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눈물과 정한의 시인 박용래

김윤배

발행일 2019-01-04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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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년 안돼 세상 뜬 그리운 누님
그에게 세상은 '눈물·정한' 반반씩
한국전쟁 이후 정신적 폐허의 시대
허무·감각주의 극복 작품세계 영향
자연·생명에 대한 연민 '詩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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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시인
강경은 금강유역에 자리잡은 소읍이다. 강경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옥녀봉이다. 옥녀봉에서 바라보면 시인이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던 중앙동은 바로 코앞이다. 우람한 느티나무도 갈잎을 다 버리고 홀로 우뚝하다. 시인이 홍래 누님의 등에 업히거나 손을 잡고 올랐던 이곳 옥녀봉을 자주 찾았던 것은 아리고 서러운 기억 때문이다.

홍래 누님은 스물여덟이던가 아홉, 선창에 비 뿌리던 날, 강 건넛마을로 시집을 갔다. 누님은 시집가서 1년도 못돼 세상을 떠났다. 산후 출혈 때문이었다. 아름답고 따뜻했던 누님은 시인의 이상형이었다. 시인은 여기서 금강을 바라보며, 너른 평야를 건너다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된다.

그처럼 눈물 많던 시인이 박용래(1925~1980)다. 그는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취직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퇴사하고 교직의 길로 들어섰다.

1965년, 송악중학교를 사직하고 받은 퇴직금으로 대전 오류동에 마련한 집에서 타계할 때까지 살았다. 대문 옆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어 당호를 청시사(靑枾舍)라 했다. 청시사를 찾았던 시인 묵객들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지인들을 맞아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박용래는 울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그의 눈물이었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인간의 손이 안 탄 것,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스스로 오래된 것 등이 그의 눈물샘이었으니 세상의 반은 눈물이고 세상의 반은 정한이었다.

박용래의 작품세계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폐허의 시대에 허무주의와 감각주의를 극복하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반문명, 반사회, 반현실적인 것들을 시적 기반으로 삼았으며 자연과 생명에 대한 연민을 시로 형상화하는 데 생을 바친 시인이다.

'저녁눈'은 그의 시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말굽 밑에 붐비다//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는 각운이 '붐비다'로 풍성하고 분주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게 저녁 때 오는 펄펄한 눈발 때문이어서 더 붐비고 풍성한 것이다. 내일이면 밀려올 장꾼들을 맞기 위해 분주했던 객주집의 풍경일 수도 있다.

삶 속에서 그의 뉘우침은 연보라 오동꽃을 우러러 나타난다. 회고지향의 정서 속에 쓰인 뉘우침의 작품이 '담장'이다.

'오동(梧桐)꽃 우러르면 함부로 노(怒)한 일 뉘우쳐진다./잊었던 무덤 생각난다./검정 치마, 흰 저고리, 옆 가르마, 젊어 죽은 홍래(鴻來)누이 생각도 난다/오동꽃 우러르면 담장에 떠는 아슴한 대낮./발등에 지는 더디고 느린 원뢰(遠雷).'를 읽노라면 먼 우렛소리 들리는 듯하고 젊어 죽은 홍래 누이의 검정 치마와 흰 저고리와 옆 가르마가 보이는 듯하고 누이에게 함부로 노했던 일을 뉘우치는 시인의 처연한 모습이 보인다.

'구절초' 또한 누이의 이미지로 가득 찬 작품이다.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 먹던 기억/여학생이 부르면 마거리트/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여우가 우는 추분(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는 구절초의 청초한 이미지에 누이의 애닳고도 아련한 기억을 투사한 작품이다.

구절초 매디매디에 나부끼는 누이의 모습은 고향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구절초처럼 그의 기억 어느 곳에나 무더기로 살아 있었을 것이다. 누이의 여름 모자챙에 숨어 있던 꽃이었을 것이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 매디매디 눈물로 비친 누이의 꽃이었을 것이다. 가족사는 누구에게나 슬픔이다. 가을의 길목에 피는 구절초처럼.

/김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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