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가 나비가 되려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미운 오리도 백조가 되기를 꿈꾸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서 굳이 먹던 솔잎만 계속 먹겠다는 송충이가 있다면, 일만 하다 배짱이를 한겨울 객식구로 들여 양식을 나누어야 하는 개미, 봄이면 지천으로 장미가 피건만 오로지 소행성 B612의 꽃만을 사랑한 어린왕자와 함께 우주 3대 외골수라는 오명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히 울림을 남긴다.

기획실장 입사 승승장구
연극의 매력 못잊어 전직
무대 앞에 서면 긴장되고
무대 위에 설때 가장 편안
지금도 오디션 보며 노력


연극배우로 30년쯤 살았으면, 그러다 극단의 실장'님' 자리에 앉게 되면 그 역할에서 나름의 재미를 느낄 만도 하건만 도통 무대를 떠날 줄 모르는 단원이 있다 하여 지난 9일 경기도립극단 연습실로 그를 찾아갔다. 기획실장으로 입사해서 3년 만에 배우단원으로 보직을 변경한 조영선은 어떤 배우냐는 질문에 '나는 항상 부족한 배우'라고 시원하게 대답하면서도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는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 쉽게 답을 찾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2009년 경기도립극단에 입사한 조영선은 기획실장 시절, 3년동안 7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조직이, 행정이 뭔지도 모르고 들어왔지만 성년이 된 이후로 줄곧 연극계에 몸담고 있었던 그는 첫 번째 공연에서 객석의 80%를 채웠다. 신종플루가 유행해서 좁은 공간에 사람이 모이는 일이라면 뭐든 취소될 때였다. 그래도 그는 연극계 인맥을 통해 500석 대극장에서의 11회 공연을 모두 치러냈다.

기획실장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것으로 보였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었다. "무대 곁을 지나갈 때마다 그리움이 솟아났어요. 남몰래 무대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았죠. 공연이 없을 때는 공연장에 못 들어가지만 관리자에게 부탁해서 텅 빈 무대를 한 번씩 들여다보기도 했어요."


2011년 고선웅 예술감독이 취임했을 때 그는 "나 말고 적당한 사람에게 기획실장을 맡기라"고 말했다. 그해 12월에 공연한 '원더풀 라이프'에서는 기획과 연기를 병행했다. 사무실에 있다가 막이 오르면 무대로 달려갔다. 그리웠던 무대를 다시 밟은 그는 작심한 듯 공연이 끝난 후 고 감독에게 "나는 둘 중 하나만 해야겠다"고 선언(?)했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그를 봤기 때문일까.

고 감독은 "연기를 하시라"고 말해 주었단다. 일단 '조 실장은 이제부터 배우를 하는 걸로'하고 이후에 보직 변경이 가능한지 검토를 시작했다고 한다. 도립극단의 인사가 '선결정 후검토'의 순서로 이뤄졌다니 이 사람들, 역시 규정보다 인간을 우선시하는 휴머니즘이 살아있다.

올해 데뷔 37년된 연극배우 조영선은 오는 4월 열리는 'G-mind정신건강연극제'의 배역 오디션을 앞두고 있다.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알리는 G-mind정신건강연극제'는 2007년 그가 기획한 '하얀자화상'에서부터 출발했다.


친구 손진숙이 만든 극단 '깃발'이 제작하고 스승 강영걸이 연출해 도내 17개 시군을 돌며 공연했다. 3년동안 극단 깃발이 제작하던 것을 2010년부터는 경기도립극단이 맡았다. 6년동안 연극제는 경기도를 넘어 타 지역에서까지 공연을 하게 됐고, 이를 만든 기획자는 그 무대의 배우로 캐스팅되기 위해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다.

경력도 경력이거니와 무대 앞에서는 긴장되고, 무대 위에서는 편안하다는 천생 배우이면서도 여전히 오디션 앞에서는 작아지는 모양이다. "배역은 감독 손에 달린 거죠. 캐스팅이 안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나 중요한 건 같은 제목의 작품으로 무대에 올라도 같은 연극은 없다는 겁니다. 매일 매회 새로운 하나의 공연이 펼쳐지는 거예요.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민정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