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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의도적 눈감기와 집단행동

입력 2023-06-22 19:13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6-2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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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은경 칼럼니스트
딸과 함께 길을 가던 어느 여름밤이었다. 한 모텔 앞에 젊은 두 남녀가 마주보고 서 있었고 그 광경을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남의 연애에 관심이 없어 가려는데 딸이 내 팔을 잡아 걸음을 멈추게 하더니 "저 여자가 위험해 보여"라고 말했다. 가만히 보니 남성은 여성을 모텔로 끌고 들어가려 하고 여성은 모텔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여성이 비틀거리는 걸로 보아 술에 취한 것 같았다. 그제서야 내 눈에도 여자가 위험해 보였다. 그런데 두 남녀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 딸이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려고 하며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때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더니 경찰차가 도착했다. 어떻게 경찰차가 오게 됐는지 알 수 없었으나 경찰차를 본 남성이 그곳을 떠남으로써 그 위험한 상황이 종료됐다.

그 당시 이십 대 초반의 딸이 남을 돕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려던 것이 대견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나 자신을 반성했다. 만약 그때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경찰차도 오지 않아 남성의 힘에 못 이겨 여성이 모텔에 끌려들어 갔다면, 여성은 어떻게 되었을까? 길거리에서 우리의 아들딸들이 어떤 곤경에 처해 있는데 그걸 보고도 도와주는 이가 없다고 상상해 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실제로 '방관자 효과'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 '방관자 효과'는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나설 것으로 생각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현상을 말한다.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 것이다.

불쾌하고 성가신 일 못 본척 하면
'방관자 효과'로 끔찍한 일 발생
다급한 상황엔 집단행동 더 낫다


마거릿 헤퍼넌의 책 '의도적 눈감기'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어 입력된 정보를 편집하고 걸러야만 한다. 이때 '우리 대부분은 연약한 자아와 중대한 신념을 뒤흔들어 놓는 것들을 편리하게 걸러 내고,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줄 정보들만 통과시킨다'라고 책은 말한다. 즉 우리는 불쾌하거나 성가신 일에는 못 본 척하고 눈을 감는다는 얘기다.

개인 생활 속에서도 의도적 눈감기를 한다. 내게 이런 일이 있었다. 방 안의 형광등을 켤 때마다 몇 초간 깜빡거리다가 제대로 켜지곤 했는데, 고장인가 하다가 별일 아닐 거라고 여기며 방치했다. 며칠 뒤 형광등에 아예 불이 들어오지 않아 불편을 겪고 나서야, 깜빡거리던 것이 고장의 신호임을 알았다.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었으면서도 나는 왜 의도적 눈감기를 한 것일까? 그 이유는 형광등이 고장 나는 게 성가셔서 고장 난 게 아니라고 믿어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었던 것이다.



인간관계 속에서도 의도적 눈감기를 한다. 연인들 사이에서 상대편의 변심을 눈치채지 못하고 이별 통보를 받고 나서야 변심을 알게 되는 이가 있다면, 의도적 눈감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심상찮은 기미는 만나는 시간 곳곳에 있었을 테니. 가령 상대편이 잘 웃지 않거나 헤어질 때 아쉬워하지 않는 등 예전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냥 지나쳤으리라.

학폭문제도 아이들 힘 합친다면
해결하는데 불가능한 일 아니다


술 취한 사람이 버스 기사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 익히 보았다. 버스 안에 승객이 여럿 있어도 사람들 대부분은 눈감기를 한다. 우리 가족이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버스 기사도 누군가의 가족이다. "우리가 힘을 합쳐 기사를 구해 냅시다" 하고 용기 내어 말하는 승객 한 명만 있어도 모두 협동을 해서 취객의 폭행을 멈추게 할 수 있다. 그런 다급한 상황에선 경찰차가 출동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니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보다 승객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 더 낫다. 집단은 가해자인 개인보다 힘이 세다. 이 점을 모든 이들이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한 가지 덧붙여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요즘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학교 폭력 문제'에 관해서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배운다. 남을 돕기 위한 어른들의 집단행동을 보고 배워서 '학교 폭력 문제'도 반 아이들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피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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