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땐 잘 써먹고 끝나면 묻어두는… 대체매립지 공약, 또 버리실 건가요

우여곡절 끝에 수도권매립지를 대체할 ‘수도권 광역 대체매립지’(대체매립지) 4차 공모가 시작됐다. 공모 달성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1·2·3차 공모보다 훨씬 완화된 조건을 들고 나왔지만, 1년 앞으로 지방선거가 다가온 상황에서 ‘혐오시설’인 매립지를 들이겠다고 손을 들 지자체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21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수도권매립지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지만 이슈로 떠오르지 못하는 가운데, 4차 공모 결과가 실패로 끝날 경우 인천시와 경기도, 서울시 등 수도권 광역 지자체장들의 ‘네 탓’ 공방전이 반복될 전망이다.
최소면적 절반 가까이 줄인 50만㎡
응모 자격은 민간 사업자까지 확대
주민의 50%, 사전동의 요건도 없애
그럼에도 후보지 선정 비관적 우세
혐오시설 인식, 지자체장 참여 꺼려
“환경부·서울시·경기도 소극적 일관”
■ 조건 파격적으로 완화했다지만… 4차 공모도 ‘실패’ 관측 우세
인천시와 환경부, 경기도, 서울시가 참여하는 ‘수도권매립지정책 4자 협의체’(4자협의체)는 지난 13일 대체매립지 4차 공모를 발표했다. 오는 10월10일까지 150일간 진행되는 이번 공모는 앞서 진행된 3차례 공모보다 기준을 대폭 완화해 대체매립지 선정 가능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매립지 부지 최소 면적을 90만㎡에서 50만㎡로 축소하고, 앞선 공모에서는 기초지자체만 신청할 수 있었던 응모 자격을 민간까지 확대했다. 대체 매립지 예정지 주변 주민 50%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했던 ‘사전 주민 동의’ 요건도 삭제했다.
문턱을 낮췄지만 4차 공모에 응할 지자체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턱밑까지 차오른 쓰레기대란 해법 마련 정책토론회’에 참여한 패널들도 ‘공모 실패’에 무게를 실었다.
수도권매립지연장반대 범시민단체협의회 김선홍 상임회장은 “‘님비 현상’으로 그동안 대체매립지 확보가 지지부진했는데, 지방선거가 다가온 상황에서 기초지자체장들이 매립지 유치에 적극적일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도 “4자협의체가 (2025년까지) 매립지 직매립 금지에 합의한 2015년 이후 10년이란 시간이 있었지만 대체매립지를 찾지 못했다”며 “직매립 금지 시기를 늦추더라도 대체매립지를 찾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수도권매립지종료 주민대책위원회 백진기 회장은 “대체매립지 확보에 애를 태우고 있는 건 오직 인천시뿐”이라며 “환경부와 서울시, 경기도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이번에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비판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이 연이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자 환경부 관계자가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제훈 환경부 폐자원에너지과장은 이 자리에서 “많은 분이 (4차 공모에 대해) 부정적으로 예상하는 점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며 “지난 1년 가까이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통해 조건을 완화한 만큼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비관론을 반박하고 나섰다.

■ 지방선거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수도권매립지
4차 공모 실패 관측이 우세한 배경에는 내년 6월2일로 예정된 지방선거가 있다. 응모 자격 대상에 기초지자체뿐 아니라 개인, 기업, 협동조합 등 민간도 신청할 수 있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큰 혐오시설이 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반길 지자체장은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재선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대체매립지가 현안으로 떠오르는 건 현직 지자체장들에게 반가운 이슈가 아니다.
인천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매번 수도권매립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후보와 국민의힘 유정복 후보가 대체매립지를 두고 난타전을 펼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박 후보는 수도권의 모든 생활폐기물을 처리할 대체매립지 조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인천만의 자체 매립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 후보는 ‘인천 자체 매립지 조성은 4자합의체 합의 위반 사항’이라며 대체매립지 확보 의지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수도권매립지가 위치한 인천 서구 역시 지난 2018년 지선에서 공방전이 펼쳐졌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SL공사)를 인천시 산하 기관으로 이관하는 문제를 두고 후보 간 이견이 벌어졌다. 당시 재선에 도전한 자유한국당 강범석(현 서구청장) 후보는 SL공사 소유권을 인천시로 이관해 매립지 종료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SL공사 사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재현 후보는 SL공사의 적자 해소 없이 인천시가 떠안을 경우 재정 부담이 커진다고 지적하며 대체매립지를 먼저 확보한 뒤 매립 종료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2018년 지선에서도 인천시장 자리를 두고 맞붙었던 박남춘·유정복 후보의 입장도 서구청장 후보들의 입장과 비슷했다. 박 후보는 선 대체 부지 확보, 후 매립지 종료를 주장한 반면, 유 후보는 SL공사가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며 인천시 이관이 선행돼야 한다고 맞받았다.

■ 이번 대선에서는 잠잠한 수도권매립지 문제… 내년 지방선거로 넘어가나
“자체 매립지” vs “대체지 無 의지”
지난 지선 인천시장 후보간 난타전
대선후보 이재명·김문수 각각 공약
종료 시점 등 구체적 방안 실종 한계
“10년 넘게 소모적 갈등, 주민 분노”
21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도 공약에 수도권매립지 문제를 반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수도권매립지 종료’,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대체매립지 조성 추진’을 내세웠다.
그러나 두 후보의 공약은 구체적인 추진 방안이 보이지 않아 한계가 있다. 이 후보의 공약은 매립지 종료 시점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고, 김 후보의 대체매립지 조성 추진은 이미 4차 공모가 시작된 상황에서 별다른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유권자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수도권 지역의 쓰레기 처리 문제를 대선 의제로 끌어올리는 것도 부담스러운 만큼 양측이 매립지 이슈를 적극적으로 끌어올릴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결국 수도권매립지 대책은 4차 공모가 마감되는 10월10일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권에서 불이 붙을 전망이다. 내년 지방선거까지 8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 현직 지자체장들의 책임론을 언급하는 도전자들과 이를 방어해야 하는 이들의 공방전이 불가피하다.
매립지를 두고 반복되는 정치권의 갈등에 대해 생활폐기물 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미화 이사장은 “10년 넘게 소모적인 갈등만 이어지면서 매립지 인근 주민들의 분노만 쌓이고 있다”며 “매립지를 찾는 문제보다 정부, 지자체가 생활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강제성 있는 정책을 내놓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