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전세사기 그후 1년
희망 대신 찾아오는 '경매꾼'… 세입자들 삶은 폐허 [수원 전세사기 그후 1년·(上)]
그 집엔 여전히 피해자가 살고 있다
건물엔 '사회적 재난현장' 전단지
'경매시 입찰 말라' 경고 문구도
"좋은 신축 소문, 외부인 자주 와"
통째로 대부업체에 넘어가기도
2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주택인 수원시 한 오피스텔에 피해 사실을 호소하며 경매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의 전단지가 붙어 있다. 2024.10.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본 건물은 전세사기 피해 건물입니다. 이는 참혹한 사회적인 재난현장입니다."
지난해 9월 수원과 화성 일대에서 전세사기 폭탄이 터졌다. 부동산 임대업을 하던 정모(59)씨와 그 일가족이 전세 계약기간이 만료된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했다. '수원 일가족 전세사기'라 불린 이 사건은 현재까지 피해자 511명을 발생시켰고, 피해액은 760억여원에 달한다.
2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주택인 수원시 한 오피스텔에 경매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2024.10.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1년이 지나가는 시점 다시 찾은 전세사기 피해주택에는 여전히 피해자들이 살고 있었다. 지난 25일 수원 권선구 세류동의 한 오피스텔 울타리에는 붉은색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현수막엔 해당 건물이 조직적인 전세사기로 소송 중인 건물임을 밝히며, 해당 건물이 경매에 부쳐질 시 입찰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곳에 사는 입주민에게서 올해 초 이른바 '경매꾼'이라고 불리는 부동산 투자자들이 '임장(부동산 투자 목적으로 매물을 보러 다니는 행위의 은어)'을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입주민 A씨는 "비교적 신축 건물이고 주변 교통편이 좋아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우리 건물이 소문났다"며 "경매가 개시되기도 전인데 올해 초중반까지 외부인들이 찾아와 입주민들이 뜻을 모아 현수막을 걸게 됐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주로 중개됐던 수원시 한 공인중개사의 유리창이 깨져 있다. 2024.10.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같은 날 정씨 일가가 공인중개 사무실을 운영했던 수원 팔달구의 한 빌라 건물 1층은 외부 충격으로 유리창이 깨진 상태였다. 유리 안쪽으로 난장판이 된 채 방치된 내부가 보였다. 이곳은 지난해 10월 정씨 일가의 압수수색 당시 피해자들이 몰려와 한바탕 소란이 발생한 현장으로 주변엔 전혀 관리가 안 된 채 쓰레기와 담배꽁초, 유리파편 등이 흩어져 있었다.
집주인이 구속되자 건물을 관리할 주체가 사라진 건물들엔 피해자만 남아 고통받고 있었다.
2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주택인 수원시 한 오피스텔에 피해 사실을 호소하는 내용의 전단지가 붙어 있다. 2024.10.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화성 병점동의 한 빌라엔 누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세입자들은 건물 관리업체에 수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건물 청소와 쓰레기 수거 등의 업무는 가능하지만 누수 공사의 경우 건축 당시 배수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집주인이 직접 보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입주민 B씨는 "비가 오면 계단, 복도 등에 물이 새 곰팡이 냄새가 난다"며 "어디에도 이런 문제를 따질 곳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건물이 통째로 대부업체에 넘어간 곳도 존재했다.
앞서 정씨 일가는 건물을 담보로 수협과 새마을금고 등 은행에서 막대한 금액을 대출받은 바 있다. 그러나 지난 7월 일부 은행들은 해당 건물에 대한 근저당권을 제3금융권에 넘겼다. 이 때문에 채권을 넘겨받은 대부업체들은 우편함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는 서류를 꽂아놓았고 피해자들의 불안감은 지금도 커져가고 있다.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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