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신춘문예
[2024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김문자 '달로 가는 나무'
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
달의 범람으로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땅은
다섯 개의 줄기로 자라는 은행나무의 품이 되었다
보름달 상현달 하현달 초승달 그믐달을 키우는
인천 장수동 사적 562*번 800년 된 은행나무
처음부터 약성이 쓴 뿌리에서 시작되었다
오래된 나무는 달에서 왔다
달이 몸을 바꿀 때마다 은행나무의 수화는 빠르다
전하지 못한 말들은 툭 떨어지거나 노랗게 익어갔다
은행나무는 자라면서 달의 말을 하고
은행나무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바닷물이 해안까지 차오르는 슈퍼 문일 때
남자는 눈을 감고 여자는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의 우듬지는 800년 동안 달로 가고 있다
소래산 성주산 관모산 거마산을 거느린 장수동 은행나무
달빛이 은행나무 꼭짓점을 더듬는 농도 짙은 포즈
은행나무는 품을 여며 폭풍과 폭설을 견디는 새집이 되었다
큰 나무의 덕을 보아도 큰 사람의 덕을 못 본다는
무서운 격언을 새가 쪼아 먹을 때
뒷산까지 뿌리가 뻗은 은행나무를 뽑으면 산이 무너질까 봐
사람들은 새가 세 들어 사는 나무에게 빌었다
빙하기에도 살아남아 풍년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7월과 10월의 보름이면
은행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 지아비 달이 걸린다
그때, 꿈이 많은 아이가 은행나무를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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