찰 창설 61년 만의 변화다.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이전 정권에서 논의하던 기초단위의 자치경찰 모델을 계승·보완하는 수준의 기조가 이어졌다.
마침내 문재인 정부에 들어 자치경찰제가 전국으로 확대 도입됐다. 문 정부의 자치경찰제는 전국 17개 시·도 광역단체에 자치경찰위원회를 설치하는 밑그림을 그렸다. 다만 경기도는 1천390만에 이르는 인구수를 고려, 예외적으로 경기남·북부에 각 1개의 위원회를 뒀다.
올해 자치경찰 공무원의 후생복지(복지포인트)예산은 90억원으로 나타났다. 직원복지를 위한 예산이 자체예산의 86%를 차지하는 등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자치경찰이 대민 사업에 손을 놓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지역밀착형 치안 서비스 제공을 위해 탄생한 자치경찰에 정작 지구대와 파출소 인력이 포함되지 않아 제도 실효성에 의구심도 나왔다. 이에 경기도의회에선 지구대·파출소 인력을 자치경찰로 가져오려는 노력과 국가경찰과의 차별성을 갖춰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윤용수 전 도의원은 지난해 11월 행정사무감사에서 "생활안전이나 지역 경비 업무를 하는 지구대·파출소 인력이 국가경찰에 남아 조직 구성이 미흡하다. 자치경찰위가 향후에라도 독자적인 조직으로서 권한을 가지려면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 인력을 가져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국중현 전 도의원도 "(업무보고서에 보면)이륜차 무질서 근절 집중단속을 해서 권역별 집중단속, 순회식 단속 및 구간단속을 시행했다고 적혀 있는데 자치경찰이 (이전과 같이)단속을 강화할 게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불편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비판했다.
자치경찰 주요 사무인 교통시설물 확충과 교통안전 확립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만, 부족한 예산이 걸림돌이다.
경기남부자치경찰위 관계자는 "자치경찰 예산 수준이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적다"며 "교통사고로 인한 어린이 사망사고가 끊이지를 않는데 남부권에만 2천800여개에 달하는 어린이보호구역의 교통 장비를 개선하기란 쉽지 않다. 도민이 체감할 만큼의 변화가 이뤄지려면 2~3년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치경찰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배경에는 근거 법령도 한몫했다. 전문가들은 자치경찰제가 지방자치법이 아닌, '경찰법(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근거가 있어 태생적 한계가 명확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자치경찰 실효성 문제의 핵심축을 이루는 '예산'과 '인사'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면 자치경찰 사무에 대한 광역자치단체장의 책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핵심 제언이다.
자치경찰 사무에 대한 규정을 지방자치법에서 정하도록 해 본래 취지에 맞춰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을 완전히 분리하고, 단체장에게 권한과 책무를 부여해 지자체 예산을 자치경찰에 더욱 많이 투입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결국 모든 조직이 성패를 가르는 것은 예산과 인사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으면 신규 사업 발굴에도 제약이 많고 사업 시행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며 "주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가져오려면 그만큼 지자체가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명예교수도 "자치경찰 출범 이후 경찰조직이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사무국이 하나 더 생긴 것밖에 없다"며 "자치경찰 사무를 경찰법이 아닌 지방자치법에 명시해 시·도지사들에게 자치경찰제 권한을 분명하게 위임해야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 경기남부경찰청은 최근 발표한 '경기남부경찰 정부 혁신 실행계획'에 자치경찰제 내실화를 주요 과제로 삼았다. 구체적인 자치경찰제 내실화 과제로 경기도형 자치경찰 추진, 치안행정과 지방행정을 연계할 수 있는 주민맞춤형 치안서비스 제공 등을 제시했다.
/손성배·명종원기자 light@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