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다녀와야… 대형사건 '트라우마 상담' 높은 문턱

입력 2023-08-07 20:40 수정 2023-08-07 20:51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8-08 1면

1
지난 6월 심리상담 운영을 종료한 용인시 수지구 경기도심리지원센터의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는 모습. 2023.8.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퇴근 후 약속 장소로 향하던 주모(28)씨는 '분당 묻지마 흉기 난동' 현장에 있었다. 당시 AK 플라자 1층을 지나던 주씨는 칼에 찔린 피해자의 비명을 듣고 백화점 내 햄버거 가게로 급히 몸을 숨겼다.

피신해 있던 10분 동안 공포에 떨다 경찰들의 안내로 겨우 현장을 빠져나왔지만,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과 현장의 잔혹한 비명 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아 주말까지도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사건 현장을 빠져나가는 중에 닥터헬기가 이륙하는 걸 봤어요. '저 안에 타고 있는 피해자는 누구일까', '나도 저기 타 있을 수도 있었겠다', '왜 자꾸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라는 생각에 긴 밤을 슬픔으로 보냈어요. 어디에 토로하지도 못하고, 그저 밤새 기도만 했던 것 같아요"라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잇따른 흉기난동 사태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도민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의 상담과 회복 등을 지원할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주씨와 같은 사건의 목격자뿐 아니라 피해 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전파되면서 일반인들도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고 있지만, 전문인력을 갖춘 경기지역 상담시설 다수가 정신과 진단을 받아야만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심리지원센터 관련 (15)
지난 3일 발생한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등 잇딴 '집단 칼부림'이 이어지고 있어 패닉 증상을 호소하는 도민들이 늘고 있지만 경기도심리지원센터가 지난 6월 운영을 종료하는 등 상담을 받을 길이 요원해 보인다. 사진은 운영을 종료한 용인시 수지구 경기도심리지원센터의 모습. 2023.8.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도민 무료 '심리지원센터' 문 닫아
수요 많았지만… 올 예산 대폭 삭감


7일 경기도에 따르면 일반 도민 누구나 50분가량의 심리 상담(최대 5회)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경기도 심리지원센터는 지난 6월 운영이 종료됐다. 개소 첫 해 1년간 700건이 넘는 상담, 대기자만 100명이 넘을 정도로 수요가 높았지만, 도의 예산 지원이 절반으로 삭감되는 등의 이유로 문을 닫게 됐다.

현재 31개 시군에서 각각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정신건강의학과의 초기진단 또는 진단코드를 받은 대상이 상담 서비스와 지원사업을 신청할 수 있다. 도내 유일한 트라우마센터인 안산온마음센터는 세월호 유가족 및 피해자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씨처럼 대형 범행 사건을 목격해 일시적 트라우마를 겪는 도민은 사실상 간략한 전화상담 외에 심리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분당 흉기 난동 이후에도 전국적으로 묻지마식 범죄가 잇따르자 지난해 이태원 참사 때처럼 '집단 트라우마'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지만, 기댈 곳은 부족한 셈이다.

정신건강센터 '진단 코드' 요구돼
'흉기난동' 등 충격… 기댈 곳 부족

이미 지난해 경기도의회에선 이인애(국·고양2) 의원이 정신과 진단 없이도 트라우마를 겪는 도민들이 심리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내 센터들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상임위 회의에서 지적한 바 있다.

한편 경기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 지시에 맞춰 피해자와 가족, 목격자 등에게 심리상담 지원을 위한 조치에 나섰다. 도 관계자는 "(흉기난동 등과 관련한 피해에 한정해)각 시군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전파해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



경인일보 포토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

고건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