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에 대해 여야 정가에서 재조명 바람이 불고 있다. 국가보훈부가 오랫동안 보류한 조봉암 선생의 서훈을 검토할 것이란 전망(6월15일자 1면 보도=보훈부 "조봉암 재평가해야"… '독립유공자 서훈' 길 열렸다)이 우세한 가운데 죽산 재조명 바람이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17일 경인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15일 제주도 한 호텔에서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주포럼 강연자로 나서 "개인적으로 1950년 농지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결정적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농지개혁은 이승만 대통령과 조봉암 농림부 장관이 설계하고 시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주의 운동 전력 걸림돌 시선 속
한동훈, 韓 건국 이바지 발언 '뜻밖'
보훈부, 공적심사위 확대·개편 계획
이어 한 장관은 "과거 공산주의 활동까지 했었던 조봉암과 함께 농지개혁을 이뤘다는 것은 결정적으로 장면을 빛나게 한 것"이라며 "농지개혁이 만석꾼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에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 같은 대한민국 영웅들이 혁신을 실현하고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대전환의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한동훈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이 대기업 탄생의 초석을 다져 한국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이를 위해 서로 이념이 다른 조봉암까지 기용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승만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발언이지만, 당시 농지개혁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조봉암 선생이 대한민국 건국에 분명 이바지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조봉암 선생이 '진보당 사건'으로 간첩죄 등 누명을 쓰고 1959년 사형을 당했다가 2011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로 복권됐지만, 그동안 이념을 떠나 그를 추모하고 기리는 활동은 고향 인천(강화)에 국한됐다. 인천 바깥을 벗어나면 특히 보수 진영에서 조봉암 선생의 독립운동과 건국 참여 공로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가 짙었다.
정부가 조봉암 선생의 명확하지 않은 친일 행적 때문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계속 보류한 상황과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공산주의 운동 전력이 걸림돌이 아니겠느냐며 석연치 않다는 시선이 존재해왔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 들어 보수 진영에서 조봉암 선생의 재평가가 이어지는 건 뜻밖이라는 반응이 많다.
최근 보수 진영 인사로 분류되는 박상은 전 국회의원 주도로 강화 지역 인사들이 참여하는 '죽산조봉암농지개혁기념관건립위원회'가 발족하기도 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도 지난달 13일 언론 인터뷰에서 "열린 자세로 죽산에 대해 한번 재평가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훈부는 조봉암 선생의 서훈 검토에 대해 "특정 인물에 대한 검토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보훈부는 지난 2일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를 확대·개편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고 "공과(功過)가 함께 있는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도 정책 연구와 토론회 등을 거쳐 재평가 방안이 있는지 찾아볼 계획"이라고 했다. 보훈부의 '재평가' 대상으로 조봉암 선생과 독립협회 창설 등에 참여한 김가진(1846∼1922) 등이 꼽힌다.
이달 31일 조봉암 선생의 64주기 추모식을 앞두고 야권에서도 그의 뜻을 기리는 움직임은 이어진다.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와 김교흥(민·인천 서구갑) 국회의원은 17일 국회에서 '조봉암을 중심으로 다시 읽는 한국 현대사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전국적으로 폭우 피해가 심하자 행사를 잠정 연기했다.
일각에선 조봉암 선생을 정적(政敵)으로 여기고 '사법살인'한 이승만 대통령과 조봉암을 함께 묶어 재평가 대상으로 삼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