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특별인터뷰]2017년 '올해의 인물'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을 만나다

"돈 없어 치료 받지 못하면 안돼

돈 빼고 '진정성'없는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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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병사, 한국인으로서 잘 살기를
남·북 의료진 함께 현장속에서
사람 살리는 일 하면 마음 통할 것

석 선장때와 의료환경 바뀐것 없어
어느 하나가 아닌 '사회전체 문제'
사람들 바뀌지 않으면 해결 못해
선진국 되려면 '투명성' 갖춰야

의료봉사 왜 해외로만 나가나
남들 안하는 일반·흉부외과 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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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아주대학교 병원 본관 3층 수술실 앞에서 만난 이국종 교수는 "현재의 부족한 의료체계 개선을 위해서 한국 사회에 '진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연신기자 julie@kyeongin.com
여러 매체가 앞다퉈 그를 '올해의 인물'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올해의 인물은 1년 전에도, 또 1년 전에도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핏대 세워가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관심은 그때뿐, 변하는 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만남은 쓴소리로 시작해 쓴소리로 끝을 맺을 정도로 그는 지쳐 있었다. '어차피 곧 끝날 관심 아니냐'는 냉소에도 반격할 말은 없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없는 시간을 기꺼이 내어준 그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이면서 가장 솔직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올해'가 저물어가는 지난 27일 오후 아주대병원에서 '올해의 인물' 이국종(48)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아주대 의과대학 교수)을 만났다.

베를린 장벽은 지난 1989년 11월 당시 동독이 해외여행 자유화를 전격 발표하면서 대거 몰린 동독인들로 인해 허물어졌다. 이듬해 독일은 통일을 이뤘다. 2017년 현재, 북한병사 오청성(24)씨가 공동경비구역(JSA)을 넘어 한국으로 왔다.

귀순한 오씨 몸에 대한민국의 피가 흐르도록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이국종 교수에게 통일 한국을 위한 '단초'를 만든 소감을 물었다.

그는 "진정한 통일을 이루려면 우선 마음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중심에 '의료'가 있다"며 "북한은 의료체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나라로, 남·북 의료진이 함께 현장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통해 섞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귀순병사 오씨에 대해서는 "살기 위해 넘어왔는데 한국인으로서 꼭 잘 살았으면 좋겠다"며 치료를 마친 소회를 전했다.

귀순병사가 떠난 뒤에도 그는 여전히 생사를 오가는 현장 속에서 촌각을 다투며 살아가고 있다.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인 이 교수는 현재 150여 명이 넘는 중증외상환자의 치료를 맡고 있다. 그가 만나는 환자의 대다수는 소위 '블루칼라',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다치거나 생명을 잃을 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을 생명의 접점에서 만나기 때문인지 그는 정부와 정치인들을 향해 '진정성 없는 대표자들'이라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노동 중에 (일하다) 다친 사람이 돈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아서는 안 되죠. 정말 웃긴 건 한국의 모든 정당이 '블루칼라'를 대표한다고 하는데 이들의 의료사각지대 등에 대한 얘기는 그 누구도 진정성 있게 한 적이 없어요. 한국 정당 사회에서 '노동자, 노동자' 하는 정당들이 가장 웃겨요.(이 교수는 꼭 '웃긴다'고 표현해달라고 부탁했다.) 진정성이 없으니깐요. 진짜 블루칼라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죽어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웃겨요. 현실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고 있어요. 어느 병원이든지 죽치고 앉아 하루만 보면 알 수 있는데 그것조차 하지 않고 있어요."

이 교수는 앞서 지난 2011년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 치료 때와 같이 이번 귀순병사 치료 과정에서도 한국 의료계의 현실을 여실히 알렸다. 그래도 석해균 선장 때와 현재를 비교해보자면 의료 환경이 많이 개선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뭐가 바뀌어. 똑같지. 조선시대하고도 똑같을 걸요?"

그가 생각하는 가장 시급한 한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는 무엇인지 물어보자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골똘히 고민하다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뗐다.

"어릴 때, 하나의 문제만을 해결하면 문제가 해결 될 줄 알았어요.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그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하면 될 줄 알았고… 그런데 (한국 의료 시스템 문제 해결에는)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의료시스템 문제는) 사회 전체적인 문제와 엮여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해결되지 못해요. 제가 감히 건방지게 말씀드리자면 한국 사회는 분명히 한계에 온 것 같고 진정성이 없는 것 같아 의료시스템 문제 해결이 많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매우 슬퍼요."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조찬세미나에 참여해 '외상센터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던 그는 당시 만났던 정치인으로부터 '한국 사회가 외상체계·의료체계만 문제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예술, 체육 등 문제가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그는 '투명성'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이유는 '투명성'이 없어서 그래요. 한국은 훌륭한 기술력을 지니고 휴대폰, 자동차 등을 전 세계적으로 수출하고 있는데, 여기엔 '투명성'이 없어요. 한국과 다르게 '투명성'만을 가지고 버텨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 나라가 많아요. 대표적으로 북유럽 국가 중 한 곳인 핀란드를 보면, '노키아'가 망했다고 핀란드가 망하지는 않았잖아요? 사회문제는 모두 투명성과 국민의 진정성에 달린 문제인 듯해요. 한국은 아직까지 진정성이 없는 것 같아요."

말끝을 흐리던 그의 한 마디와 함께 전달된 한숨은 무거움이 가득했다.

그래도 당신 덕분에 '사람 살리는 의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에 그는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실제로 이번 2018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한 수험생은 존경하는 인물로 이 교수를 꼽고 의사의 꿈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제2, 제3의 이국종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학생의사 시절을 돌아보며 '소박한 꿈'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의과대학 들어오기 전에 의사 사회에서 고전처럼 내려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있어요. 의과대학에 입학할 때 '봉사를 한다, 생명을 살리겠다'며 처음 신입생 환영회 때 거창한 얘기를 하는 애들이나 '봉사의 삶을 살겠다'고 자기소개하는 애들치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 한 명도 없어요. 오히려 진짜 봉사하며 사는 애들은 처음부터 말없이 조용하게 있던 애들이에요. 이게 의료계의 정설입니다."

이어 모범을 보여야 할 국내 의사들에 대해 날선 목소리도 냈다. "한국 의사들은 봉사를 해외로만 가려고 해요. 해외에 나가서 봉사한다는 의사는 있어도 국내에서 봉사하려는 의사는 없어요. 그렇게 봉사를 하고 싶으면 한국에서 남들이 안 하는 일반외과, 흉부외과 좀 하지…."

그는 줄곧 '외상외과 의사로서의 수명은 짧다'고 말해왔다. 그런 그에게 의사로서의 삶이 끝난 제2의 삶을 어떻게 그리고 있냐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제2의 삶이 있긴 뭐가 있겠어요. 끝나면 폐기되는 거지. 의사 일을 못하면 쉬거나 죽겠죠…. 미래에 해야 할 것은 딱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중을 생각하면 현실이 괴로우니까요. 미래를 생각하는 것보다 당장 눈앞의 환자를 살리는 데 열중하려고 해요."

좀처럼 웃는 얼굴을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인터넷 상에는 '이국종 웃는 모습', '이국종 미소' 등이 검색어로 등장했다. 그의 오른쪽 주머니에 든 무전기에서 그를 찾는 무전이 계속 울려퍼지는 찰나. 조급함에 던진 마지막 질문에서 예상치 못한 그의 환한 미소를 봤다.

'의사'라는 꿈을 심어준 서울 강서구의 한 동네의원 김학선 의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인생에 큰 '임팩트'를 주신 분이니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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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국종 교수는 1988년 아주대 의과대학에 입학해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아주대병원에 외상외과 의사로 임용된 후 이듬해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메디컬센터 중증외과에서 연수를 받았고, 영국 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를 거쳐 2010년 아주대학교 중증외상센터장으로 임명됐다.

이 교수는 지난 2013년 아주대가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권역외상센터장을 맡으며 150여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고 있다.

/박연신기자 juli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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