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마지막 가곡집 7권 발간 강화 출신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세상에 남겨야 한다는 소명" 가곡 665곡으로 채운 70년

김성호 기자

발행일 2017-10-18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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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15
국민 가곡으로 불리는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인천 강화 태생의 최영섭(88) 작곡가가 평생 작곡한 665곡의 가곡을 정리한 악보집 발간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인천에서 성장하며 보낸 시간이 내 인생의 노른자위였다"며 "작곡가로 길을 걷게 된 결정적 계기를 준 고향 인천에서 남은 작업을 진행하며 여생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600여곡 작곡 슈베르트만큼 쓰겠다던 목표 이뤄… 도움 준 많은 분들께 감사
초교때 처음 들은 노래 단번에 외우는 등 인천서 작곡가로서의 숙명과 만나
인천중학교 밴드부서 실력발휘 다양한 악기 섭렵… 고 2때 작품 발표회 가져
식민시절 아픔도 생생하지만 인생의 '노른자위' 고향서 기악곡 정리 바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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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 출신의 작곡가 최영섭(88)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수식어는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다. 

 

같은 강화 태생의 시인 한상억(1915~1992)의 시에 최영섭 작곡가가 곡을 붙여 만든 이 가곡은 한국 음악 역사에서 가장 자주 애창되는 가곡 가운데 하나로 꼽는데 누구도 이견이 없다.

인천의 작곡가 최영섭이 1947년부터 70년 동안 작곡한 665곡의 가곡이 마지막 143곡을 수록한 가곡집 7권(아브라함 음악사) 발간으로 모두 책에 정리됐다.

 

그의 작곡인생 꼭 70주년이자, 지난 2010년부터 정리 작업을 시작한 지 8년 만인 올해 마무리된 작업이다.

가곡 정리작업은 2010년 210곡을 담은 1~3권을 시작으로, 2012년 70곡과 111곡을 각각 정리한 4·5권, 2015년 131곡을 실은 6권에 이어 올해 143곡을 담은 7권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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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가까이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최영섭 작곡가는 "가곡을 600여곡 작곡했다는 슈베르트만큼 곡을 남기겠다며 다짐한 중학교 시절의 바람이 이제 이뤄졌다고 생각하니 흐뭇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며 "남은 여생은 관현악곡과 칸타타, 오페라, 합창곡 등을 정리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작곡하는 사람은 세상에 남겨 놔야 한다는 소명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 건강이나 생각의 흐트러짐이 없도록 보살펴 준 신의 가호가 없었다면 이뤄내지 못했을 일"이라며 "어쩌면 마지막 가곡집이 될 지 모를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을 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이번 작곡집에는 좀 더 쉽게 부를 수 있게 고친 '그리운 금강산 개정판'의 악보와 고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광교 적설' 등 가곡과 성가곡, 찬송가 등이 수록됐다. 그가 손으로 쓴 자필 악보도 30여편이 실렸다.

한 곡 만들기도 어렵다고 하는데 70여년 동안 665곡을 남기며 오로지 음악을 위해 작품혼을 불태운 그의 노력을 제대로 살피고 평가하는 것은 이제 후대의 몫으로 남겨졌다.

작곡가 최영섭은 고향 인천에서의 삶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1929년 태어나 1963년 인천을 떠나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30여년을 보낸 인천에서의 삶이 자신의 인생의 '노른자위'였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인천에서 작곡가로서의 숙명과 만난 것 같다고 했다. 어릴적 그는 하모니카와 피리에 재주가 많았는데,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악보 한 번 보지 못한 초등학생이 반달, 고향의 봄, 오빠 생각 등의 동요를 연주할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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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선율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며 하모니카를 연주하곤 했는데, 어머님이 사내놈이 눈물을 흘리냐며 핀잔을 주기도 하셨다"고 했다.

창영초 재학시절에는 처음 들은 노래를 단번에 외워버려 학교를 깜짝 놀라게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 육군 대장이 창영초를 갑자기 방문할 일이 생겼는데, 그는 교장 선생님의 지시로 학교 대표로 뽑혔다.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다가 교실로 불려간 그는 선생님이 들려주는 지정곡을 단 두 번 연주를 듣고 '다 외웠다'고 대답해 학교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음악가로 평생 길을 걷게 된 것은 인천중학교시절 밴드부에 들어간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인천중학교에 입학 후 밴드부에 지원했어요. 저는 플루트를 연주하고 싶다고 했는데, 5학년 선배가 경쟁률이 높으니 한번 불어보라고 했죠. 저는 처음 만져본 플루트를 그럴듯하게 연주했고, 당연히 합격했죠. 당연히 선배는 어디서 배워본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고, 저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믿지 않는 눈치였어요."

행진곡 위주인 중학교 밴드부 레퍼토리를 익히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아 그는 클라리넷, 오보에, 트럼펫, 트롬본 등 다른 악기를 혼자 연습하며 섭렵했다.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재미에 그는 제일 늦게 하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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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학교 강당에 있던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를 혼자 독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아무도 손대지 않고 먼지가 수북이 쌓인 강당의 피아노를 집에서 기름 걸레를 가져와 깨끗이 닦아놨는데, 이를 기특하게 본 선생님이 피아노 열쇠를 내어줘 마음껏 연습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서울 경복중학교로 전학해 인천에서 통학하며 이화여대 임동혁 교수에게 작곡이론을 배웠고, 고교 2학년 때인 1947년 자신이 작곡한 곡으로 작품 발표회를 가졌다.

노른자위 같은 인천에서의 과정은 좋은 추억도 많았지만 일본 식민시절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지금도 일본 NHK의 뉴스가 더 듣기 편하다는 그는 특히 인천중학교재학시절 혹독하기 그지없던 교련 수업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교련 수업 시간에 비행기 조종간 모형을 쥐고 비행기 조종술을 배운 기억이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도 가미카제가 되는 거냐며 우울해했다고 한다.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어야 했던 교련 수업시간도 생생하다고 했다.

"하루는 일부러 도시락을 운동장에 내팽개치며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으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당시 조선 학생은 물론 일본 학생들도 우물쭈물 댔지만 결국 다 주워 먹었죠."

그는 자신의 인생이 길어야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며 두 가지 바람을 전했다.

"그리운 금강산이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가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이었죠. 금세 통일이 될 것으로 알았지만 벌써 40년이 더 지났습니다. 하루 빨리 평화 통일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또 인생의 노른자위를 보낸 인천에서 남은 여생 못다 정리한 기악곡 정리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은 바람도 있습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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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섭 작곡가는?

▲ 1929년 11월 인천시 화도면 사기리 77번지 출생

▲ 창영초·인천중·경복고·서울대 음대·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 1961년 그리운 금강산 작곡

▲ 1995년 광복50주년 기념 칸타타 '오! 사랑하는 나의조국' 24장 발표

▲ 2000년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 건립

▲ 인천여중고, 인천여자상업고, 이화여자고, 한양대 음대, 상명여대 음악과, 세종대 음악과 등에서 교직 생활

▲ 상훈

-인천시문화상(1959년)

-경기도 문화상(1961년)

-세종문화상 대통령상(1998년)

-서울시 문화상(2001년)

-이승휴 문화상(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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