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정식 (사회부장)
[경인일보=]지방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선거열기가 후끈 달아오를 시기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정도가 심하다. 기초단체장 공천 문제를 놓고 각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작태를 보고 있자니 신물이 날 지경이다. 공천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이 난무하고, 낙천자들의 이의제기와 소송이 줄을 잇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폭로전까지 벌어지니 이 만한 볼거리도 없다.

특히나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이 경기지역 기초자치단체장을 거의 싹쓸이하면서 정당 공천의 위력을 목격한 정치꾼(?)들이 죽기살기로 공천전쟁에 나서고 있으니 피가 튈 수밖에. 하지만 볼거리도 볼거리나름. 그 정도가 지나쳐 목불인견(目不忍見)이 따로 없다.

지난달 16일 이기수 여주군수의 돈다발 전달 미수사건은 이런 죽기살기 공천전쟁의 첫 신호탄이었다. 지역 국회의원에게 현금 2억원을 건네려다 현직군수가 체포된 황당한 사건이지만 공천발표를 앞두고 오죽 급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안타까움도 생긴다. 그렇다고 이 군수를 마냥 동정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이후 각 당이 공천자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더욱 한심하다.

의정부시장 공천을 둘러싼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다른 최고위원들의 감정싸움이 그렇고, 수원시장 공천과정에서 생겨난 지역 국회의원들간 갈등도 마찬가지다. 현 시장의 공천탈락에서 비롯된 지역내 대립과 마찰은 폭발직전이다. 게다가 재심결정이 내려져 도당 공천심사위원회에 내려갔다가 다시 중앙당 공심위로 올라온 파주·안성시장 후보공천은 또다시 도당으로 내려오면서 '탁구공' 공천이 돼 버렸다.

이렇다 보니 불신에 찬 낙천자들이 이의신청을 내는 것은 물론 법원에 공천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것은 유행이 됐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수원시장 공천발표 전부터 유력 후보들간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각종 미확인 소문들이 꼬리를 물어 지역정가를 뒤흔들었다. 여진은 아직도 남아 있다. 또 부천시장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예비후보는 재심을 청구하고 법원에 공천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엊그제는 성남시장 공천자의 전 캠프 관계자가 기자회견을 열고 시장 공천자의 타 후보 매수설 등을 폭로했다 경찰에 입건됐다.

이 모든 게 정당공천의 폐해가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할 일꾼'을 뽑는 자리가 중앙 정당과 지역 국회의원들의 힘겨루기장과 '내사람' 심는 자리로 변질된 것이다. 공천권을 쥔 의원들에게 6·2 지방선거는 2년 뒤 있을 총선의 후원자나 지지자를 뽑는 선거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시민들도 이런 정당공천의 폐해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시민을 위한 공천이 아닌 당과 의원을 위한 공천'이란 인식은 점차 더 많은 시민들에게 번져가고 있다. 시민단체들도 정당공천의 폐해를 조목조목 지적하기 시작했다.

정당공천 유지론자들은 공천이 없으면 최소한의 인사 검증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아 지역 토착세력이나 부호들이 출마해 기초단체장에 당선되고, 이는 곧 지역여론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공천폐해 현상은 어찌 설명할 셈인가.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19년을 맞았다. 하지만 정당공천이 있는 한 진정한 지방자치는 불가능하다. 자신을 공천해 준 은혜(?)를 입은 단체장이 시민의 눈치를 보는 대신 지역 국회의원과 당의 눈치를 보는 한 진정한 풀뿌리 지방자치는 요원할 따름이다.

참여정부 시절 지방분권이 핫 이슈로 떠올랐다가 정치권의 반발로 지방분산으로 끝난 적이 있다. 중앙의 권한을 대폭 지방으로 이양하겠다는 좋은 취지였지만 결국은 정치권 등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주요기관의 지방분산이라는 기형적 형태의 졸작으로 끝맺음된 사례다. 마찬가지로 기초자치단체장의 공천권을 중앙당이 쥐고 있는 현실에선 우리의 지방자치는 겉만 지방자치일 뿐이다.

이럴 바에야 아예 임명제를 부활시키는 게 나을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