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소음공격 대책없는 정부

[영상+] 불면의 밤, 불안한 낮… 고향 등져야 하나 [北 소음공격, 대책없는 정부·(上)]

입력 2024-09-24 21:05 수정 2024-09-25 16:06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9-25 1면

일상 무너진 강화 송해면 주민들


'마을의 고통' 경인일보 첫 보도
국내 방송·日 언론도 실상 다뤄
"다른 것이 날아올수도" 공포감
해결 논의 자리 반목·갈등까지




조용하고 평화롭던 시골 마을이 지금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을로 변해 버린 건 순식간이다. 두 달 전부터 이어진 북한의 소음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이야기다.

경인일보 첫 보도 이후 국내 주요 방송과 신문, 일본 언론까지 송해면의 실상을 알렸지만 '마을의 고요'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주민들은 언제까지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을지 막막해 했다. 북한의 도발이 어느 순간 소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주민들은 시달리고 있었다.



지난 23일 송해면 당산리에서 만난 임신부 이선영(38)씨는 북한이 보내오는 밤낮없는 소음에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이씨는 "아기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것이 엄마들의 마음이다. 클래식 음악을 들려줘도 모자란데 매일 기괴한 소음을 들려주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마을지도자로 활동하는 이만호(63)씨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마을지도자로 활동하는 이만호(63)씨가 지난 23일 고려천도공원에서 소음이 들려오는 철조망 너머 북한 땅을 바라보고 있다. 이씨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 하루 아침에 떠나고 싶은 곳으로 변한 상황이 낯설다"고 말했다. 2024.9.23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이곳은 이씨의 고향으로, 그는 대남 방송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런 그에게도 이번 소음은 견디기 힘들었다. 6년 전 이씨는 친정어머니 건강 때문에 인천 도심 생활을 접고 공기 좋고 물 맑은 고향 집으로 되돌아온 터였다. 이씨는 "힘들게 고향으로 왔는데,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매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이만호(63)씨는 "조용한 마을이 하루아침에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곳으로 변해 낯설다"고 했다. 의용소방대장으로 봉사하며 마을 안전에 늘 신경을 쓰는 그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북의 소음공격이 마을을 헤집어 놓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대남 소음 공격용 북한 확성기.
강화군 송해면에서 바라본 대남 소음 공격용 북한 확성기. 2024.9.2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그는 "가끔 귀순자가 넘어왔지만 평화로운 마을이었다"면서 "주민들도 소음에 시달리다 이젠 지쳤는지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반목·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혼란이 북한이 원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마을 어른들은 북한이 6·25 남침 직전에 시끄럽게 떠들었던 때가 떠오른다고 말씀하시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소음 말고 다른 것이 날아오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 한다"고 전했다.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주민도 부지기수다. 초등학교 1·3학년 두 자녀를 키우는 안미희(38)씨는 최근 병원에 들러 수면제 열흘 치를 처방받았다. 7월 말부터 소음에 시달리다 보니 편두통이 생겼다.

직장은 강화읍에 있고 회계일을 한다. 소음이 없어도 업무 내내 그 소리가 맴돌아 미칠 지경이다. 그동안 가정 상비약인 진통제로 버텨왔지만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 고쳐지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그는 "편안하게 잠들지 못했다. (일하다가) 자칫 숫자가 틀리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걱정"이라고 했다.

안씨도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강화읍 아파트에 살다 아파트 층간소음을 피해 10년 전 친정댁 인근으로 이사했다. 안씨 자택은 주변 논밭보다 4~5m 높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데, 소음을 가려줄 나무도 없어 북의 소음이 더 크게 들렸다. 그는 "층간소음이 싫어서 조용한 고향 마을로 왔는데, 난데없는 북한 소음으로 또 정든 고향을 다시 떠나야 하나 고민"이라고 말했다.

"동물은 사산하고 낚시터는 발길 뚝…" 북한 소음공격, 막막해진 생계


가축 이상행동·손님 방문도 감소
다른 형태 도발 등 불안감 커져가
"주민 삶 지켜달라" 정부 향해 호소

 

소음 공격은 가축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염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안순섭씨. 최근 농장에서 염소 두 마리가 사산해 고민이 크다. 2024.9.24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소음 공격은 가축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염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안순섭씨. 최근 농장에서 염소 두 마리가 사산해 고민이 크다. 2024.9.24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북한의 소음공격은 인천 강화군 송해면 주민들이 기르는 가축에도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

안순섭(67)씨가 키우는 염소와 사슴도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안씨는 "밖으로 나와 뛰어놀던 염소들이 두 달 전부터는 먹이 활동도 하지 않고 축사 안에서 사료만 먹으려 해 걱정이 크다"며 "사슴들도 불안하고 불편한지 서로 모여 있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딱하다"고 했다. 최근에는 염소 두 마리와 사슴 두 마리가 사산(死産)한 터여서 그의 걱정은 더 크다.

북한의 소음공격이 지속되면서 생계에 직접적 영향을 받은 이들도 있다. 송해면 양오저수지 낚시터는 두 달 넘게 손님이 끊겼다. 대부분 손님이 실외에서 낚시를 즐기는데, 북한의 소음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줄 대책은 업주로서 딱히 없다. 

 

낚시터를 운영중인 한재호씨는 "북한의 소음이 손님을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2024.9.24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낚시터를 운영중인 한재호씨는 "북한의 소음이 손님을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2024.9.24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낚시터를 운영하는 한재호(63)씨는 "'물멍'이라고 한다. 조용한 가운데 야외에서 낚시를 즐기고자 하는 이가 많다"며 "북한의 소음이 손님들을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어 "이제는 낚시 동호인 사이에서 소문이 다 퍼져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라고 했다.

북한의 소음공격에 당한 손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난다는 것이 한씨 설명이다. 그는 "한밤중 들리는 괴이한 소음에 물에 뛰어들고 싶었다는 손님도 있었다"면서 "생계가 막막하다"고 했다. 낚시터는 24시간 밤낮으로 운영된다. 한씨 가족 5명 모두 낚시터에서 일하다 보니 타격이 막심하다. 주말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던 방갈로도 이제는 텅텅 빈다고 한다.

송해면 주민들은 북한의 소음공격으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을을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다른 형태의 도발로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주민들에게 희생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송해면 당산리 마을지도자 이만호씨는 "이런저런 고민에 주민들은 지금 충분히 괴롭다. 어쩌면 북한은 자신들이 지금 이기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며 "(정부가) 주민들의 삶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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