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이야기' 품은 건축자산 재활용 성공사례·(2)] 고색뉴지엄

세월에 밀린 '텅빈 배관'… 문화예술공간으로 '정화'
입력 2023-05-23 21:13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5-2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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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권선구 산업로 85에 위치한 고색뉴지엄 외관. /수원시 제공

'고색뉴지엄'. 수원시가 관내 건축자산을 문화적으로 재활용한 두 번째 사례다.

모든 건축물은 목적이 있다. 주택은 거주자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원하는 조건을 갖추고, 학교는 교육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어진다. 공공기관과 업무공간, 상업시설 등 저마다 각자의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다. 그래서 목적이 상실된 건축물은 쓸모가 없어졌다고 판단해 쇠락하기 쉽다.

하지만 원래의 형태를 살려 새로운 목적을 부여하는 '재활용'은 더 긴 생명력을 부여해 준다는 게 수원시의 설명이다. 문화적 자산으로 새롭게 태어난 고색뉴지엄을 소개한다.

수원델타플렉스내 위치 바로 옆엔 황구지천
첨단기업 입주로 가동못한 비운의 폐수처리장



리모델링 거쳐 '부활' 1·2층엔 시립어린이집
지하전시장 '상상이상'… 협잡물처리기 존치
다양한 장르 행사에 지역 학원 작품 전시도


■ 평범한 외관, 비범한 내부 '반전 매력'


고색뉴지엄은 권선구 산업로 85에 위치한다. 주소에서 드러나듯 산업단지인 수원델타플렉스 내에 있다. 기업의 건물이 즐비한 곳이지만 생태하천으로 관리되고 있는 황구지천도 바로 옆에 있어 전원적인 느낌이 공존한다. 외관은 네모 반듯한 형태의 건축물로 이 일대에서 보이는 건물들과 비슷하다.

입구로 들어서면 내부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먼저 작은 휴게실처럼 마련된 공간에 수원의 산업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자료가 배치돼 눈길을 끈다.

입구가 있는 오른편은 지하로 연결되는데, 계단 옆 벽면을 유리창으로 마감해 햇빛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덕분에 지하지만 지하 같지 않은 자연스럽고 아늑한 분위기를 풍긴다. 계단 아래 작은 공간은 아카이브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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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뉴지엄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선큰(sunken)이 설치돼 밝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수원시 제공

눈을 돌리면 고색뉴지엄만의 정체성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홀에는 커다란 탱크 두 개가 남아 있고, 긴 복도에는 거친 콘크리트 벽면과 배관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사용감이 없는 약품탱크 겉면에는 고색동에 대한 이야기가 새겨져 방문자들에게 이 터의 의미를 전한다.

메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전시실은 1층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규모다. 지하지만 전시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한가운데 천장 한 부분에 창을 만들어 자연채광이 가능하고, 회색 벽은 일반적인 전시공간과는 다른 특별한 느낌을 만든다. 기둥과 벽 등 곳곳에 독특한 구조를 살려 공간 자체를 오브제로 만들었다. 입구 왼편에는 폐수의 찌꺼기와 이물질을 걸러내는 '협잡물 종합처리기'가 존치돼 있어 이 공간의 정체성을 상기시킨다.

■ 비운의 산업건축물,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고색뉴지엄의 과거는 극적이다. 본래 건축한 목적으로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못했던 비운의 건물이 수원시의 고민 끝에 예술적 공간으로 새롭게 재탄생한 스토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고색뉴지엄은 폐수처리장이었다. 수원시 산업단지인 수원델타플렉스에 입주한 기업들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3차에 걸쳐 조성된 수원델타플렉스 삼각형의 왼쪽 꼭짓점에 자리를 잡고 산업단지 조성 초기인 2005년 준공됐다. 하루에 1천380t에 달하는 폐수를 처리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폐수처리장은 태어나자마자 쓸모가 없어졌다. 수원델타플렉스에 전기, 전자, IT, BT 등 첨단 기업들이 주로 입주하면서 가동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폐수가 발생하지 않는 산업단지의 폐수처리장은 존재가 희미해진 채 10여년간 델타플렉스를 중심으로 한 수원의 산업 발전을 쓸쓸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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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뉴지엄 지하 전시홀에 남아있는 약품탱크. /수원시 제공

방치됐던 새 폐수처리장의 운명이 바뀐 것은 지난 2015년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국비와 도비를 투입해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리모델링은 기존 공간들을 존치해 역사성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진행됐다. 폐수처리장이었던 공간의 느낌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배관과 기계장치, 약품 탱크 등의 시설을 존치했다.

특히 폐수처리시설 중 가장 큰 공간이던 공동구 연계 유량조정조와 유량분리조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던 설비들을 해체하고 기둥만 살렸다. 공간 전체를 그대로 펼쳐 다양한 전시 구상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1년여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2017년 11월, 폐수처리장은 고색뉴지엄으로 변신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역 이름인 '고색'과 새롭다는 의미의 '뉴(New)',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뜻하는 '뮤지엄(museum)'을 합성해 만든 이름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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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관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고색뉴지엄 지하 복도에 어린이들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수원시 제공

■ 복합전시공간과 어린이집, 시민에 열린 공간


현재 고색뉴지엄은 크게 두 개의 목적으로 공간을 활용 중이다. 1층과 2층 일부를 시립어린이집으로, 1층 일부와 지하층은 복합전시문화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복합전시문화공간은 시민에게 개방됐다.

개관 기획전시 'Re-Bone(리본) 묶는 기술'이 시작이었다. 폐수처리장이 문화의 장으로 변모하고, 산단과 지역, 예술을 묶는 과정을 알리는 첫 시도였다.

이후로는 수원의 예술인들이 전시할 수 있는 어엿한 대관 전시가 진행됐다. 사진, 회화, 미디어, 설치미술, 시화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가 60여건 가까이 공간을 채웠다. 최근 대관 전시는 인근 지역 미술학원에서 작품활동을 진행한 어린이 100명의 공동 작품 14점이 전시돼 알록달록한 어린이의 작품이 회색 벽에서 한층 더 빛나는 순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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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뉴지엄 기획전시실의 콘크리트 벽을 배경으로 미디어 작품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수원시 제공

교육과 문화행사도 활발하게 열렸다. 지역 초등학생, 경로당, 가족과 일반시민은 물론 산업단지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행사 고색데이 등 수원델타플렉스와 시민간 상생의 기회가 만들어졌다.

이뿐 아니라 재즈, 클래식, 국악, 연극, 마술 등 다양한 장르를 즐기는 문화행사도 매년 개최하면서 고색뉴지엄이 지역 주민들의 문화예술 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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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뉴지엄 1~2층에서 운영 중인 어린이집의 내부가 층고의 변화를 줘 흥미롭게 구성돼 있다. /수원시 제공

1~2층에 마련된 시립고색뉴지엄 어린이집 덕분에 고색뉴지엄에는 어린이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어린이집 시설은 넓은 놀이공간이 눈길을 끈다.

원래 공간을 리모델링하며 아이들에 맞춰 높낮이에 변화를 줘 흥미를 유발하고, 계단 등 모든 공간에 안전을 더했다. 인근 자연환경을 활용해 생태활동 중심으로 친환경적인 교육여건까지 갖춰져 고색뉴지엄에 활기를 더한다.

/김준석기자 joons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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