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민중가요'를 아는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주로 불린 노래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서 민중가요가 기여한 바는 결코 적지 않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데 민중가요는 큰 역할을 했다. 슬픈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서정적인 노래도 민중가요였다. 세상을 올바르게 세우고자 했던 그들의 진군가도 민중가요였다. 대한민국의 민중가요의 음악적인 스펙트럼은 이리 넓다. 그 당시 텔리비전이나 공연장에서 들을 기회조차 없었지만, 민중가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 어떤 장르의 노래보다도, 한 시대에 대한 역사적 기록으로서, 민중가요가 갖는 의미는 크다. 
 
2014년, 대한민국에서 민중가요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어떤 사람에겐 음악적인 취향이 맞지 않는 노래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겐 그저 '과거의 데모 노래'정도로 취급될 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서구의 클래식처럼 예술적이지 않아서 거리를 두고, 어떤 사람은 국악처럼 우리의 전통에 기반을 두지 안아서 덥석 안기를 주저한다. 
 
민중가요의 유통기간이 이제는 지났을 것 같은 시기에, '민중가요'의 참 의미를 되짚어 볼 공연 하나를 만났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창작뮤지컬 '들풀 2'이다. 여기서 20곡에 이르는  노래를 만났다. 이 작품을 통해서, 민중가요의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현재적 가치를 되짚어보게 된다. 클래식이나 국악은 담아 내지 못하고, 대중가요와 K-POP이 담아내지 못하는 노래의 정서를 발견했다. 
 
민중가요의 역사에는 의미있는 곡들이 많다. 그 중의 한곡이 바로 '동학농민가'. 이른바 7080 세대 혹은 8090 세대라면, 이 노래를 어렴풋이는 알고 있을 거다. 많은 민중가요가 그러하듯,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 노래가 당시 약자를 대변하는 노래이면 족하고, 그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사와 곡조로 구성되어 있다면 충분했다.) 동학농민가도 그랬다. 권호성이 작곡했다.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견연출가 중의 한사람이다. 동학농민가를 만드는 그는, 당시 천도교 서울교구를 중심으로 활동을 했던 청년이었다. 그는 민중가요 혹은 음악으로 시작을 해서, 민족극 혹은 음악극으로 스펙트럼을 넓힌 인물이다. 
 
20년전, 그가 노래를 만들고 연출을 했던 '들풀'이 올해 '들풀 2'로 거듭났다. 80년대의 민주화를 실제 경험한 세대에게는, 진정 눈물 나는 공연이었다. 그들이 경험했던 많은 민중가요가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들려왔다. 무대의 시점은 동학농민전쟁이다. 하지만 708090세대의 일부는 자신의 경험했던 아픔을 환기했을 것이다. 자신이 목놓아 불렀던 어떤 노래와 겹쳐졌을 거다. 그리고 이런 확인을 확실하게 할 수 있었을 거다. 만중가요'에 기반을 둔 노래만으로도 한 편의 뮤지컬이 훌륭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또 이런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리라. 외국가요나 한국가요를 기반으로 한 쥬크박스뮤지컬이 있듯이, 그 당시의 '민중가요'를 가지고 또 다른 뮤지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들풀은 문학이나, 음악이나, 연극으로 볼 때, 모두 가치있다. 김정숙 극작은 왜 우수한가? 영웅을 그리지 않는다. 미화도 하지 않는다. 갈등을 부축히지 않는다. 권호성의 음악은 왜 변별성이 있는가? 민중가요를 택했다는 점에서 그렇고, 단순하고 거칠지만 거기에 진솔함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게는 참 인상적인 노래 두곡이 있다. '개나리타령(양반타령)'이다. 양반을 비아냥거리는 노래다. 제목만 보면 계급 갈등을 드러내고, 전통적 국악을 상투적으로 모방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노래에 이어지는 '사람살이 하늘천 따지'가 있다. 동학농민군에서 만난 양반과 상민. 그들은 이 노래를 통해서 어린 시절 함께 공유했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공존의 미학'을 넌즈시 얘기하고 있다. 가사와 곡조에서 무척 소박하지만, 그 어떤 화려한 선율과 복잡한 화성보다도 감동의 폭이 넓다. 
 
대한민국 사람이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고 감동한다. 뭐라 탓하지 않는다. 예술은 궁극적으로 국적이나  시대를 초월해야 하지 않는가? 만약 여건이 허락한다면, 이 작품도 외국에서 공연한다면 그들은 뭐라 할까? 이 작품은 한국판 레미제라블이다. 그런데 음악적으로는 레미제라블과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동학농민전쟁을 다룬 음악극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작품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현재 공연되는 작품은 없는 것 같고, 아쉽게도 기억되는 작품이 적다. 올해는 갑오년이다. 동학농민전쟁 120주년이다.  국공립단체에서 동학은 어떤 모습으로 다뤄지고 있는가? 아니, 다뤄지고 있긴 한가? '모시는 사람들'이란 민간극단에서, 이렇게 의미있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런데 그 공연기간이 단지 열흘뿐이란다. 이런 현실이 내게는 또 다른 울분이고, 또 다른 분노가 된다. 대한민국에서 '레미제라블'은 며칠을 공연했던가? 어디에서 공연했던가? '들풀 2',  보고 또 봐도 좋은 작품이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