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품 거래가 성사될 것처럼 접근해 제품 제작을 유도한 뒤, 금전까지 송금받고 연락을 끊는 ‘노쇼’와 선입금 피해가 동시에 발생한 ‘복합형 사기 사건’이 광명시에서 발생했다. 피해자는 물품을 제작한 데 이어 세 차례에 걸쳐 총 960만원을 송금하며 사실상 1천만원대의 손실을 입었다.
피해자는 광명에서 50년 가까이 유리 가공업을 운영해온 고령의 소상공인이다. 용의자는 지난 19일 처음 연락해 ‘수도방위사령부 군수지원대대 중사 최수권’이라며 군부대 책상용 유리 납품을 제안했고, 군 직인이 찍힌 공문과 명함 사진을 전달하며 정식 계약처럼 접근했다. 피해자는 이를 믿고 실제 제품 제작에 들어갔다.
22일 손자인 이모(20대)씨는 “할아버지는 관공서 납품 경험이 많아 의심하지 않으셨고, 상대가 나중에는 전투식량 선납까지 부탁해 총 960만원을 보냈다”며 “제품도 만들고 돈도 보냈는데 연락이 끊기고 나서야 사기라는 걸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용의자는 먼저 유리 견적을 요청해 정상적인 거래처럼 보이도록 신뢰를 쌓은 뒤, 이후 별도의 물품과 관련해 선입금을 대신해줄 수 있는지 요청하며 제3자 명의 계좌로 금전 이체를 유도한 것으로 파악된다. 피해자는 이미 납품 계약이 진행 중이라는 전제 하에, 추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심리적 상황에 놓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용의자는 “군 장병들이 식사를 못하고 있다”, “전투식량 공급이 급하다”는 식의 설명을 덧붙이며, 금전 이체를 정당화하려는 정서적 설득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유리 제품 납품 계약이 이미 성사된 상황에서 피해자 측은 군 장병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맡아도 된다는 생각에 요청을 수용했고,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선입금을 보냈다.

며느리 김모(50대)씨는 “군에 간 청년들이 굶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니 아버님이 감정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금전 이체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으며, 처음에는 96만원을 송금했고, 이후 상대가 차액을 요구하면서 600만원과 264만원을 추가로 이체했다.
송금 계좌는 ‘노현호’ 명의였으며, 용의자는 이 인물을 ‘전투식량을 납품하는 협력업체 대표’라며 명함까지 함께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공문에 기재된 ‘중사 최수권’ 명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본 결과, “보이스피싱 의심 번호로 곧 통화가 종료된다”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피해자는 현재까지 송금액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이번 사례는 최근 파주시에서 발생한 군 간부 사칭 ‘노쇼’ 사기 사건과도 유사하다. 당시에도 군 회식을 가장해 횟집에 고가 음식을 주문한 뒤 나타나지 않았으며, 파주경찰서는 피해가 잇따르자 관내 요식업체에 예방 문자를 발송하며 대응에 나섰다.

공신력을 악용한 사기 수법은 최근 선거철을 맞아 대선 캠프, 국회의원실, 방송사, 공공기관 등 전방위로 확산되는 추세다. 피해자들은 대체로 급박한 납품이나 결제를 요구받고, 실제처럼 구성된 공문·명함·사업자등록증에 속아 물품이나 금전을 넘기는 피해를 입는다.
사칭형 사기 피해를 예방하려면 기관 명의로 온 요청은 반드시 공식 연락처를 통해 교차 확인하고, 대면 없이 급박하게 이뤄지는 거래 요구는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공문에 적힌 개인 휴대전화나 계좌정보 역시 실제 여부를 확인하는 등 기본적인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광명경찰서는 이날 오전 피해자로부터 사건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