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직의 여시아독(如是我讀)]'손으로 생각한다'는 것

고영직

발행일 2018-01-15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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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직 문학평론가
"아이들의 꿈에는 / 도무지 땀 흘리는 게 없다." 공고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던 시인 최기종이 '장래희망'이라는 작품에서 쓴 표현이다.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농부가 되고 어부가 되고 화부가 되는 꿈 / 석공이 되고 목수가 되고 잡역부가 되는 꿈" 따위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기술수업이 퇴출되고, 부모들이 '펜대' 굴리는 직업을 선호하며, 육체노동을 경멸하는 문화가 견고히 형성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정한 기술을 습득하면 그것으로 아이들의 삶이 결정된다고 믿는 어른 세대의 불안감이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손으로, 생각하기'의 저자인 매튜 B. 크로포드는 육체노동을 예찬하며 자립적인 기능인으로서의 삶을 적극 권장한다. 무엇보다 저자의 이력이 이채롭다. 시카고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 책임자로 일했던 저자가 어느 날 모터사이클 정비사로 변신했던 것이다. 화이트칼라였던 저자가 자발적으로 블루칼라 노동자가 된 셈이랄까. '손으로, 생각하기'는 '손으로 생각한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무엇이 좋은 노동인지에 대한 성찰을 기록한 책이다. 인간의 직관적인 판단조차 알고리즘으로 대체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는 지능공학 시대에 대한 어느 '반골' 철학자의 사유를 보여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크로포드는 우리가 손을 쓰지 않게 되면서 소비사회에 의존하는 인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표준화된 시험 문제를 잘 풀고 잡다한 정보들은 알고 있지만 정작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마켓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할 여지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터사이클 정비사로서 겪은 육체노동의 경험과 노동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무엇인가를 '할 줄 아는' 개인의 감각적 지식이 갖는 힘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육체노동을 통해 토착적이고 실천적인 암묵지를 갖게 되고, 자기 물건의 주인이 되려는 열망을 통해 탐구정신과 연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암묵지란 그리스적 의미에서 토착적이고 실천적인 지혜를 뜻하는 메티스(metis)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실제 사물과의 대면을 통해 생겨난다.

왜 손을 사용하는 노동이 중요한가. 크로포드는 "우리의 세계를 책임지려면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의 출처를 더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건의 구조를 숨기며 '계획적인 진부화'를 의도적으로 꾀하는 최근의 엔지니어링 문화와 소비사회 문화에서는 물건을 직접 만들고 수리하는 과정에서 터득되는 행위주체성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감각적 이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헨리 포드가 1917년 처음 어셈블리 라인을 도입했고, 1917년 행동과 생각을 노동 현장에서 분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스미스-휴즈법이 적용됨에 따라 오늘날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 분리되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손으로, 생각하기'는 '눈'으로 터득한 지식과 노동이 아니라 '손'으로 터득한 지식과 노동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책이다. '구경꾼의 지각과 정비사의 지각이 다르다'는 저자의 주장은 사실에 대한 지식보다 갈수록 방법에 대한 지식이 더 중요해지는 시절에 손과 몸을 쓰며 사는 삶이 왜 중요하고 행복한지 환기하는 힘이 있다. 공허한 미래주의를 운운하는 대신에 실과(實科) 수업이 학교 현장에서 부활되어야 하고, 육체노동을 바라보는 우리 안의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하며, 먹고사는 데 쓰잘데기없는 일을 하는 것을 권장하는 생활문화운동이 필요하다. 자유라는 말이 소비시장에서 물건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 제한되는 사회에서의 노동은 좋은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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