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나서야” 람사르 장항습지 쓰레기 해결 촉구

 

지뢰 사고 후 4년째 정화활동 중단

관련기관들 서로 책임 미루는 상태

물길 막혀 육지화 생태계 훼손 우려

전문가 “정부서 수거 계획 마련을”

경기도 최대 철새 도래지이자 국내 24번째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장항습지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관련 기관들은 안전을 이유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버드나무 숲, 갯벌, 논 등 다양한 자연 환경을 가진 장항습지는 철새들에게 천혜의 도래지로 꼽힌다. 특히 몸집이 커 도심 속에서 쉬기 어려운 겨울 철새들에게 철책선 너머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이곳은 무사히 겨울을 보낼 수 있는 보금자리다. 장항습지는 이 같은 가치를 인정받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하지만 습지가 가진 생태계적 가치에 비해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일반인이 습지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인 탐조대에 오르자 육안으로도 플라스틱, 비닐 등 쓰레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장항습지가 쓰레기가 누적되는 것은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기수역이라는 특징을 가져서다. 매일 하루 두번 밀물이 들어올 때면 바다 쓰레기가 습지로 섞여 들어오고, 집중호우가 내리는 여름에는 한강 상류에 있던 쓰레기가 하류로 내려오면서 이곳에 쌓인다.

환경부는 장항습지가 군사보호구역에서 제외된 지난 2018년부터 주기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고양시와 함께 습지 정화 활동을 벌여 왔지만, 3년 뒤인 2021년 정화작업 도중 지뢰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관련 작업이 전면 중단됐다. 현재 습지에는 논을 보유한 일부 농민과 어민, 조사 담당자만이 출입하고 있다.

4년째 습지로 흘러들어온 쓰레기가 방치되고 있지만, 관련 기관들은 지뢰를 이유로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다. 수년 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탓에 습지에 쓰레기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고양시 관계자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보니 지뢰로부터 안전이 보장돼야 정화 활동을 도울 수 있는데, 습지 관리 주체가 아닌 지자체에서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습지 관리 권한을 가진 환경부 역시 지뢰 제거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습지는 땅이 물러서 군의 지뢰 탐사 장비가 미처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들었다”며 “위험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쓰레기를 치울 순 없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2018년 군사보호구역이 해제되면서 습지 관리는 국방부 소관이 아니다”라며 “지자체 등에서 지뢰 확인 요청이 들어오면 육군 부대에서 지뢰 탐사 및 제거를 진행한다”고 전했다.

이들 기관이 책임 공방을 벌이는 동안 도래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습지가 보존되려면 땅이 항상 축축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물이 스며들게 하는 길인 갯골이 쓰레기 등으로 막힐 경우 육지화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습지가 육지로 변하면 땅에 서식하는 생물이 사라져 철새들의 생존에 필요한 먹이가 줄게 된다.

장항습지를 연구한 (사)에코코리아 이은정 상임이사는 “습지 쓰레기는 사실상 고양시에서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에 책임을 묻긴 어렵다”며 “연안에 밀려드는 해양 쓰레기를 국가가 관리하듯 습지 쓰레기도 정부에서 수거 계획을 마련하고, 나아가 해양·한강 쓰레기를 줄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주영·고건기자 mang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