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허리가 끊겼다
난개발로 깊어진 상처… 덧나기 전 '생태계 보전' 수술대로 [경기북부 허리가 끊겼다·(4-2·끝)]
산림당국 적극행정 펼쳐야
사유지 문제·미흡한 법체계 원인
경기북부 산줄기 자연 훼손 계속
전문가, 정부-지자체 협력 강조
국제 생물다양성협약 실천 가치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와 경기북부 주요 시군을 관통하는 한북정맥의 상처가 난개발로 깊어지는 사이, 환경보전 가치가 상승하는 역설은 그만큼 한북정맥 보호가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능선 길이가 160㎞에 달하는 한북정맥은 도로, 채석장, 산업단지, 골프장, 군사시설에서 나아가 상업·주거·교통시설 등을 포괄하는 신도시 개발로 훼손되거나 형체를 잃은 곳이 이미 넘쳐난다.
지금처럼 정맥을 보호할 법체계가 마련되지 않고 산림당국과 경기도 차원의 뚜렷한 개선 노력이 없다면, 한북정맥 생태계는 미래 세대에게 남길 수 없는 치유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산림·생태 전문가들은 "정맥의 생태·환경적 가치가 이미 다양한 연구 조사로 확인된 데다가 특히 한북정맥의 경우 수도권과 접해 보전가치가 상당하다"면서 "한북정맥의 보전 방안을 찾는 건 다른 정맥을 보호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한 "현재 개발 흐름을 원천 차단하긴 어렵고, 정맥에 자리잡은 사유지 문제를 해소해야 하기 때문에 국유지 중심으로 훼손지 확대를 막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정부가 지자체들과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마련해 정맥을 보호하기 위한 현실적인 실행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 사유지 문제 남아…보전 요구 높은 훼손지부터
전문가들은 백두대간과 달리 한북정맥 보호 방안을 찾기 어려운 이유로 사유지 비율이 높은 현실적인 조건을 꼽는다. 훼손이 진행 중이거나 방치돼 있는 산림과 산지가 개인 소유라면 산림 당국이 개발을 막거나 복원을 강제할 근거가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산림청 주관 '한북정맥 자원실태변화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2020년)에서 책임연구를 맡았던 김동필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한북정맥은 수도권 개발로 훼손문제가 심각해 보전 필요성이 어느 곳보다 높지만, 사유지 비중이 커 훼손지를 복구하는 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김 교수는 "소유주들이 실질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땅을 중심으로 재산세 감면 등 유인을 주는 방식을 통해 매입한 뒤, 보호하고 복원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최윤호 백두대간숲연구소장도 "사유재산의 개발을 막을 수 없다면 훼손을 최소화 하는 방향과 '친환경적인 개발'을 대안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며 "산지전용을 통한 이익을 상쇄할 만한 지원을 하거나 정맥 주 능선을 가로지르는 시설 개발을 최대한 억제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산지계획 등을 준수하는 임업인들에게 혜택으로 주는 임업직불금과 같은 제도를 예로 들었다.
백두대간과 정맥 등 산줄기 관련 연구가 이어지고 있고 훼손으로 복구가 시급한 대상이 제시되는 만큼 회복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산림당국과 경기도가 발빠르게 정맥 보전 사업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양주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취재진과 만나 한북정맥 훼손 실태와 보전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이양주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림청, 환경부의 정맥 보전·복구 사업은 사실상 찾기 어렵고 지자체 사업 또한 도심 공원 정비에 치우친 면이 있다"며 "경기도가 주기적으로 하는 '산지관리계획'에 이미 생태축이 단절된 구간 등 복구가 시급한 한북정맥 지점이 나열돼 있는데, 이 구간부터라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 생물다양성 가치 높아…정책 협력 체계 구축 필요
훼손된 정맥 줄기를 살리는 건 연쇄적인 환경 파괴 흐름을 막을 수 있다는 점과 무엇보다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박종민 전북대 산림환경과학과 명예교수는 "기후위기 국면에서 산림과 녹지 면적을 확보하는 노력은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며 "새로 산림을 만드는 것보다 접근성이 이미 높은 훼손지를 복원하고 살리는 것이 효율적이고 기대할 만한 환경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 총회에서 면적의 30%(현재 한국 17%)를 보호지역으로 확대하자는 실천 목표를 세웠는데, 보전 가치가 크고 상대적으로 개발 피해가 적은 정맥 구간에서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맥 등 산줄기 보전·복원 사업에 적지 않은 예산이 드는 만큼, 지속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결국 정부와 지자체 등 기관 사이의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협력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국토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녹지 보호 관련 정부 예산이 줄어드는 추세에 환경부와 산림청 등 부처의 사업까지 제각각이어서 사업 효율은 계속 떨어진다"며 "'정맥 보호'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함께 실태를 진단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도 "정맥 보호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부처간 협력과 정책 추진을 위한 예산 배분도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최재훈 본부장(지역사회부), 조수현·김산 기자(이상 사회부), 임열수 부장(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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