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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OTT(Over The Top-인터넷 TV서비스)가 미디어 시장 주류가 되면서 영화관이 갖는 의미도 변하고 있다. 신작을 '보러' 가는 게 아닌, 미술관에서 엄선된 작품을 감상하듯 확실하게 검증된 영화를 '체험'하러 영화관으로 향한다.

최근 극장들은 가볍게 즐기기보단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영화를 올리고 있다. 추억의 명작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재개봉작들이 대표적 사례다. 작품성이 검증된 만큼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첫 개봉 당시의 분위기나 그 시절 특유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며 기성세대나 레트로에 관심 있는 젊은 세대를 공략할 수 있다.
 

실제 각각 31일과 4월 1일 재개봉하는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와 천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는 GV(영화관계자가 참석해 관객과 대화하는 행사)가 있는 일부 상영 회차는 벌써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특히 두 영화는 재개봉 날이 배우 장국영의 기일인 4월 1일과 맞물렸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배우를 기일에 스크린으로 마주한다는 '추모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인 셈이다.

OTT 주류 자리잡으며 영화 '체험' 강조… 명작 재상영·화제작 다시보기
'해피투게더' '패왕별희' 개봉… "검증작 쏠림, 신인은 더 힘든 구조 우려"


추억의 명작이 아닌 신작임에도 수개월째 영화관 'n차 관람' 열풍을 이끄는 사례도 있다. 최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연 배우 양자경의 여우주연상 수상을 비롯해 7관왕을 달성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독특한 화면연출과 철학적인 주제의식, 높은 완성도 덕에 '영화관에서 보기 좋은 영화'로 입소문을 탔다. 정식 개봉한 지 5개월이 지났음에도 지난 28일엔 하루에만 2천69명이 봤다.

OTT 서비스 '웨이브'를 구독하며 집에서 이 영화를 수차례 감상했다는 백모(27)씨도 이번 주말 영화관에 방문해 'n차 관람'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는 "멀티버스 세계관이라 장면 전환이 많고 색감도 톡톡 튀어서 영화관에서 보면 더 재밌을 거 같다.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을 영화"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처럼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기회비용을 철저히 따지는 '체험'의 의미가 짙어지면서, 한편으로는 양극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콘텐츠 자체가 너무 많다 보니 재개봉작처럼 이미 검증된 작품만 선택하는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처럼 팬덤이 두터운 원작에 기반한 영화가 개봉한 기간에 흥행한 한국 신작 영화는 사실상 없었다. 앞으로 신예 감독 작품은 스크린에 걸리기 더 힘든 구조로 고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