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소설의 영어식 표현은 픽션이다. 허구지만 거짓말과는 달라서 잘 만들어낼수록 읽는 이들이 좋아한다. 잘 만든다는 말은 꾸며낸 이야기이되 꾸며낸 이야기 같지 않았을 때 듣게 되는 칭찬이다.
당선작 '숨비들다'는 꾸민 흔적이 없다. 힘써 말하지 않는데, 그럼으로써 오히려 이야기는 어느새 높은 파도가 되어 읽는 이의 마음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애써 뜻을 전하려다 보면 그 대상을 분명히 하려하고 따라서 윤곽이 지나치게 뚜렷해지며 생경해질 수밖에 없는데 '숨비들다'는 바다 이야기와 가족의 삶이 스푸마토의 연속성을 띠며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소설에서 걸어 나올 것 같은 엄마라는 인물, 그리고 바다에 대한 남다른 경험을 제주 고둥의 언어로 표현해내는 솜씨 때문일 것이다. 모녀실종사건을 통해 나와 엄마 사이의 긴장을 조절하는 가 하면 제주 해녀의 역사를 배경에 두어 면면히 이어지는 거친 삶의 구원성을 슬쩍 비추는 요령도 갖췄다.
무엇보다 가족을 삼킨, 끝내 알 수 없는 바다와도 함께 살아가야 하듯이 이해와 사랑뿐만 아니라 오해와 원망도 삶을 구성하는 원소라는, 물결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점이 돋보인다.
'도미노의 사회학'의 공력도 만만찮다. 페인트 회사 유튜브 채널 론칭의 첫 작품으로 선보이기로 한 도미노 게임에 참가한 아르바이트생들이 어떤 사회적 소속도 없을뿐더러 도미노 시연이 끝나는 대로 흩어져야 할 한시적 신분이라는 점을 문제적 시각으로 착안하여 다룬 수작이다.
'쓰러짐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도미노'라는 아이러니의 진실이, 현재로서는 쓰러진 형편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어떤 삶의 변곡점이 되어줄 수 있을지 기대하게 만드는 소설인데, 제목도 그렇고 도미노가 가진 역설의 뜻에 너무 기댄 나머지 안타깝게도 불필요해 보이는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말하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자살을 기도하며 더러는 그것에 성공하는 로봇 청소기 얘기라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아린의 연산'이 그렇다. 언제나 그렇듯이 로봇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와 함께 진행되는데 아린의 이야기에도 아내를 잃고 자살바위를 찾은 관석이라는 인물이 병치된다. 썩 잘 된 구성임에도 어째서 자주 '과연 이런 로봇은 몇 년 뒤에나 가능할까?'라는 궁금증이 독서를 방해하는 것일까.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미래 서사가 매혹적이고 흥미로운 만큼 그에 상응하는 정교함, 즉 독자의 어설픈 궁금증을 일소시킬 개연성의 치밀함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응모자 모두에게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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