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진도항 '팽목기억관' 지키는 유가족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1)]

입력 2024-04-14 20:21 수정 2024-04-26 10:14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4-15 3면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둔 지난 9일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항(구 팽목항)에 세월호 참사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리본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깃발이 내걸려 있다(왼쪽). 같은 날 진도항 부근 팽목기억관에서 희생자 지상준군의 어머니인 강지은씨가 추모객들이 남긴 편지를 읽고 있다. 2024.4.9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제대로 된 공간' 숱한 약속… "외면 말고 반성, 함께 고민을"


분향소 희생자들 사진 빼곡·진한 향 냄새
추모객들의 방명록 속 '잊지 않겠다' 새록
안산·서울·진도 합동분향소 하나씩 철거
팽목기억관만 유가족 30여명 교대로 지켜

불법시설 인지에도 미조치 난처한 진도군
2019년 전남지사 4·16기록관 발표 긴 기다림
작년말 국민해양안전관 오픈 '불통' 확인만
해수부 '생명기억관' 내년 9월께 용역 결과


그 바다에 아직 배가 있다. 배는 더이상 바다로 나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아직 그 배를 끌어안고 사는 가족이 그 바다에 있다. 도시에도 아직 배가 있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모두의 마음 속 그 배가 여전히 그 도시를 부유한다.

그렇게 10년이다.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 그 장면들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날 출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구해냈더라면, 그래서 살렸다면, 그간의 4월은 모두에게 흩날리는 벚꽃인양 내내 아름다웠을 것이다.



10년 동안 끊임없이 잊으라고 채근했다. 잊지 않는 마음을 오해하고 모독하기도 했다. 잊고 싶지 않아서 잊지 않는 게 아니다. 잊히지 않아서 잊지 못한다. 가족은 더 그렇고, 친구도 그러하고, 동시대를 사는 우리도 그러하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은 잊지 않는 것이다.

기억하면서 추모하고, 추모하면서 일상을 무사히 지내는 것이다. 우리의 기획은 세월호 참사 그리고 '추모'에 대한 지난 10년을 반추하며 추모와 일상이 어우러질 때, 우리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2014년 4월 16일, 깊은 바다에서 끌어올려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수습되던 곳, 비명과 오열이 가득했던 팽목항은 이제 이름도 진도항으로 바뀌었다. 바뀐 이름처럼 진도항을 다시 찾았을 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반짝이는 윤슬과 보글대는 파도소리가 아름다웠다.


그 곁에 4·16 팽목기억관이 있다. 4·16 팽목기억관이라 적힌 푯말이 가리키는 곳에 컨테이너 4개가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었다. 분향소로 사용되던 팽목기억관, 팽목강당, 가족식당, 성당까지 각각 33㎡ 남짓한 4개의 컨테이너가 기억관의 전부다.

오랜 시간 바닷바람을 맞은 기억관 컨테이너들은 10주기를 맞아 노란 페인트 칠이 덧입혀졌다. 진도항을 상징하는 빨간 등대도, 노란 리본 조형물도 새단장을 한 모습이었다.

색은 덧입혀졌어도 지난 10년의 세월은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분향소 문을 열면 10년간 자리를 지켜온 희생자들의 사진이 빼곡히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향을 피우지 않아도 방 안 가득 진하게 배어 있는 향냄새가 코를 찔렀다.

'잊지않겠다'고 적어놓은 추모객들의 방명록 속엔 저마다의 기억도 기록됐다. '2014년 4월, 8살 큰딸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TV를 틀었을 때 마주한, 하루종일 가슴 졸이며 탄식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그 아이가 단원고 2학년생들과 같은 나이가 됐다. 오늘 그 친구를 데리고 왔다. 나의 아이가 자랄수록 잃어버린 그 아이들이 너무 사무친다'는 손글씨도 10년의 증거다.

팽목기억관은 유가족 뿐만 아니라, 10년 동안의 우리 모두의 추모를 담은 기억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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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둔 지난 9일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항(구 팽목항)에 세월호 참사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리본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깃발이 내걸려 있다. 2024.4.9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10년, 아버지가 지킨 컨테이너 기억관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출발한 세월호가 진도군 병풍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되며 침몰했다. 4월 18일 세월호는 바다에 가라앉았고 실종자 수색 작업이 이뤄지다가 11월 11일 수색이 전면 종료됐다. 그러면서 2015년 4월 22일 선체 인양이 결정되고 침몰 490일만인 8월 19일 인양 작업이 시작됐다.

결국 2017년 3월 31일 인양된 세월호가 목포 신항만에 도착했으며 2018년 5월 10일 세월호가 똑바로 설 수 있게 됐다. 참사 이후 3년 만에 세월호가 뭍으로 건져졌으며 직립한 뒤 6년동안 목포신항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인양된 후 변한 건 없다. 참사 직후 유가족이 자리를 지켰던 진도항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는 안산 화랑유원지, 서울 광화문광장, 진도항에 설치됐으나 2018년 4월 16일 합동 영결·추모식을 기점으로 하나씩 철거됐다.

분향소를 정리하기로 하면서 진도항에서 가족대기실, 분향소로 쓰이던 낡은 컨테이너도 없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우재 아빠 고영환씨가 '팽목기억관'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 공간만은 지켜냈다 .

그 후, 고영환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상주할 수 없게 되자 30여명의 유가족이 돌아가며 팽목기억관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다. 그게 지금, 이제 진도항이 된 팽목기억관의 현실이다.

컨테이너가 전부인 팽목기억관을 제대로 된 공간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숱한 약속들은 여전히 진전이 없다.

지난 2019년 4월 16일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세월호참사 추모식에서 '팽목 4·16 기록관'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이는 유가족에게 기약없는 기다림만 안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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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진도항 부근 팽목기억관에서 희생자 지상준군의 어머니인 강지은씨. 2024.4.9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10년 방치의 끝에 불법시설 위기에 놓인 팽목기억관, 난처한 진도군


진도항에서 만난 희생자 지상준군의 엄마 강지은씨는 "팽목기억관을 비워놓으면 금방 잠식될 것 같아서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팽목기억관 바로 옆에는 '진도항 개발사업'으로 지난해 진도항여객터미널이 들어섰다.

여객터미널 이용객이 많은 주말이면 팽목기억관은 영락없이 주차장 신세다. 실제로 진도군은 유가족과의 협의를 전제로 팽목기억관 부지를 주차장으로 개발하고자 구상 중이다. 하지만 유가족에겐 공간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다가온다.

팽목기억관은 엄밀히 따지면 미신고 불법 시설물이라 진도군 입장도 난처하다. 섣불리 팽목기억관을 철거할 수도, 유가족들의 요구대로 새로운 기억관을 나서서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진도군청 관계자는 "팽목기억관이 불법 시설물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 시설에 대해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예정"이라며 "군 나름대로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을 수렴하고 있다. 다만, 진도군도 참사 당시 군민 피해가 있기도 했다. 진도군이 참사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며 곤란한 입장을 전했다.

■ 유가족도, 군민도 반기지 않는 가슴 뚫린 어머니상

진도항 부근에는 지난해 12월 국민해양안전관이 문을 열었다. 세월호 특별법을 근거로 세워진 국민해양안전관은 해양·재난 안전 체험 행사 및 교육 등이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추모를 위한 '4·16 메모리얼 홀'에서 음성 방명록을 통해 희생자에게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해양안전관은 정부와 유가족, 지역사회 간 소통의 부재를 보여주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국민해양안전관 옆에 크게 세워진 가슴이 뚫린 노란색 맘상(어머니 조형물)이 대표적인 예다.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만큼 유가족과의 소통이 중요했지만,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유가족들의 목소리다.

강지은씨는 "가슴이 뚫린 채로 바다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에서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유가족 의견을 반영하질 않으니, 왈가왈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특히 이 조형물은 진도군민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당초 세월호 참사 사고 지점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으로 설계됐지만 "시선이 불편하다"는 민원을 이유로 조형물의 시선은 아래로 조정됐다. 참사를 계기로 설립되는 만큼, 유가족을 비롯해 지역사회와의 소통이 중요한 요소였지만, 일방적인 추진 과정으로 안하느니만 못한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 지지부진한 추모관 건립…유가족·시민들이 원하는 추모시설은

유가족들은 크고 거창한 추모시설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사고의 현장에서 참사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되짚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공간을 원하고 있다. 추모시설을 계기로 참사를 외면하지 말고, 반성하며 안전한 사회를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 그 의의다. 그건 앞서 만난 희윤씨와 같이, 이 곳을 찾는 시민들 대다수의 의견이기도 하다.

정부자 4·16 가족협의회 추모분과 팀장은 "팽목항은 304명 아이들이 수습돼 올라와있던 장소로서 의미가 있다"며 "지금 하루에도 몇명씩 추모객들이 팽목기억관을 찾는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와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미래세대가 안전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억하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소박한 바람과는 달리, 지난 10년 사고 현장에서의 추모시설조차 좀처럼 속도가 나질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소통과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2020년 목포에 '세월호생명기억관'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신항만에 있는 세월호 선체를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앞으로 1.9㎞가량 이동해 기억관, 추모관, 생명공원 등을 함께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 조성 사업은 이제야 설계 연구용역에 착수해 내년 9월 이후 용역 결과가 나온다.

이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유가족들의 소통을 위해 여러차례 설명회를 하고는 있지만 경제성·안전성 등으로 유가족 의견만 100% 반영하긴 힘들다"며 "특히, 생명기억관 조성 사업에 속도를 내달라는 요구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용역결과를 기반으로 세부 계획도 다듬을 것이다. 사업 적정성 검토 등 여러 절차들을 거치느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고건·이영선·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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